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아의 책갈피 ⑫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1·2·3》

18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글 : 최인아 

이 책을 읽는 동안 두 단어가 떠올랐다. ‘디지털’과 ‘소확행’. 책의 내용과 관련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디지털 기기와 함께 온라인 세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확행의 안온한 세상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들도 이 책이 펼쳐 보이는 세상을 만나, ‘맞다, 세상이 넓었지’라고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2016년 봄쯤이었다. 《프레시안》에서 저자의 연재물을 봤다. 이병한이라는 젊은 역사학자인데 유라시아 곳곳을 다니며 현지에서 쓴 글을 싣고 있었다. 특파원들의 글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차이가 컸다. 그는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같이 특파원이 갈 만한 곳은 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세계사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들어본 적도 없을 유라시아 대륙 곳곳을 훑고 있었다. 두 발로 현장을 찾아 취재한 것을 쓰는 시도는 저널리스트의 그것이었지만, 그는 역사학자이므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 뒤에 켜켜이 쌓인 천년 맥락을 짚었다. 통찰이 깊은 그의 글에 나는 단박에 매료됐다.

2016년 가을에 그의 책이 나왔다. 책으로 묶일 만한 글이었다. 책에는 그가 왜 이런 시도를 했는지 등 내가 읽지 못한 내용이 많았다. 매우 두꺼워서 한 권만 해도 560페이지나 됐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그 무렵 책방을 시작한 나는 당연히 이 책을 우리 책방에도 입고해 손님들에게 권하고 주변에 선물도 많이 했다.

그는 전작(前作) 《반전(反轉)의 시대》에서 세계사의 반전을 주장했다. 패권과 냉전의 근대 백 년이 끝나고 좌우, 동서, 고금의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썼다. 이 대담한 주장을 그는 몸소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는 3년간을 길에서 보내며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쪽 끝,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유라시아 100개국 1000개 도시를 훑었다.


유라시아엔 유럽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가 접하는 외신이란 대개 미국이나 영국 등 서방 언론들을 통한다. 현지에 파견된 특파원조차 그곳 언론들의 보도에 의존하고, 파견 지역도 선진국 위주이다 보니 우리가 아는 세상은 제한적이며 그나마도 서방 중심의 관점으로 본다. 그러나 유라시아엔 유럽만 있는 게 아니다. 유럽보다 훨씬 광활한 아시아가 있고 아시아엔 이슬람도 있고 힌두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알지 못한다. 그 땅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유럽 또한 그렇다. 영국, 프랑스, 독일 말고 우리가 아는 유럽은 얼마나 될까. 루마니아도 있고 마케도니아도 있지만 우리는 관심이 없다.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나는 TV에서 뉴스를 볼 때마다 이상했다. 중동 문제를 보도하는데 기자는 파리에 있다. 파리에서 중동 소식을 전하면서 특파원이 전한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가 접하는 프레임은 협소하며 치우쳐 있다. 때문에 이병한이 3권으로 낸 《유라시아 견문》을 읽다 보면 놀라움의 연속일지 모른다. 우리는 리얼한 세상을 접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바쁘다. ‘당장의 업무, 공부를 하기에도 바쁜데 이런 책을 왜 읽어야 하나’라고 물을 수 있겠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삶이 이 세상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우리 개개인의 운명이 우리를 둘러싼 사회, 세상의 움직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그렇다면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더구나 우리는 강대국 국민이 아니다. 우리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구한말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을 비롯해 남북 분단 그리고 지금의 북한 비핵화 협상까지 우리 생사가 강대국의 결정에 달려 있다. 경제 규모 세계 10위권이라는 것도 그렇다. 어쩌면 이 사실이야말로 우리 현실을 정확하게 대변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외부 변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뜻이니까.


진짜 세상을 알고 싶다면…

반면 미국, 중국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고 그에 따라 동북아 정세도 심상치 않다고 우려하는 학자도 적지 않으므로, 근대 패권 경쟁이 마감하고 유라시아망이 다시금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는 저자 이병한의 견해에는 찬반이 있을 줄 안다. 그럼에도 일독을 권한다. 디지털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빅 플레이어들이 어떤 결정을 하는지 우리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왜 그렇게 하는가? 우리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니까 그렇다.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리얼 월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대비하고 대응 전략을 세우지 않을까?

1·2·3권을 다 합하면 무려 18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이지만 한번 손에 잡으면 놓기가 쉽지 않다. 세계 지도를 찾아가며, 가물가물한 세계사를 떠올리며 그를 따라 각 도시와 그 역사, 현재를 훑다 보면 시야가 확 터지는 느낌도 받는다.

글쓴이 최인아는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최인아책방’의 대표로, ‘책방마님’으로 불립니다.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제일기획 부사장을 지냈습니다.
최근엔 ‘혼자의 서재’를 열어 ‘혼자력’과 ‘사색력’을 모색하고 전파합니다.
  • 2019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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