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아의 책갈피 ⑭

이상인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

젊고 명석한 디자이너의 시선

글 : 최인아 

이 책의 3분의 1가량 읽었을 때 묘한 흥분 같은 게 올라왔다. 좋은 것을 발견했을 때의 그것 말이다. 크리에이티브나 디자인 관련 동네는 거품이나 허세가 심한 편인데, 젊은 친구가 본질을 명쾌하게 말하고 있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일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상인의 신간 《디자인의 생각법; 시프트》 얘기다.

그는 한국에서 국민대 공업디자인학과를 다니다 군대에 갔고, 제대 후 뉴욕 SVA(School of Visual Arts)로 유학을 떠났다. 졸업 무렵 초조한 마음으로 수십 통의 지원서를 썼는데, 디지털 에이전시 R/GA가 그를 알아봤다. 그곳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얼마 후 ‘딜로이트 디지털’에 스카우트됐다. 1년여 전부터는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여덟 명의 팀원과 함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그가 디자이너로서 쌓아온 스펙은 거의 완벽하다. 처음 일한 R/GA는 미국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일류 디지털 에이전시고, 딜로이트 디지털 역시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들이 ‘훈수’뿐 아니라 퍼포먼스까지 직접 만들고자 노선을 변경했을 때 새로운 길을 개척한 좋은 회사다. 그래서일까. 출판사는 저자 소개를 이렇게 자신감 넘치게 하고 있다. “미국 디지털 디자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미국 디지털 디자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

그러니까 그는 디자이너다. 그런데 그는 좀 다른 디자이너다. 그는 묻는다. “디지털 시대에 디자인의 역할은 무엇이고, 디자이너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라고. 이런 류의 질문, 즉 what을 묻는 사람은 남이 간 길을 쫓아 빨리 가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자신의 시선으로 보면서 스스로 길을 열며 간다. 책에도 그렇게 쓰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얻기를 바란다고. 그러니까 이 책은 이상인이 이 시대의 디자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를 적은 책이다.

사실 이것이 핵심이다. 어떤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거나 적어도 주목받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들이 이룬 결과가 아니라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아, 그렇게 생각했구나’라는. 일터에서의 퍼포먼스란 문제 해결 과정에서 찾아낸 솔루션이고, 솔루션은 시선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시선을 갖지 않은 사람은 꾸준히 오래도록 잘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가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선엔 더 나은 삶, 테크놀로지, 디지털, 사용자의 경험, 연결 같은 키워드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까 디지털이 모든 것을 바꿔놓고 있는 이 시대에 디자이너는 무엇으로 기여할 것인가 하는 그의 질문은, ‘더 나은 삶이란 어떤 삶인가’라는 질문을 포함한다. 때문에 그는 제품의 형태를 만드는 것을 넘어 삶의 철학을 만드는 것까지 디자인 안으로 끌어들인다.


‘일잘러’는 운동장을 넓게 쓴다

어떤 분야든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운동장을 넓게 쓴다. 좁은 칸막이 안에 갇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사람은 디자이너가 아니라 기획자, 아니 경영자 같아’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그의 고민과 관심은 깊고 넓다. 시선이 깊고 넓으면 필연적으로 남과는 다른 것을 보게 되며 그래서 아웃풋이 남과 달라진다.

책에는 ‘이상인의 디자인론’뿐 아니라 그의 시선이 포착한 우리나라 브랜드 얘기도 나오고, 그가 본 영화, 또 광고 캠페인 얘기도 등장한다. 기획자처럼 일하는 디자이너의 시선을 느낄 수 있어 흥미롭다.

나는 그에게 두 번째 책을 써보라고 말했다. ‘디자이너와 일하는 법’이라는 주제도 제안했다. UX, UI 등 디자인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는 데 반해 한국 기업의 디자인 이해도는 여전히 낮다. 의사 결정 과정에서 낭비가 매우 심하다. 그러니 어서 기업의 경영자나 의사 결정자들에게 디자이너와 일하는 법을 알려드리라고 했다. 젊고 명석한 디자이너 이상인은 과연 이 주제를 어떻게 풀어낼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 책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는 누가 읽어도 좋지만, 아직 디자인의 본류를 다 경험하지 않은 젊은 디자이너,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 혹은 디자이너와 일할 기회가 많은 분들에게 특히 권한다.

글쓴이 최인아는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최인아책방’의 대표로, ‘책방마님’으로 불립니다.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제일기획 부사장을 지냈습니다.
최근엔 ‘혼자의 서재’를 열어 ‘혼자력’과 ‘사색력’을 모색하고 전파합니다.
  •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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