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부

청년 농부 임모세

영동 오지의 꿀벌 파수꾼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지난해 충북 영동의 11개 읍·면에 꿀벌의 위기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렸다. 현수막에는 ‘전 세계 주요 농작물의 70% 꿀벌 수분 의존, 꿀벌의 생존 위기! 꿀벌의 죽음 풍요의 종말!’이라고 적혀 있었다.

“우리가 먹는 100대 농작물의 70%는 꿀벌의 수분(꽃밥에서 수술대로 화분을 운반하는 것)에 의존해 생산된다고 해요. 꿀벌의 공익적 가치를 매긴다면 8000억 원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고마운 곤충이죠. 하지만 최근 일부 농촌에서 무분별하게 농약을 쓰고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꿀벌의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서서 꿀벌을 지켜야 해요. 꿀벌이 다음 세대를 이어주고 생태계 균형을 지켜주는 파수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양봉으로 벌꿀을 만드는 임모세(34) 씨. 그는 영동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꿀벌 지킴이 운동을 이끄는 청년 농부다. 영동군과 함께 벌꿀의 원천이 되는 ‘밀원식물 심기’ 캠페인을 3년째 이어오고 있다. 양봉 농가에 밀원수를 매년 3000주 이상 나눠주는 일이다. 꿀의 원천이 되는 나무를 심어 꿀벌을 늘리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작은 마을에서 이런 캠페인을 한다고 해서 크게 변화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한 번 정도는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인식하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는 농사를 짓기 전까지 서울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웹 개발과 기획, 마케팅 관련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늘 창업을 향한 갈증이 있었다. 서른 살이 되면 나만의 일을 해보자는 생각이 강했다. 그러다 교회에서 선교 활동을 위해 바자회를 할 때였다. 청년부 회장을 맡아 농촌의 먹거리를 받아 와 함께 팔았는데, 농부들이 보내준 감자나 고추 등 귀한 농산물을 보면서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리고 2016년 봄 충북 영동으로 내려왔다.

“농촌은 고령화로 인해 일손이 부족하잖아요. 서울에는 여전히 청년 일자리가 없고요. 청년들이 농촌에 들어가 생명공학이나 가공기술을 접목한 6차 산업으로 키워간다면 분명 비전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가 양봉을 결심하고 정착한 곳은 충청북도 최남단 영동, 시내에서도 차로 30여 분 거리에 있는 굽이굽이 산간마을 상촌면 흥덕리다. 소백산백 남서 자락이 지나는 이곳은 고도 1000m가 넘는 산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 평지가 거의 없다. 그래서 이 마을은 임업이 발달했다. 충북과 경북, 전북의 3도가 만나는 삼도봉이 가까이 있는데, 여기서 흐르는 물한계곡이 마을 곁을 지난다. 차고 맑은 계곡이 흐르는 청정 마을에 그의 벌집 농장이 있다.


막연하게 시작한 농촌 생활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씩 벌통을 살피는 임모세 씨.
“‘젊은 사람이 가면 할 일이 많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어요. 어디서 잠을 잘지, 어떤 일을 할지 아무 계획이 없었죠. 무작정 영동군에 내려와 면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동네 분들도 젊은 사람이니 도전해보라며 응원해주셨죠.”

마을 주민에게 임대한 300평(992m²) 땅에 벌집 20동을 놓은 게 시작이었다. 당시 벌집 1동을 사려면 20만 원이 들었다. 그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청년농부지원사업에 계획서를 내고 지원금을 받아 밑천을 마련했다. 벌집을 놓는 자리부터 여왕벌을 산란시키고 꿀을 채집하는 기본적인 과정은 양봉협회에서 배웠다. 매일 양봉장에서 쪽잠을 자며 현장 경험을 익혔다.

벌통 안이 꿀로 가득하다.
벌집 20동에서 150동까지 늘려가는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한번은 전남 고흥군이 따뜻해 산란 환경이 좋다기에 어렵게 트럭을 타고 내려갔다가 벌통을 몽땅 도둑맞았다.

“정말 화가 났어요. 1년 치 농산물이, 피땀 흘려 만든 자식 같은 재산이 한순간 사라진 거잖아요. 경찰에 신고해봤지만 찾을 수 없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농촌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더라고요. 첫해 농사는 그렇게 반쪽짜리로 끝났습니다.”


꽃피는 봄은 벌도 사람도 가장 바쁜 시기

임모세 씨의 귀농을 도와준 동네 어르신. 그는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감사를 전했다.
양봉은 다른 농사와 달리 가을부터 시작된다. 가을에 여왕벌을 교미시켜 산란을 돕고, 겨우내 잠을 재우면 꽃피는 봄에 알에서 깨어난 일벌들이 꿀을 만들기 시작한다. 벌집 한 통에는 여왕벌 한 마리와 수만 마리 일벌이 산다. 따뜻할수록 꿀벌의 산란이 늘어나는데, 한 계절에 대여섯 번까지 산란한다. 20일마다 새로운 벌이 태어나고 또 죽는다.

“벌의 산란에는 화분, 꿀, 물 3요소가 필요합니다. 부족한 게 없는지 늘 확인해야 해요. 날이 추우면 꿀벌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때문에 가까이에 물을 넣어줘야 하고요. 마치 아기 기저귀 갈고 물 먹이듯 돌봐줘야 합니다.”

아카시아꽃이 피는 5월은 하루 동안에도 벌통에 꿀이 금방 찬다. 봄부터 여름까지는 꿀벌도 사람도 1년 중 가장 바쁠 때다. 1년 치 농사를 이때 수확하기 때문이다. 아카시아가 지고, 밤꽃이 피었다 지는 한철이 지나면 곧 여름, 로열젤리를 준비할 때다. 꿀벌 농사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다. 햇볕이 쨍쨍할 때는 벌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침저녁으로 나가 벌들의 상태를 살피는 게 하루 일과. 잘 살피지 않으면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또 여름은 말벌과도 전쟁을 해야 한다.


“말벌은 잠시 잠깐 한눈판 사이 벌통 앞으로 날아와 꿀벌을 죽이거나 잡아채 가요. 한두 시간 만에도 벌통의 꿀벌이 몰살당할 수 있죠. 말벌을 잡는 데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최근에 터득한 방법인데, 배드민턴 라켓으로 스윙 연습 하듯 말벌을 잡으면 잘 잡히더라고요, 하하.”

꿀벌이 바쁘게 일하는 사이, 그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직거래 장터의 문을 두드린다.

“직거래 장터는 고객 얼굴을 직접 대하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고객의 마음을 읽어야 해요. 생산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품질의 상품을 만드는지, 고객들이 직접 보고 판단해 결정합니다. 꿀을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나 꿀과 화분의 보관법 등을 알려주며 소통하고 있어요. 요즘은 꿀벌을 관찰할 수 있는 벌통을 두거나 벌꿀 아이스크림을 판매했더니 반응이 좋더라고요. 단골이 생기고 판매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산 따라 꿀 따라, ‘산꿀’


아직은 혼자 하는 일이지만, ‘꿀 따는 사람들’이라고 농장 이름도 지었다. 뒤에 복수를 붙인 건 앞으로 양봉의 미래를 책임질 청년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가 만들어 파는 꿀의 이름은 ‘산 따라 꿀 따라’, 줄여서 ‘산꿀’이다.

“하루는 꿀을 따다 힘이 들어 그늘에 앉아 있는데, 꿀벌들이 참 평화로워 보이더라고요. 이 산 갔다 저 산 갔다, ‘꿀벌들은 산 따라 꿀 따라 자유롭게 다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그의 ‘산꿀’은 입소문을 타면서 수요가 늘었다. 그만큼 신뢰를 쌓았다는 뜻. 최근엔 백화점이나 SNS 판매 등으로 확장해가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그는 서울에서 배운 미용 기술로 어르신 미용 봉사를 돕는다. 또 지역 SNS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지자체의 다양한 소식과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농사 중에도 꾸준히 배움의 길을 이어가는 그는 올해 농협미래농업지원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지난해에는 충북대 최고농업경영자과정도 이수했다. 또 충북 지역 청년창업농업인에 선정돼 해외 연수도 다녀왔다. 새로운 경험이 쌓일수록 농업에 대한 확신은 그만큼 더 자라간다.

“유럽 농부들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소명의식을 가져요. 그곳에서 농업을 대하는 자세를 배웠어요. 이제는 1차 농업만으로는 안 돼요. 자기만의 아이디어를 갖고 끊임없이 전진해야죠. 농업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에게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창의성과 도전정신 그리고 간절함이요. 청년은 도전을 두려워해선 안 돼요. 아이디어와 도전정신, 또 간절함으로 노력한다면 청년이 이끌어갈 미래 농업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습니다.”

때론 작은 날갯짓이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농촌에 날아 들어간 벌 한 마리가 농촌에 희망의 꽃가루를 수분하고 있다.
  • 2019년 07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912

201912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12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