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topp

1도 없다니… 실수로 탄생한 유행어

신지영의 언어탐험×탐험대원 하릅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들.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고려대학교를 베이스캠프로,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 있다.
© MBC 〈진짜 사나이〉 캡처
‘1도 없어 예전의 느낌
그때의 감정이 단 1도 없어’


걸그룹 에이핑크(Apink)의 ‘1도 없어’의 한 구절이다. ‘1도 없다’라니, 1이 없다는 의미가 쉽게 가늠되지 않는다. 이 가사를 어떻게 봐야 할까? 숫자 1을 ‘하나’로 바꿔 다시 불러보자.


‘하나도 없어 예전의 느낌
그때의 감정이 단 하나도 없어’


이렇게 바꿔 쓰니 갑자기 확 와닿는 느낌이다. ‘하나도 없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사실 ‘1도 없다’는 가수 헨리가 MBC 〈진짜 사나이〉에서 퀴즈에 대한 답으로 ‘모라고 했는지 1도 몰으갰습니다’라고 답한 데서 비롯됐다.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헨리는 올바른 표기법을 몰라서 이런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그의 실수에 재미를 느꼈고, 그 재미는 새로운 유행어를 만들어내 이런 제목의 노래까지 나왔다. 헨리는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유명해지다니, 저작권이라도 등록할걸 그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왜 그의 실수에 열광했을까? 아마 ‘편의를 위해 지킴’과 동시에 ‘지켜야 해서 부담을 주는’ 맞춤법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일상 전반에서 지켜야 하는 것이 누군가의 실수로 파괴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헨리의 맞춤법 실수는 마치 원래 있었던 것처럼 ‘어이가 1도 없네?’ ‘1도 모르겠어’와 같이 쓰이고 있다.

틀린 맞춤법에 대한 관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도 없다’ 이외에도 ‘외않되?(왜 안 돼?)’ ‘외않사?(왜 안 사?)’ ‘않이(아니)’와 같이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린 유행어도 있다. 카카오톡의 이모티콘 숍에는 틀린 맞춤법을 콘셉트로 내세운 이모티콘도 출시됐다.

© 카카오톡 이모티콘 ‘밍밍이’ (왼쪽)와 ‘허세월드’
물론 이런 신조어나 유행어에 대한 걱정스러운 시선도 존재한다. 유행을 따라가는 것은 기존의 맞춤법 규칙을 깨부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국어 사용에 미숙한 외국인이나 이제 막 언어를 배우는 단계에 있는 사람이 이러한 유행을 접한다면 올바른 맞춤법을 익히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관점을 조금만 바꿔 생각해보면 도리어 이 표현들이 표준 맞춤법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

‘외않되’ 또는 ‘않이’와 같은 신조어를 소개했을 때, 이를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아마 본래 형태인 ‘왜 안 돼’ 또는 ‘아니’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렇다, 이렇게 맞춤법이 파괴된 단어를 보면서 사람들은 올바른 표기를 떠올리게 된다. 맞춤법을 파괴한 신조어나 이모티콘은 올바른 표기를 상기해 이를 실천하도록 돕는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틀린 맞춤법을 소재로 한 이모티콘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이나 제스처로 표현된다. 이는 틀린 맞춤법을 사용했을 때의 사회적 시선을 반영한 것이다. 이런 이모티콘을 접한 사람들은 ‘맞춤법을 틀리는 행위는 우스꽝스럽구나!’라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과연 맞춤법이 파괴된 신조어나 이모티콘 사용이 우리말을 망가뜨리는 행위일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파괴하는 행위 또한 맞춤법을 지키기 위한 또 다른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2019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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