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부

정해경 본밀크 대표

오직 울산에서만 팝니다! 20대 낙농 후계자의 당찬 꿈

글·사진 : 서경리 기자

“농사는 더 이상 노동이 아니다. 경영이다.” 낙농 후계자로 20대에 목축업에 뛰어든 정해경(29) ‘본밀크’ 대표.
그가 처음 가족 경영 목장에 발을 담글 때, 아버지가 그에게 한 말이다. 멋모르고 농장 일에 뛰어들었다. 정해경 대표는 ‘경영’이라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했다.
7년 후, 아버지의 말처럼 그는 직접 짠 우유로 가공품을 만들어 3억 원의 수익을 올리는 청년 사업가가 됐다.
정해경 본밀크 대표를 만난 건 KTX 울산역에서 차로 5분 남짓 거리에 있는 ‘언양·봉계 한우 불고기 특구’에서다. 불고기 맛집들 사이에 정 대표가 운영하는 10평(33㎡) 규모의 작은 디저트 카페, 본밀크가 있다. 본밀크의 ‘BON’은 이탈리아어로 ‘좋은’이란 뜻이고, 한자로는 근본(本)을 의미한다. ‘기본에 충실한 좋은 우유’라는 뜻을 품고 있다.

본밀크에서는 목장에서 직접 짠 우유를 가공해 소프트아이스크림과 요구르트, 잼, 푸딩 등을 만들어 판다. 갓 짠 신선한 우유로 만들기에 맛은 물론, 신선도 면에서도 탁월해 인기가 좋다. 주말이면 500명이 넘는 손님이 찾아 인산인해를 이룬다. 2015년 문을 열어 첫해 월 매출 1500만 원을 기록했고, 이듬해 연매출 1억 원, 지난해에는 연매출 3억 원을 넘겼다.

아이스크림은 우유 맛과 흑임자 맛 두 가지로 각각 3500원, 4500원이다. 요구르트는 500ml에 5000원, 밀크푸딩은 10g에 400원, 우유로 만든 밀크잼은 한 병 5000원이다. 3000~4000원가량의 디저트류를 팔아 연 3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린 셈이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카페 경영 경험도 전혀 없었고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에 카페를 연 것도 아니었다. 평일 10만 원 매출이 고작일 때도 있었다. 정 대표는 목장과 가까운 곳에서 지역 주민에게 인정받고 뿌리내린 게 주효했다고 설명한다.

“무엇보다 신선함을 최고로 여겼어요. 시골에 있어도 귀하다는 걸 알면 구석구석 찾아가는 시대입니다. 이 일을 시작하며 부모님과 ‘본질은 흐리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돈을 위한 사업이 아닌 ‘최대한 목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가 생산한 신선한 우유를 맛보게 하자’는 게 본밀크의 시작입니다.”


월급 150만 원 받는 정 대리


정해경 대표의 가족이 운영하는 유진목장은 카페에서도 차로 10여 분 더 들어간 울주군에 위치해 있다. 3000여 평(9,900㎡) 규모의 목장에는 150두의 젖소가 산다. 매일 1.5t의 우유를 짜는데, 그중 10%를 유제품으로 가공하고 있다.

정 대표가 처음부터 목장 일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다. 오히려 낙농업을 하는 부모님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축사는 분뇨 냄새가 심해 항상 마을에서 제일 구석진 곳, 마을과 동떨어진 곳에 있었다. 한번은 비가 쏟아져 아버지가 트랙터로 그를 학교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었는데, 부끄러운 마음에 저 멀리 내려 한참을 걸어가기도 했다.

어릴 적 기억 속 부모님은 항상 바빴고, 송아지에게 우유를 주거나 볏짚을 옮기는 일은 정 대표의 몫이었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해 사육사를 꿈꿨어요. 동물과 교감하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었죠. 천안 연암대학교 축산학과 재학 중 유가공에 관심을 갖게 돼서 부산대 동물생명자원학과에 편입해 관련 분야를 연구했습니다.”

목장 경영에 뛰어든 건 2012년 대학 졸업 직후다. 취업 준비를 하려던 그를 아버지가 불렀다. “운영이 힘들어 목장을 접으려 한다”고 했다. 막연하게나마 ‘나이 들면 부모님의 목장을 물려받아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고민 끝에 그가 먼저 “농장을 이어받아 키워가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힘든 일이라며 반대하셨어요. 기껏 공부시켜 도시로 보내놨더니 왜 다시 시골로 들어오려 하냐고요. 농촌에 청년이 없다 보니 정부가 나서 청년 농부를 양성할 때였죠.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또 생산뿐만 아니라 유가공이나 관광 등 6차 산업으로 키워보고 싶다는 계획을 말씀드렸죠. 아버지는 두말없이 ‘한번 발 들이면 다신 나갈 생각 하지 말라’며 저를 받아들이셨어요.”

부모님은 그의 다짐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가족 농장이지만 그를 정식 직원으로 여겨 대리 직급을 달아주고, 월급도 한 달 꼬박 150만 원씩 챙겨줬다. 그래야 성실하게 일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대학에서 익힌 전문 기술을 인정해준 것 같아 뿌듯했다”며 “부모님의 신뢰가 전문 경영인으로 크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우유 과잉 생산, 6차 산업으로 극복


목장 일은 어려서부터 늘 해오던 것이었다. 새벽 5시와 오후 5시, 열두 시간 간격으로 하루 두 번 소젖을 짜고, 송아지에게 우유 먹이고, 소에게 먹이를 주고 돌보는 일 등 어려울 게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것도 일이 되니 쉽지 않았다. 수시로 들여다봐야 하고, 주말조차 쉴 수 없었다. 반복되는 일상이 6개월째 접어들 무렵 슬럼프가 찾아왔다. 시골이라 회포를 풀 친구도 없었다.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방황하는 그를 다잡아준 건, 다시 아버지였다.

“저처럼 2세 후계농이 이끄는 경북 칠곡에 있는 대흥목장으로 견학을 보내주셨어요. 그곳에서 ‘홀스타인 품평회’라고, 사람으로 치면 ‘미스코리아 소’ 같은 대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단순히 소를 잘 먹이는 게 아니라 우수한 종을 개량하고 튼튼하게 키워서 대회에 내보내는 거죠.”

2012년 10월 워킹 연습을 한 모델(?) 송아지와 함께 출전했다. 결과는 4등, 첫 출전치고 꽤 좋은 성적을 거뒀다. 젊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낙농도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눈떴다.

정 대표가 가공에 눈을 돌린 건 2014년 구제역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였다. 다행히 구제역은 울주군을 피해갔지만 낙농업은 이전보다 더 열악한 환경으로 치달았다.

“우유는 과잉 생산되고 소비는 감소하는 추세예요. 우유 납품을 받는 대기업에서는 우유 농가에 원유 생산을 조절하라 하고, FTA 개방으로 해외에서 유제품은 계속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이죠. 우유를 안 먹는 게 아니라 국내산 우유로 만들어진 제품을 안 찾는 거예요. 기업에 의지하지 말고,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가공업으로 전환하자고 부모님께 제안했습니다.”

정 대표는 먼저 국내 유가공 관련 교육을 찾아다녔다. 이걸로는 부족하다 여겨 젤라토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건너가 기술을 배웠다. 또 30년간 젤라토 가게를 운영해온 장인을 찾아가 머물며 제조법을 훈련받았다. 한국에 돌아와 1년여의 준비 끝에 2015년 7월 본밀크를 열었다.


푸드 마일리지 ‘0’ = 로컬 푸드의 매력

울산 울주군에 있는 유진목장은 아버지 정이기 씨, 어머니 손선희 씨와 딸 정해경 씨가 함께 운영하는 가족 목장이다.
정해경 대표의 최근 관심사는 ‘푸드 마일리지’다. 푸드 마일리지란 식품이 생산되는 곳에서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 거리를 말한다. 마일리지 값이 클수록 생산지에서 멀리 이동했다는 의미. 식품의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식품 운반 과정에서 선박이나 자동차로 인한 탄소 배출량이 증가한다. 푸드 마일리지는 환경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푸드 마일리지를 줄이는 방법 중 하나는 로컬 푸드 섭취다.

정 대표는 푸드 마일리지를 줄이기 위해 목장 안에 100평(330㎡) 규모의 공장을 겸한 카페 공간을 만들었다. 목장에서 짠 우유를 그 안에서 소비하니, 푸드 마일리지는 ‘0’이다.

“대량 생산이나 납품을 위해 공장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공품을 전국에 알릴 생각은 없어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깨끗한 음식을 나눠 먹고 살면 그게 행복이죠. 가끔 프랜차이즈 제안을 받아요. 우리 제품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거절합니다. 대신 그들에게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 난 가공품을 이용하라고 하죠. 맛의 차이는 ‘다름’이지 ‘틀림’이 아니에요. 우리는 맛있고, 저쪽 우유는 맛없어서가 아니라 소가 자라는 지역에 따라 우유 맛이 다를 뿐입니다. 지역 안에서 내 농산물을 지키는 고집, 로컬 푸드만의 매력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그는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예비 청년 농부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3년 사이 농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청년들이 늘었어요. 동지가 생겨 반가우면서도 안타까운 점이 있어요. 1차 산업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처럼 카페를 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좋아 보이죠.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쉽게 뛰어들면 내실이 부족해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농산물의 본질을 먼저 배우고, 가공과 서비스로 한 단계씩 올라섰으면 좋겠습니다. 또 농촌에 대한 학식을 갖춘 청년들이 농업 경영을 제대로 이끌어가기를 바라요.”

그는 매년 한두 번은 꼭 해외 선진 농장에 견학 가거나 연수를 다녀온다. 최근에는 ‘숙성 치즈’를 배워 와 요리에 접목하고 있다. 목장 견학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곳에서 직접 치즈를 만들고 요리해 맛볼 수 있도록 ‘본 치즈어리(Bon Cheesery)’를 여는 게 목표다.

“새로운 걸 배우고 개발하는 일은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처음에는 일이 힘들 때마다 포기할 생각부터 했어요. 하지만 살다 보니 안 힘든 일이 없더군요. 때로는 일이 있어 나에게 힘이 되기도 하고요.”

우직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가는 청년 농부 정해경 대표. 푸드 마일리지 제로를 실천하며 로컬 푸드를 키우는 그의 올곧은 정신이 곧 우리 농촌의 미래다.
  •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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