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희의 속 깊은 인터뷰

대청호 녹조로 달항아리 만드는 닥종이 작가 이종국

자연으로, 종이로 스미는 삶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자연과 자연 아닌 것의 경계는 희미하다. 온 강을 녹차라테 색으로 물들인 녹조는 자연인가, 자연이 아닌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자연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에서 자연이지만, 현대 문명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자연이 아니기도 하다. 꽃가루와 먼지, 사람들이 쓰다가 버린 쓰레기들이 강과 호수에 쌓이면, 녹조는 이 잔유물을 먹고 쑥쑥 큰다. 오염이 심할수록 녹조도 강해진다. 그래서 녹조로 뒤덮인 강은, 인간의 업보다.

닥종이 작가 이종국 씨는 그 녹조를 거둬 작품을 만든다. 장마가 오기 한 달 전쯤, 한 해 전에 생겨 발효가 된 대청호의 녹조를 수거해 닥종이에 섞는다. 녹조의 섬유질은 가늘고 섬세해 닥나무 섬유질과 만나면 견고성이 증가한다. 의외의 발견이었다. 수질오염의 주범인 녹조가 문화 재생의 주인공으로 업사이클되는 순간이다. 환경도 정화하고, 종이의 견고성도 높아지고, 1석 2조다. 녹조 섞은 한지는 현재 특허출원 중이다.

이종국 작가는 ‘21세기의 자연인’으로 불린다.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자급자족의 삶을 닮아 ‘한국의 소로’로도 불린다. 그는 오지 중의 오지, 충북 청주 문의면 벌랏마을에서 자연 친화적 삶을 산다. 5월이면 꾀꼬리와 파랑새가 찾아오고, 철철이 피고 지는 산꽃을 경이로움으로 맞이하면서, 바람이 다니는 길을 눈으로, 몸으로 느끼는 삶. 그는 문명의 시계를 200년 전쯤으로 돌려 자연 속에서 필요한 것을 구하고 찾는다. 필요한 것이 생기면 ‘어디서 살까?’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까?’를 먼저 생각한다. 명상가 부인 이경옥 씨와의 삶은 니어링 부부를 떠오르게 한다. 이들은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 부부처럼 숲속 깊은 곳, 지은 지 100년도 넘은 집에 살면서 ‘조화로운 삶은 무엇일까? 삶은 어떻게 진화하고 통합돼야 할까?’를 주제로 대화하곤 한다.

닥나무 껍질. 이종국 작가는 직접 기른 닥나무로 작품을 만든다.
전시회차 서울 나들이에 나선 이종국 작가를 만났다. 이 작가는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종이를 품은 달’이라는 주제로 6월 21일부터 열흘간 전시회를 가졌다. 녹조 섞은 닥종이로 만든 달항아리는 은은한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닥종이와 녹조 섬유질의 우둘투둘한 물성이 표면에 그대로 담겨, 자연스러움과 자연다움이 고스란했다. 이번 전시는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후원으로 성사됐다. 이 교수는 이종국 작가의 작품에 대해 “불가마에서 꺼낸 불항아리가 아니라, 물속에서 꺼낸 새로운 생명의 달항아리”라면서 “대청호수에 버려져서 다른 식물의 성장을 막아버리는 녹조로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켰다”고 의의를 부여했다.

두건에 삼베옷을 걸쳐 입고, 긴 턱수염을 기른 자연인 이종국 작가와 마주 앉았다. 그는 말이 빨랐다. 어떤 질문이든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답변을 내놨다. 오랜 명상과 깊은 사유의 결과물인 듯싶었다.


버려진 녹조를 예술의 재료로서 마주친 순간이 궁금합니다.

“원래 생태 복원과 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처음부터 작품의 재료로 쓸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녹조를 방치해두면 풀이 이걸 먹고 확 자라서 녹조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요. 대청호에 떠다니는 녹조를 수거하다가 우연히 아이디어를 얻었죠. 물에 담가 잡티를 제거해보니 닥섬유와 물성이 비슷하더라고요. 순수한 섬유질 성분이라 활용 가치가 높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녹조는 1년간 숙성되면 냄새가 나지 않아요. 순수한 이끼 냄새가 나죠. 자, 맡아보세요.”


킁킁, 그렇네요. 악취가 전혀 없군요.

“녹조가 나쁜 거라는 건 사람들이 씌운 프레임이에요. 이것 또한 생명 현상의 과정일 뿐이잖아요. 새로 생긴 녹조는 냄새가 나지만, 숙성된 녹조는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은 자기만의 시간과 이야기가 있어요. 과거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이 만나는 지점에서 또 다른 희망적인 이야기를 찾고 싶었어요.”


어떤 희망을 찾았나요?

“닥종이만으로 작품을 만들 때는 견고성이 떨어져서 한계가 있었어요. 닥섬유에 녹조를 섞었더니 견고성이 좋아지더군요. 이거다 싶었습니다. 색도 예쁘고요. 다만 닥섬유와 녹조의 이상적인 배합 비율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비율이 안 맞아서 많이 갈라지기도 했죠.”


과거와 현대, 자연과 문명의 만남이군요.

“조화를 중시해요. 종이는 흰색, 숙성된 녹조는 검은색이에요. 흰색이 치유의 이미지라면, 검은색은 현대 문명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녹조는 사람이 쓰고 남은 모든 것을 함축하잖아요. 공중에 떠 있는 미세먼지, 꽃가루, 사람들이 쓰다 남은 것들이 장마가 지면 대청호에 다 떠내려와서 갇혀요. 그때 녹조를 먹은 풀이 잠기고, 수온이 올라가면서 썩기 시작하고요. 이걸 수거해서 자원으로 활용하면 물을 정화하는 기능도 하면서 산업적인 가치도 갖게 되죠. 세상에 쓸모없는 건 없어요.”


쓰레기란 뭔가요?


“다른 삶의 먹이예요. 본질로 돌아가는 거니까. 원점으로 돌아가는 거니까. 닥나무를 삶을 때도 재로 삶아요. 나무가 돌고 돌아 재가 다시 다른 생명을 위해 쓰이죠. 자연에서 나온 것은 다 자연으로 돌아가요.”


플라스틱과 비닐은 다른 삶의 먹이가 되기 힘든데요.

“그래서 문제예요. 플라스틱과 비닐은 자연의 선순환 구조가 깨져버린 경우예요. 사람들이 원소의 성질을 인위적으로 두 번 세 번 바꿔버려서 그 원소가 돌아갈 길을 잃어버렸어요. 사람이 그 관계를 깨뜨려버렸죠.”


먼 훗날 지구의 역사를 논한다면, 지금의 시대는 어떻게 기록될까요?

“어른의 부재 시대 같아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어른이 없는 거죠. 과거엔 연륜이 중요했어요. 자연이 중요한 시대에는 경험이 많은 어른들한테 배워야 했어요. 지금은 아이들이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된 시대잖아요. 전체가 열려 있는 어른이 필요해요.”


전체가 열려 있는 어른이라면.

“생명성을 다루는 사람이어야 해요. 온도와 바람, 공기 등 관계성을 볼 줄 아는 사람이요. 과학자라면 자연관, 우주관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어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문학이 바탕이 된 지식인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요. 이런 바탕이 없는 지식인이 책을 쓰고 연구를 하면 위험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어령 장관님을 존경해요. 그 양쪽을 다 가진 분이잖아요.”


달항아리 한 점을 만드는 데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가요?

“엄밀히 말해 17년이요.(웃음) 닥나무가 자란 시간까지 포함하면. 제가 직접 심은 닥나무로 만드니까요. 닥나무를 자른 이후부터 치면 최소 2~3개월이 걸려요. 닥나무를 솥에서 푹 삶아 겉껍질을 벗기고 햇볕에 널어 건조시켜요. 다시 찬물에 불려서 잿물을 낸 후 또다시 삶죠. 그다음 방망이로 두들겨 분해하고요. 종이 한 장을 만들려면 햇빛과 바람, 물과 흙이 다 필요합니다. 이후 작품의 틀을 만들고 자연으로 건조한 후 옻칠을 합니다. 덧칠하는 과정도 여러 번 반복해요.”


벌랏마을은 워낙 한지로 유명하죠.
이 마을에 흘러든 과정이 궁금합니다.


“그전에는 안성 홍신자 선생님 ‘웃는돌’ 캠프에서 2~3년간 있었어요. 그림을 배우려 북경대에 원서를 내놓고 기다리면서 제 살림을 홍신자 선생님께 다 드린 참이었어요. 홍 선생님은 그때 막 한국에 정착하려던 시기였거든요. 대학원 원서가 딜레이되면서 홍 선생님 거처에 있게 된 거죠. 그 후에는 강원도 정선 산골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살았어요.”


혼자서요?

“네, 혼자 살면서 말을 거의 안 했는데, 말을 안 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어요. 장을 보려면 꼬박 하루가 걸리는 깊은 산골이었어요. 어느 날 장을 보러 나왔는데, 강에 배가 한 척 떠 있더라고요. 물은 원래 아래로 흐르는 게 진리잖아요. 그런데 그날은 물이 하늘로 올라가는 거예요. 온도 차이로 수증기가 증발하는 거였겠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물이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어요. 물이 올라갈 수 있구나! 무엇엔가 얻어맞은 느낌이었죠. 내가 아는 지식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입력해놓은 지식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겁니다. 그때부터 내가 보고, 내가 생각하며 살기 시작했어요. 그때 제 나이를 한 살로 봤습니다.


그때가 몇 살이었습니까?

“30대 초반이요. 세상을 다시 살기 시작한 시기예요. 그때부터 시선이 달라졌어요. 꽉 차기 시작했죠. 책을 읽지 않고 제 머리로 세상의 이치를 깨쳐갔습니다.”


뭐가 꽉 찼다는 건가요?

“세상과 나는 미세한 채널로 연결돼 있어요. 그 채널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언어로 된 대화 채널이 생겼죠. 그동안은 그걸 닫아놓고 살아왔더라고요. 예를 들어 온도와 습도에 따라 숲속 생물의 행동이 하나하나 달라집니다. 습이 차기 시작하면 날아다니는 동물이 다 들어가고, 꼬물거리는 동물은 기어 나와요. 토끼 같은 짐승도 풀을 뜯어먹는 패턴이 있어요. 자연과 채널을 갖게 되면서 궁극의 자유를 느꼈습니다.”


궁극의 자유라. 그때 기분이 궁금합니다.

“아이 같은 기분으로 돌아간 거죠. 늘 설레고 새로웠어요. 보이는 모든 것이 경이로웠고요.”


더 행복감을 느꼈나요?

“더 행복해지기도 하고, 미세한 채널을 통해 생각만 하면 거의 다 현실이 됐어요. 배고플 때는 산에 가면 먹이가 보이고, 마을에 내려간 날 간절히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꼭 만나게 됐죠.”


배고파서 건강상 위기가 온 적은.

“없었어요. 하루 이틀 굶어도 중요하지 않아요. 기운 없지도 않고요. 체질이 바뀐 것 같아요. 음식이 있으면 많이 먹어두고, 없으면 굶어요. 생명은 원래 그런 거예요. 때 됐다고 무조건 먹는 건 사람밖에 없어요. 군집 생활에서 통솔을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형식이자 룰이죠.”


2009년에 낸 책 《선우야 바람 보러 가자》에 나온 선우가 벌써 중2가 됐지요.

“아이와 늘 같이 생활했어요. 외국에 전시가 있을 때도 함께 나가서 퍼포먼스를 했고요. 아이의 길을 강요할 수는 없어요. 함께하면서 느낀 것들이 선우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바랄 뿐이에요. 선우가 종이 만드는 일을 안 한다는 소리는 안 합니다.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말도 안 하지만요. 세상을 한 바퀴 돌고 와서 다른 것보다 낫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면 하길 바라는 마음은 있어요.”


궁극의 자유를 그토록 희구하시는 걸로 압니다. 가족이 생긴 후 현실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 두 가지를 함께 갖기는 어려웠어요. 처음엔 자신 있었죠. 결혼을 하고 선우가 생긴 후 동선이 달라지고 바깥세상으로 나오면서 그 두 가지를 다 하겠다고 했어요. 저는 그걸 일(닥종이 작품 활동 및 보존 관련 사업)로 봤어요. 일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래서 가족한테(아내 이경옥 씨) 못해줬는데.”



그는 울었다. 눈이 발개지고 콧물이 줄줄 흐를 정도로 울었다. 인터뷰 중에만 세 번 울었다. 아내 이경옥 씨 얘기만 나오면 그렇게 서글피 울었다. 그의 아내가 아프다. 암 수술을 받았는데 이후 항암 치료를 하지 않아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이 작가의 작업을 측면으로 도왔다. 닥종이 관련 사업과 집안 살림은 물론, 닥종이 보존 방법을 대대손손 알릴 수 있도록 책을 쓰는 작업도 아내가 도맡았다.


지금은 자유의 개념이 많이 달라졌군요.

“자연인으로 살 때는 물질에서 벗어나 있어서 궁극의 자유를 얻었어요. 지금은 자유라기보다 종이의 뿌리를 지켜야겠다는 절박함이 너무 커요. 종이가 가치 있다고 하면서 아무도 종이의 뿌리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아요. 저는 나무를 깎아 손질할 때 가장 포만감이 듭니다. 만족도가 높아요. 선조들이 살았던 시간선상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가장 큰 안도감을 줍니다.”


종이의 뿌리를 지키려는 절박함은 어디에서 온 건가요?

“당시 저는 화가도, 농부도 아니었어요. 벌랏마을은 원래 대대로 종이를 뜨는 마을로 흥했습니다. 마을에서 마지막으로 종이를 뜨신 고(故) 이정용 할아버지가 자신의 마지막 종이를 제게 주셨어요. 그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게 운명이었습니다. 제 이름을 거꾸로 하면 국종이잖아요. 나라의 종이.(웃음)”


오늘 인터뷰, 철학자 내지 도인과의 대화 같았습니다.

“저는 종이에게서 그걸 배웠어요. 종이는 스미는 문화예요. 동양의 문화가 ‘스미는 문화’라면, 서양은 ‘칠하는 문화’죠. 은은한 한지에 붓을 대면 종이의 결을 따라 서서히 번지고 스며들어요. 문화에서 우열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순응’과 ‘순환’의 잣대를 들이대면 얘기는 달라져요. 생태계의 위험 차원에서 본다면 서양 문화보다 자연에 순응하고 스미는 우리 문화가 더 우월할 수 있어요.”
  •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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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Hyung-YulCho   ( 2019-08-10 ) 찬성 : 9 반대 : 4
또 다시 나타난 복고풍? 이런 도사님들에 많이 속아 봐서 믿음이 ?
2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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