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프리젠터(Presenter)

회사의 이름으로 청중을 설득하는 스토리텔러

글 : 안희찬 명예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회사 업무와 프레젠테이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탁월한 프레젠테이션으로 대중과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회사와 제품의 가치를 한층 높였다. 프레젠테이션의 종류는 많지만, 회사의 경우 백미는 입찰 프레젠테이션이다. 적게는 수천만, 많게는 수십억 원이 왔다 갔다 하는 입찰 프레젠테이션의 전 과정을 책임지며 긴장감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회사의 목소리이자 얼굴인 ‘프리젠터’다.
프리젠터가 하는 일

입찰 여부가 결정되면 프리젠터는 우선 기업에 보낼 제안서를 작성한다. 제안서는 대략 A4 100장 분량으로 회사가 제공하는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담고 있다. 제안서가 통과돼 1차 선정이 되면 본격적으로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한다. 프리젠터는 작성한 제안서를 편집해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15분 분량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로 재가공한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심사위원 앞에서 발표까지 마무리하면 비로소 프리젠터의 업무가 끝난다. 프리젠터는 입찰을 위해 꾸려진 TF(Task Force)팀 중심에 서서 입찰 전략을 구성하고 전반적인 프레젠테이션 기획 및 발표 역할을 맡는다. 즉 프리젠터는 입찰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업이라 할 수 있다.


필요한 역량과 자질

프리젠터는 준비된 내용을 발표하는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프레젠테이션에 필요한 모든 분야에 관여하는 전문가다. 그만큼 프리젠터에겐 다양한 역량과 자질이 요구된다. 우선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심사위원과 면대면으로 만나는 프리젠터는 청중 분석을 가장 중요시하는데,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텔링을 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이 바탕이 돼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은 프레젠테이션의 자료가 되는 콘텐츠 구성과 기획에도 도움을 준다. 이 과정에서는 의도한 대로 언어화해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글쓰기 능력이 중요하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필수다. 프리젠터는 100장이 넘는 제안서를 자신의 말로 바꿔 심사위원에게 설명해야 한다. 풍성한 언어의 활용과 표현력 그리고 소통 스킬이 요구된다.


연봉과 전망

연봉 계약직으로 일하는 프리젠터도 있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서는 프리젠터를 정규직으로 고용한다. 정규직 고용의 경우, 기업의 연봉 테이블에 맞추는 경우가 대다수다. 전망은 밝은 편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가진 기업이라 할지라도 이를 타 회사에 소개하고 수주로 이어주는 일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제품의 핵심 역량과 메시지, 소통 능력과 대중의 요구 등을 두루 꿰고 있는 전문 프리젠터가 해야 더 빛난다. 최근 기업들은 전문 프리젠터의 필요성을 인지해 이들의 고용을 점점 늘리는 추세다.



‘아워홈’ 전문 프리젠터 채자영

스토리를 통해 ‘나’를 보여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방황한다. 요즘 청춘들이 겪는 방황의 요체는 ‘불확실성’이다. 청춘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확실치 않은 미래 앞에서 방황한다. 그런데 다양한 경험과 노력으로 이 방황을 벗어난 사람이 있다. 광고 PD와 아나운서를 하면서 ‘이 일이 진정 나에게 맞는 건가’라고 방황했지만 ‘프리젠터’라는 직업을 만나면서 비로소 방황을 끝냈다. 식품기업 ‘아워홈’의 전문 프리젠터로 활동 중인 채자영 씨다.


그의 대학 및 사회 초창기 시절은 ‘프로 방황러’라는 말로 압축된다. 그의 꿈은 아나운서였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했던 그는 아나운서가 되면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방송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고, 관련 분야의 인턴 생활도 했다. 사회에 발을 내딛을 무렵에는 아나운서아카데미를 다녔다. 그 즈음 만난 지인에게서 광고 PD에 관심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그는 새로운 기회라 여겨 광고 PD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러나 광고 PD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그는 한 차례 방황했다. 발을 디디고 보니 자신이 원한 분야는 광고 PD가 아닌 연출 담당 PD였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일을 그만두고 원래 꿈인 아나운서 준비에 집중한 그는 결국 SBS CNBC의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5개월 동안 밤낮으로 공부해서 아나운서가 됐습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서 보니 현실은 생각했던 것과 달랐어요. 사람들은 별로 못 만나고 카메라 앞에서만 얘기해야 했죠. PD들이 ‘카메라가 남자 친구 눈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야기하면 돼’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웃음) 카메라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긴 하지만 그때 정말 외로웠어요. ‘이게 정말 하고 싶은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좌절감과 자괴감이 컸죠. 대학 시절에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수많은 활동을 하며 충분히 방황하고 선택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달랐어요. ‘그럼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이 뭘까’ 찾던 도중 프리젠터란 직업을 알게 됐어요.”


매출 1300억 수주


채자영 씨는 ‘프리젠터’라는 직업의 채용 공고를 보자마자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 줄기 빛’ 같았다. 그토록 원하는, 면대면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사 초기에는 난관이 많았다. 아워홈에서도 프리젠터를 채용하는 것은 처음이라 가이드라인이 부족했다. 그는 이 시기에 처음으로 진행한 프레젠테이션을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입사하고 6개월 정도 됐을 때, 급식 분야에서 최대 규모의 프레젠테이션을 맡았어요. 충주에 있는 한 경찰학교인데, 경찰이 되면 무조건 거기서 수업을 받죠. 하루에 3000명이 식사를 하고 1년 매출이 100억 원에 육박합니다. 급식 분야에서 이런 규모는 흔치 않아요. 아무도 우리 회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 회사가 7년간 운영하다가 경쟁사로 바뀌었고, 그 회사가 이후 2년간 운영을 너무 잘해왔거든요. 내부적으로도 ‘우리가 또 될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어요. 그때 ‘자영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는 오더가 떨어졌죠.”

채자영 씨는 기존의 틀을 버렸다. 심사위원을 분석하고 그룹핑을 시도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면서 배운 스토리 흐름을 프레젠테이션에 녹여냈다. 덕분에 그의 프레젠테이션은 자연스러움과 차별성이 두드러졌고, 결국 입찰 성공으로 이어졌다.

“프레젠테이션은 팀 단위로 일합니다. 사업부장이든 팀장이든 수주 발표가 나면 아이처럼 좋아하죠. ‘와!’ 소리 지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한 팀이 돼서 다 같이 해냈다는 행복감이 큽니다. 대기 장소에 있다가 차례가 돼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러 들어갈 때의 길, 그 100m 남짓한 길을 팀원들과 함께 들어갈 때도 정말 행복해요. ‘어벤져스’ 느낌이 나죠.(웃음) ‘우린 최고의 팀이고 최고의 메시지를 준비했다’, 이렇게 마인드컨트롤을 하면서 들어가는데 매우 짜릿해요.”

채자영 씨가 2013년 입사 이후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수주한 사업은 매출 1300억 원이 넘는다. 정직원으로 일하던 그는 작년에 퇴사하고 연봉 계약직으로 업무 형태를 변경했다. 동시에 ‘스토리젠터’ 활동을 시작했다.


프리젠터에서 스토리젠터로


“‘스토리젠터’는 ‘스토리’와 ‘프리젠터’의 합성어예요. 친구들이 저한테 프레젠테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물으면 저는 ‘스토리’라고 답합니다. 단순한 전달자가 아니라, 풍성한 메시지를 담아 보여주는 것이 좋은 발표죠. 친구들과 대화 도중 스토리? 프리젠터?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나온 게 스토리젠터입니다.(웃음)”

스토리젠터로 활동하면서 그는 대학생과 스타트업 창업자를 대상으로 재능 기부도 한다. 강연도 하고, 프레젠테이션과 스토리 컨설팅도 해준다. 한국수사학회의 홍보이사이기도 한 그는 수사학(修辭學)을 공부하며 스토리와 콘텐츠의 본질을 연구하고 있다.

“저는 표면적으로는 멋지게 발표하는 역할을 맡고 있죠. 하지만 그 앞단의 콘텐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콘텐츠 기획을 같이하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이 저에게 묻는 질문의 십중팔구는 발성이나 쇼맨십 등 스킬에 관련된 것들이에요. 콘텐츠 기획이 부실하면 발표 스킬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자신만의 소중한 스토리를 찾으면 좋겠어요. 그 스토리를 같이 찾아주고 콘텐츠로 승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 그것이 스토리젠터의 역할입니다.”

지난 4월 그는 ‘필로스토리’라는 스토리 컨설팅 회사를 설립했다. ‘어떤 것을 좋아하는’이란 뜻의 ‘philo’와 ‘스토리’를 합친 이름이다.

“나만의 스토리가 결국 나를 증명하고 나의 철학을 나타내고 나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스토리젠터로 활동하면서 누구나 가지고 있는 특별한 스토리를 알려주고, 이를 통해 스토리라는 분야에 한 획을 긋는 인물이 되고 싶습니다.”
  • 2019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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