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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70대 생태학자의 소설

글 : 최인아 

살다 보면 불편하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할 때가 있다.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지만 시간은 잘 가지 않는다. 그럴 때 어떻게 하는가? 이런 문제를 생각해보자.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거다. 일분일초도 딴짓하지 않고 서로에게 집중하는 사이,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모든 걸 잊을 만큼 집중하고 몰입하면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모르게 빨리 지나간다. 무엇을 하면 그렇게 될까?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방법은 있다. 소설을 손에 잡고, 푹 빠지는 거다. 실망하셨을까? 아니다, 실망은 이 책을 읽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다.

읽다 보면 이야기에 이끌려 도저히 중간에서 접을 수가 없다. 본래 소설은 이런 것이다. 요즘엔 꼭 그렇지도 않아서 이야기가 희미한 소설도 종종 있다. 그러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소설의 본류에 충실한 ‘읽는 재미’가 쏠쏠한 책이다. 빨려들듯 읽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작가 델리아 오언스는 생태학자다. 이 책은 그의 나이 일흔에 처음 쓴 소설인데, 출간하자마자 사고를 쳤다. 27주 연속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를 한 것. 북클럽을 운영하는 영화배우 리즈 위더스푼의 추천도 한몫했겠지만, 많은 이들이 빠져들어 읽을 법한 매력 넘치는 소설이다. 묘사가 대단히 생생해서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위더스푼이 영화로 만든다고 한다. 이 배우, 위더스푼은 괜찮은 원작을 발견해 영화로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것 같다.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도 그녀가 제작하고 주연까지 했다.


야생에서 홀로 자라는 여섯 살 카야

책 얘기를 본격적으로 해보자. 생태학자인 델리아 오언스는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해안 습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 평생 생태 연구를 통해 알게 된 것을 다 풀어놓았다. 게다가 그는 소설가 같은 능란한 필치까지 지녀 묘사가 매혹적이고 시적(詩的)이다. 이를테면 모래와 진흙 위 발자국을 찾는 장면에선 “모래는 진흙보다 비밀을 잘 지킨다”라고 쓰는 식이다. 자연을 잘 아는 데다 통찰력까지 갖춘 이가 쓴 문장을 읽는 재미가 적지 않다.

이 습지에 여섯 살짜리 어린아이 카야가 혼자 살고 있다. 처음부터 가족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빠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엄마가 어느 날 집을 나가고, 언니도 오빠도 아빠도 사라져 혼자 남는다. 그곳은 tvN 예능 프로 〈삼시세끼〉에 나오는 인위적인 자연이 아닌 진짜 자연이고 야생이다. 그런 곳에서 카야는 홀로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간다. 생명이란 태생적으로 독립적인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막 세상에 나왔을 때의 얼마간을 제외하면 대체로 스스로를 먹여 살리며 생존한다. 인간처럼 오랜 기간 부모가 돌보지 않는다. 그러니 야생에서 혼자 자란 카야는 생명 그 자체다.

이런 카야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 그 사랑 덕분에 카야는 글을 배우고 사람을 받아들이며 메기 등 습지 친구들을 그리는 재미에 빠진다.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은 카야의 그림 솜씨는 대단히 훌륭해서 책으로도 출판된다. 그러나 카야의 행운은 거기까지다.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되어 감옥에 갇히고, 많은 이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이후의 이야기는 직접 읽어보시길.


“생명에는 악의 희롱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생태학자는 논문이 아닌 소설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아마도 생명의 본질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인간의 본성이 생명이라는 걸 말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그는 생명을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는 윤리적 심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악의 희롱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다른 참가자들의 목숨을 희생시켜 그 대가로 힘차게 지속되는 생명이 있을 뿐이다. 생물학에서 옳고 그름이란, 같은 색채를 다른 불빛에 비춰보는 일이다.”

소설의 배경인 노스캐롤라이나의 습지는 우리가 사는 인간 사회, 문명과 반대되는 곳을 상징한다. 인간이 문명을 일구고 살면서 잃어버린 것, 생명력으로 충만한 곳 말이다. 바로 그곳에서 생명 그 자체인 어린 카야가 살고 성장한다.

우리는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이 없으면 어쩔 줄 몰라 하고, 천둥 번개라도 요란하게 치면 겁부터 난다. 생명으로부터, 우리 본성으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야성이 살아 있는 사람을 보면 매혹되곤 한다. 생명력에 매력을 느끼는 거다. 그러니 매력을 찾는 시대에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본성, 생명력을 되찾을 일이다.

글쓴이 최인아는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최인아책방’의 대표로, ‘책방마님’으로 불립니다.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제일기획 부사장을 지냈습니다.
최근엔 ‘혼자의 서재’를 열어 ‘혼자력’과 ‘사색력’을 모색하고 전파합니다.
  • 2019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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