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취향 ⑮ 여행지 맛집

여덕(여행 덕후)이 골랐다! 여행지 최고의 미식 경험 TOP 3

프랑스 앙수이 라끌로세리 레스토랑 내부.
여행의 이유는 그때그때 다르다. 여행길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 또한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빠뜨릴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먹을거리다. 음식은 인류학적으로 말하자면 그 문화의 결정체다.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 어떤 방식으로 조리하고 어떻게 나눠 먹을 것인지는 그냥 결정되는 일이 아니다. 자연, 역사, 생활방식부터 사고방식까지 모든 게 한데 어우러져야 먹는 일 하나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난 낯선 곳을 여행할 때 먹을거리를 먼저 결정해둔다. 미국 뉴욕에서는 먹을 곳에서 다른 먹을 곳으로 이동하면서 틈틈이 관광을 즐겼다. 프랑스에서 로드 트립을 나섰을 때는 일정이 아무리 빠듯해도 식사 시간만큼은 두세 시간씩 넉넉히 빼놓았다. 가까운 도쿄로는 아예 먹으러 떠나곤 했다.

매년 두세 번 이상 해외여행을 떠나는 여행 덕후로서 누군가 ‘왜 여행을 떠나느냐’고 묻는다면 ‘먹을거리 때문’이라는 대답을 돌려주고 싶다. 긴 일정이라도 일단 여행을 떠나면 한식은 입에 대지 않고, 일부러 끼니마다 다른 음식을 먹고 다닌다. 여행객 사이에서 유명한 ‘관광지 맛집’은 제쳐두고 ‘진짜 맛집’을 골라내는 능력도 여행 횟수가 늘어날수록 좋아진다.

다만 나만의 여행법이 있다. 여행 전후로 반드시 집에서 만든 김치찌개를 먹는 것! 마치 의례처럼 떠나기 전날, 돌아온 날 밥상 위에 김치찌개를 차려 낸다. 새롭고 낯설었던 경험에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의식이라고 할까. 여행은 낯섦과 일상의 간격을 느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지에서 맛본 음식 중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은 세 곳을 소개한다.



프랑스 앙수이 라끌로세리(La Closerie)
시골마을에 콕 박힌 미쉐린 레스토랑


프랑스 남부, 흔히 프로방스라고 부르는 프로방스 알프스 코트다쥐르의 작은 마을 앙수이(Ansouis). 마르세유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다. 마을은 단출하다. 크지 않은 슈퍼마켓 하나,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며 스포츠 경기를 보는 바 하나 그리고 식당 두어 곳. 인구는 1000명 정도다.

이 작은 마을에 있는 식당이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하나를 받았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쉐린 가이드》만큼이나 유명한 《고미요(Gault Millau)》에서도 모자를 두 개나 받았다. 앙수이에서 우리 부부 같은 동양인 커플은 쉽게 눈에 띄었다. 레스토랑 주인은 우리가 첫 한국인 손님이라고 했다. 실내는 간결하고 널찍하며, 테이블 간격도 넓었다. 트러플 향이 물씬 풍기는 애피타이저부터 메인 요리까지, 한 그릇 한 그릇이 푸짐하게 나오는데 색과 차림새 모두 편안한 분위기를 풍겼다. 《미쉐린 가이드》에 나온 레스토랑이지만 가격을 겁낼 필요는 없다. 앙트레(Entree, 전채요리)와 플랫(Plat, 본식), 데세르(Desserts, 후식)까지 포함된 3코스의 가격은 1인당 50유로(약 6만 5000원)정도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튀지 않으면서도 개성이 넘쳤다. 앙트레 전, 아뮤즈 부쉬로 나온 버섯크림수프는 마치 카푸치노처럼 투명한 컵에 담겨 나왔는데 버섯의 풍미가 넘치도록 느껴졌다.

메뉴 구성은 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지금 찾아간다면 완전히 다른 요리를 만날 수도 있다. 그래도 꼭 하나 추천한다면 껍질을 바삭하게 익혀 낸 베이비포크를 꼽고 싶다. 고기를 먹고 나서 즐기는 딸기소르베는 가장 어렵다는 ‘노말’한 맛을 기막히게 잘 살려냈다. 레스토랑 주인이면서 셰프의 부인이라는 서버는 화이트와인 한 병을 추천하면서 “저기 너머의 포도밭에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과 맛이 뛰어날 수밖에.



미국 뉴욕 할랄가이즈
푸드트럭에서 즐기는 할랄 음식


전 세계 곳곳에 지점을 둔 할랄가이즈는 미국 뉴욕 한복판의 한 푸드트럭에서 시작했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엇비슷한 푸드트럭이 즐비한데, 헷갈릴 염려는 없다. 유독 줄이 긴 곳을 찾으면 된다. 일본 도쿄처럼 미국 뉴욕도 기다리는 줄이 길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뉴욕에서는 기다리는 사람끼리 혹은 푸드트럭 서버와 대화하며 느긋하게 줄을 선다. 음식이 나오면 근처 아무 곳에서나 철퍼덕 주저앉아 먹으면 된다. 간혹 잠시 차를 세우고 양손 가득 음식을 포장해 가는 택시 기사들도 보이지만, 대부분은 양손을 모두 사용해도 들기 힘든 밥그릇을 들고 주변 적당한 곳에 앉아 음식을 먹는다. 할랄가이즈에서는 대개 치킨이나 램, 아니면 콤보오버라이스를 주문한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치킨덮밥쯤 된다. 향신료로 볶아낸 고슬고슬한 밥이 신선한 양상추, 토마토와 함께 곁들여 나온다. 맛을 좌우하는 것은 밥 위에 얹는 화이트소스다. 오버라이스의 모양새야 어느 할랄 음식점이나 비슷하지만 할랄가이즈를 유명하게 만든 비결이 바로 이 화이트소스다. 화이트소스는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을 수 있으니 듬뿍 뿌려 먹을 것을 권한다. 양이 꽤 많아서 1인 1그릇을 다 비우기에는 벅찰 정도다. 그래서 뉴요커 중에도 포장해 가는 사람이 많다. 이곳 음식은 식은 후에 먹어도 맛있다. 한국에는 이태원과 홍대에 할랄가이즈 지점이 있다.





일본 도쿄 잇토우(一燈)
일본 1위 라멘집의 위용


일본에서는 음식점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일본 도쿄 동쪽의 조용한 동네, 신코이와(新小岩)에 있는 잇토우라는 라멘집도 그중 하나다. 잇토우는 일본 맛집 평가 사이트 타베로그에서 꼽은 전국 최고의 라멘집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만 해도 전국 5위권이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1위에 올랐다. 낮에 잇토우를 찾는다면 한 시간은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가게 앞에는 줄 서는 방법을 적어놓은 안내문도 있다. 오랜 시간 기다려 가게 안에 들어서면 망설임 없이 자판기에 돈을 넣고 주문을 완료해야 한다. 빈자리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다 음식이 나오자 별 대화 없이 후루룩 한 접시를 먹고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음식에 감탄하며 호들갑을 떠는 것은 관광객인 나와 남편 정도밖에 없었다. 사실 이곳 말고도 당시 1위 라멘집도 갔다. 무려 2시간 30분 기다려 맛봤지만, 우리는 둘 다 잇토우를 더 맛집으로 꼽았다. 바로 다음 해에 잇토우가 1위 자리에 올랐으니 우리 미각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집의 메뉴는 단출하다. 츠케멘만 기억하고 가면 된다. 츠케멘은 육수와 면발을 따로 내는 라멘이다. 면발을 육수에 찍어먹기 때문에 육수가 매우 진하다. 잇토우의 육수는 해산물로 맛을 낸다. 진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이유는 이 때문인 듯하다. 육수보다 인상적인 것은 면발이다. 짜장면 굵기만큼 굵은 면은 탱글탱글할 정도로 쫄깃하고 촉촉하다. 면발만 집어 먹어도 맛있지만 육수에 듬뿍 적셔 먹으면 조화로운 맛이 놀랍다. 곁들여 나오는 차슈나 달걀 역시 익힘 정도가 적당해 모두의 입맛에 잘 맞는다.

  •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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