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음향 엔지니어 - 음원 믹싱 엔지니어계의 대모 곽은정 음향 엔지니어

윤상, 이적, 혁오… 이들의 앨범이 그의 손을 거쳤다

글 : 안희찬 명예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윤상, 이적, 선우정아, 리쌍, 브라운아이즈, 곽진언, 혁오… 이름만 대면 알 법한 가수들의 음반이 그의 손을 거쳤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여성 음향 엔지니어 곽은정 감독. 그는 1990년대 후반 국내 최대 음반사인 락레코드에서 리코딩 일을 시작했다. 이후 가수 윤상의 5집 앨범으로 메인 엔지니어에 입봉, 리코딩과 믹싱 작업 둘 다에 능통한 20년 차 음향 엔지니어로 독보적인 길을 걷고 있다. 곽은정 감독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우연히 알게 된 음향 엔지니어의 길

곽 감독은 학창 시절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고 천문학자의 꿈을 키웠다.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했지만, 막상 공부를 하다 보니 천문학자를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업 후 진로를 바꿔 무역회사에 다녔고 다큐멘터리 작가에도 관심을 가졌다. 음악을 좋아해 학교 앞 카페에서 DJ로 일하기도 했다. 천문학과 무역, 다큐멘터리, 음악… 도통 무엇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 잡기에 능했던 곽은정 감독. 그가 음향 엔지니어에 관심을 가진 건 친구가 음악 관련 학원을 함께 가자고 제안하면서부터다.

“음향 엔지니어란 직업이 있었는지도 몰랐어요. 사실 학원 시스템은 엉망이었습니다. 제대로 배운 것 없이 6개월을 수료하니 녹음실 연락처만 주더군요. 생계를 고민하다가 광고 음악 전문 스튜디오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1년을 일했지만, 그가 품고 있는 감성과 맞지 않았다.

“광고 음악은 일회성이에요. TV에 잠깐 나오다가 사라지죠. 작업물이 오래 남지 않으니 허무하더군요. 음악을 더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결심했을 때, 당시 국내 최대 음반사 중 하나인 락레코드에서 함께 일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1997년 락레코드에 입사해 어시스트 엔지니어로 일하던 중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디지털 녹음 시스템인 ‘하드 리코딩’을 국내 첫 도입했는데, 회사가 그에게 전담을 맡긴 것이다. 디지털 녹음 시스템을 이용하면 이탈한 음정을 잡아주는 오토튠(Auto-Tune)도 구현할 수 있어 이전보다 정교한 작업이 가능했다. 회사는 당시로선 드문 매킨토시와 오토튠 프로그램을 그에게 제공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디지털 녹음이다 보니 장비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어요. 이것저것 눌러보며 운영 체계를 독학했죠. 음악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저도 한번 음을 들으면 음계를 알아맞혀요. 음계를 하나씩 눌러보며 새로운 시스템인 오토튠을 빠르게 습득했습니다.”

그렇게 익힌 리코딩 기술은 락레코드에서만 구현 가능한 작업이었다. 그는 최고의 음향 엔지니어 중 한 명인 임창덕 감독과도 함께 일했다. 리코딩계에서 ‘어벤져스’와 같은 팀이 락레코드에서 꾸려졌다. 디지털 리코딩 도입으로 회사는 고공 성장했지만 몸집이 커질수록 잡음도 늘었다. 결국 임창덕 감독이 회사를 떠나며 그도 퇴사를 결심했다.

“회사를 나온 후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뉴욕 여행을 다녀왔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 한 음반사에서 녹음을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죠. 디지털 장비를 이용한 하드 리코딩에 능통한 엔지니어를 찾고 있었어요. 그게 브라운아이즈 1집이었습니다. 작업을 끝내고 바로 리쌍 1집을 녹음하며 프리랜서의 길을 걷게 됐어요. 이전보다 작업량은 줄고, 돈은 더 벌었죠.”


윤상 5집으로 음향 엔지니어 입봉

곽은정 감독이 메인 음향 엔지니어로 입봉한 윤상의 5집 앨범.
음향 엔지니어로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일까. 자신이 좋아하던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는 그때가 아닐까. 곽은정 감독에게는 가수 윤상을 만난 순간이 그랬다.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자신을 윤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 윤일상으로 잘못 들었어요. 윤일상 작곡가와 친분이 있었거든요. 윤상 씨가 저와 새 앨범을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거예요. 믿어지지 않았죠. 윤상 씨 말고는 다른 가수를 좋아해본 적이 없거든요. 나중에 윤상 씨의 언론 인터뷰를 봤는데, 저에 대해 ‘음악적 공감이 많이 되는 사람’이라더군요.(웃음)”

윤상은 곽은정 감독에게 리코딩과 믹싱을 겸한 메인 엔지니어 일을 의뢰했다. 음향 엔지니어는 리코딩과 믹싱 엔지니어로 나뉜다. 리코딩은 말 그대로 악기 연주 위에 가수의 목소리를 얹는 일이고, 믹싱 엔지니어는 가수의 목소리와 악기 연주를 하나로 엮는 작업을 한다. 메인 엔지니어는 리코딩과 믹싱 전 과정의 책임자인 셈이다. 리코딩 위주로 작업하며 앨범 녹음 전 과정을 맡아본 적이 없었던 그에게는 리코딩과 믹싱이 가능한 음향 엔지니어의 길로 들어설 기회였다.

“윤상 씨와 작업 후 자괴감이 왔어요. 혹시 내가 그분의 음악을 망친 게 아닐까 걱정됐죠. 솔직하게 고백했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너는 내가 선택한 사람이고 그 음악을 내가 OK 했어. 네가 이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되니’라고요.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이후로 그는 슬럼프가 올 때마다 윤상의 말을 떠올린다.


선우정아가 보내온 만다라 그림

곽은정 감독이 작업한 선우정아의 4×4 앨범.
곽은정 감독은 자신의 무기를 ‘소통’이라고 말한다. 음악의 첫 시작은 창작자의 악보다. 그걸 음원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새로운 창작이 가미되기도 한다. 사진으로 따지자면 촬영자가 사진을 찍어 기록한 행위가 1차 리코딩이라면, 포토샵을 통해 원본 사진을 다듬는 후반 작업이 믹싱인 셈이다. 그래서 음향 엔지니어의 후반 작업에서는 음원 창작자와 엔지니어 간의 소통이 관건이다. 그는 아티스트가 음악을 만든 이유와 그의 성격 등을 파악하기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누고 함께 고민한다.

“가수, 특히 싱어송라이터 중에는 엔지니어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앨범의 방향을 어떻게 요구해야 하는지 모르는 이들이 많아요. 저는 그때마다 추상적이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죠. 선우정아와 작업할 때도 그랬어요. 그는 자기 생각을 PDF 파일로 정리해 보내줬어요. 유튜브 링크와 만다라 등 독특한 사진 등도 보냈고요. 저는 그 자료 안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요. 이런 추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작업을 완성합니다.”

타고난 음악적 감각과 아티스트와의 소통 능력으로 국내 최고 음향 엔지니어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 곽은정 감독. 하지만 그 스스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좋은 음악을 만나서 그 음악이 빛을 발하는 데 크게 일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한 문제를 평생 동안 푸는 수학자도 있잖아요. 결국 죽을 때까지 못 푸는 사람도 있고. 이 마음이 음향 엔지니어를 대하는 제 자세예요.”



음향 엔지니어 | 음악에 날개 달아주는 2차 창작자

수요 늘면서 전문 교육기관도 급증

노래 한 곡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우선 작곡가와 작사가가 새로운 곡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곡 위에 가수는 감미로운 목소리를 얹는다. 여기까지는 1차 창작이다.
그 후 음악을 다듬는 과정을 거친다. 각종 효과음과 악기 연주를 조합해 음악의 균형을 맞춰주는 작업이다.
2차 창작이라 불리는 이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이 바로 음향 엔지니어다. 2차 창작이 음악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실력파 음향 엔지니어는 좋은 음악이 더 빛을 발하도록 음악에 날개를 달아준다.

© 셔터스톡
음향 엔지니어가 하는 일

음향 엔지니어는 보통 ‘리코딩 엔지니어’와 ‘믹싱 엔지니어’로 나뉜다. 리코딩 엔지니어는 마이크 세팅 등 녹음에 관련된 전반적인 일을 담당한다. 믹싱 엔지니어는 가수의 목소리와 드럼, 기타 등과 같은 악기를 하나로 엮어주는 작업을 한다. 즉 음향 엔지니어는 영화, 공연, 스튜디오, 방송, 광고 등 음악을 필요로 하는 모든 분야에서 소리를 다루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이다.


음향 엔지니어가 되려면

과거에는 음향 분야 전문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트 엔지니어로 시작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대중음악 시장이 커지면서 처음부터 가수와 함께 커나가는 경우도 있고, 음향 엔지니어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도 많아졌다. 대표적으로 동아방송예술대학교와 한국예술원의 음향제작과가 있다.


필요한 역량과 자질

박자, 선율, 화성, 음색 등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역량은 필수다. 음악 장르를 포괄적으로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한 가지 장르만 담당하는 음향 엔지니어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러 장르를 다룬다. 가수의 목소리와 음계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다 보면 장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집중력, 지구력도 중요 요소다. 더불어 어시스트 엔지니어에서 메인 엔지니어가 되기까지 보통 6~7년이 걸리기에 다음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는 인내력도 필요하다. 음향 엔지니어는 뮤지션과 협업해야 하는 작업인 만큼 뮤지션의 성향과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연봉과 전망

음향 엔지니어는 따로 저작권료를 받지 않는다. 녹음이나 믹싱 비용을 받는다. 이 비용은 음향 엔지니어의 경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음향 엔지니어로 첫발을 내딛은 신입의 경우 한 곡에 15~20만 원 정도를 받는데, 경력이 쌓이면 곡당 100만 원 이상 받기도 한다. 음향 엔지니어의 전망은 갈린다. 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현직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다른 직업에 비해 적은 데다가, 디지털의 진화로 음악 창작 및 녹음에 접근하기 쉬워져 음향 엔지니어가 설 자리가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대중음악인은 물론 이를 꿈꾸는 예비 대중음악인이 늘면서 음향 엔지니어를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음악을 활용하는 콘텐츠도 다양해져서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 2019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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