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부

치즈 맛 ‘치우 두부’ 개발한 청년 농부 김민수 씨

고시 준비생, 세상에 없던 두부를 만들다

글·사진 : 서경리 기자

고시생 10년 차. 취업 경험 전무.
이력서에 넣을 단 한 줄의 경력도, 스펙도 없는 서른여섯 백수가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머리 감다가 문득!
농사를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된, 초짜 농부 김민수 씨. 그는 직접 재배한 국내산 콩에 우유를 섞어 치즈 맛 두부를 만든다. 겉모양은 네모반듯한, 뽀얗고 보드라운 두부인데 냄새는 고소하면서도 고리한 치즈 향이 난다. 한 입 베어 무니 맛은 치즈요, 말캉하게 씹히는 질감은 딱 두부다. ‘두부인가, 치즈인가’ 하고 물었더니, 그는 치즈와 우유와 두부 언저리에 있는, ‘치우 두부’라고 답했다. 공부만 하던 고시생이 뜬금없이 농사라니. 콩은 뭐고, 치즈 맛 두부는 뭔가. 무엇보다 그가 농사를 짓게 된 사연이 궁금했다.

“딱 10년입니다. 대학에서 경찰행정학을 전공하고 오래도록 경찰의 꿈만 바라봤어요. 서울 노량진 고시촌에서도 공부해보고, 영어가 부족한가 싶어 미국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왔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낙방했죠. 10년의 도전이 헛수고 같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다 싶었어요. 그게 지난해 봄입니다. 후련하면서도 두려웠죠. 당장 살길이 막막했기에 돈벌이로 뭐든 해야 했습니다.”

시제품 ‘치우 두부’.
처음에는 ‘콩이나 키워 두부를 팔아볼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농사 경험도 없었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머물렀던 전북 정읍의 사찰에서 스님을 도와 콩, 배추, 토마토 수확을 돕거나 장터에 내다 판 경험이 전부였다. 농사를 결심한 그날도 용돈 벌이 삼아 밭일을 도와주고 들어오던 참이었다. 땀 식힐 겸 머리를 감으며 낮에 밭에서 본 콩을 떠올렸다.

“‘콩’ 하니 ‘두부’가 떠올랐어요. ‘두부는 콩 비린내 나서 싫은데’ ‘두부는 싫지만, 치즈는 좋지’ ‘치즈 맛 두부가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게 있을까? 없으면 내가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졌어요.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몽골족이 우유로 치즈를 만드는 걸 본 터키 사람들이 콩물로 두부를 만들었다’는 설이 있어요. 치즈와 두부의 단백질 추출 원리가 같다는 걸 그때 알았죠. 치즈 맛 두부도 가능하겠다 싶었어요.”

서양 음식인 치즈와 동양 음식인 두부의 만남이라고 할까. 치즈는 우유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응고시켜 만든 식품이다. 물 대신 우유에 콩을 섞어서 굳히면 ‘콩 치즈’ 혹은 ‘치즈 맛 두부’가 될 거라 확신했다. 그는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그때 생계가 절실했기에 앞뒤 잴 것 없이 아이디어 하나로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실험용으로 한 달간 600kg 콩 사용


그는 먼저 스님에게 500평(1600㎡) 부지의 농토를 빌려 콩을 심기 시작했다. 또 치즈 공장이나 두부 장인을 찾아다니며 두 가공품의 제조법을 확실히 익혔다. 두부는 콩물을 굳혀 만들고, 치즈는 우유를 발효시켜 만든다. 굳히기와 발효는 완전히 다른 제조 방식. 그는 이 두 가지를 접목할 가공법을 떠올렸다. 바로 ‘전두부’ 방식이다.

“전두부는 콩을 가루로 갈아서 물에 섞어 콩물을 만들고 응고제를 넣어 굳힌 형태입니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두부는 모두부죠. 불린 콩을 갈아서 껍데기는 걸러내고 콩물만 추출해 굳힌 형태예요. 처음에는 모두부처럼 불린 콩을 갈아서 우유에 넣고 굳혔습니다. 그랬더니 흐물흐물한 데다 짜고 콩 비린내는 더 심해졌어요. 여러 실험 끝에 전두부 방식을 적용해 가루로 간 콩을 우유와 섞어 두유를 만들고 굳혀봤어요. 우유를 일정 온도에서 응축시키면 치즈처럼 단단해지는 원리를 이용한 거죠.”


우유가 응고되면서 치즈 풍미를 낸 게 핵심이다. 치즈 맛 우유 두부, 앞 글자를 따서 ‘치우 두부’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개념의 가공식품이 탄생했다. 그는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실체로 만들어내기 위해 밤낮으로 테스트했다. 한 달간 600kg의 콩을 사용했다. 돈이 없어 마트에서 떨이로 파는 우유를 사 왔고, 재료비는 아르바이트로 충당했다.

시제품을 완성한 이후에는 사업 계획서를 만들고 틈나는 대로 지원 사업에 도전했다. 콩과 우유를 이용한 신개념 가공식품에 대한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전북지식재산센터 IP 창업존의 특허출원지원사업에 선정돼 기술 특허를 따낸 데 이어 테크노파크 농생명융복합지원사업으로 지정돼 3000만 원을, 기술보증기금의 기술혁신형사업에 선정돼 1억 원을 지원받았다. 또 전북생물산업진흥원의 ‘바이오플렉스 창업보육센터’ 입주 기업으로 들어가면서 사업장도 마련했다. 농토도 기존 1600㎡(500평)에서 4000㎡(1200평)로 늘렸다.

공모전에도 문을 두드렸다. 농업기술실용화재단에서 ‘아이디어상’, 농협의 ‘테드 농식품 아이디어’ 경연대회에서 우수상, 전북발전협의회의 ‘원스톱플랫폼구축 청년창업 대상’을 수상했다.


무모했지만 간절했다

찹쌀과 보리, 현미 등 국내산 잡곡을 미세분자로 갈아 만든 ‘곡물세끼’.
단순한 상상이 무모한 도전으로, 또 현실로 이뤄지기까지 3개월, 무에서 유로 만들어지기까지 1년이 안 걸렸다. 그는 “무모했지만 간절했기에 열정적으로 달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결정에 대한 망설임이 없어요. 나아갈 방향이 잡히면 그 길만 바라보면 됩니다. 청년 창업의 가장 큰 장점은 ‘나 혼자만의 결정으로 모든 일을 바로 처리할 수 있다’는 거예요.”

‘치우 두부’는 대량 생산을 위한 단계를 거치고 있다. 정부 지원금을 받았지만, 상품이 판매되기까지는 투자의 연속. 두부가 완성되기 전 ‘생계’용으로 그는 ‘곡물세끼’를 만들었다.

“찹쌀과 보리, 현미, 서리태, 수수, 조 등 22가지 국내산 잡곡만을 갈아서 만든 가루 형태의 가공식품입니다. 쌀에 흡수되도록 초미세로 갈았어요. 밥 지을 때 쌀과 함께 넣으면 잡곡밥이 되죠.”

‘곡물세끼’는 커피 믹스처럼 밀봉 형태로 만들어 휴대가 간편하고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 20g들이 10개를 한 상자에 담았다. 가격은 11000원. 지난해 10월 말 상표권 등록을 마쳤고, 올봄 크라우드 펀딩으로 시중 판매한다. 첫 펀딩 수익금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쓰일 예정이다.

청년 농부 김민수 씨는 지난 10월 ‘치우 두부’와 ‘곡물세끼’를 대표 브랜드로 내세워 ‘푸른향’이라는 기업을 세웠다. ‘푸르고 맑은 향’이라는 뜻으로, 좋은 향기를 나누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바람이 담겼다.

“제 신조는 ‘자신에게 부끄럽지 말자’입니다. 수입산 잡곡이나 가루우유를 써서 단가를 맞추라는 말을 종종 들어요. 국내산 콩과 잡곡, 신선한 우유를 쓰는 건 고집이 아닌 제 소신입니다. 농사를 시작하며 ‘농촌의 어르신들과 함께 성장하자’고 다짐했어요. 우리나라 농업은 기술력이 뛰어나고 농토도 우수해요. 농촌 어르신들과 융화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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