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의 슬기로운 퇴사생활 (11)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글 : 이슬기 

액션건축가의 말
사무치게 힘든 날, 내게 필요한 것은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한 사람’이다.
하루에 꼭 한 번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한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더니 사실이었군.” 이럴 때마다 ‘하아~’ 깊은 한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하며 엉덩이를 의자의 끝으로 바짝 밀어 넣는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고 다짐하는 일종의 시위다.

고백하면, 이기는 경우보다 지는 경우가 많다. 생각한 대로 이뤄진 적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다. 그 흔한 경품 당첨의 경험도 없다. 심지어 록밴드 노브레인의 스탠드 공연에서 드러머가 던진 스틱을 우연히 잡았을 때도, 주변 관객들의 거친 손이 폭격기처럼 날아와 안경을 부수고 옷까지 찢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로또도 사지 않는다. 이번 생에 공짜 운은 내 사주에 없는 것 같아서다.

노력을 쏟아부어 준비를 한 경우에도 행운은 가끔 다른 곳을 향해 날아간다. 두 달 이상 애쓴 비즈니스 협상이 사소한 이유로 틀어지기도 하고, 실컷 준비한 강연인데 이틀 전에 결강 통보가 오기도 한다. 불과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공들인 만큼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한숨이 연속될 때는, 걱정하는 티를 내지 않는 내 동생 수미에게 화상 전화를 한다. 실패담을 훌훌 이야기하고 난 후, 동생의 입에서 나오는 사소한 응원이 듣고 싶어서. “얼굴은 좋아 보이는데? 그래도 지금이 훨씬 재미있지?”

동생의 시크한 응원은 죽어가는 슬기 캐릭터의 HP 0을 에너지 100으로 완충하는 힘이 있다. 맞다. 모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그리고 어차피 알고 있었다. 인생은 원래 쓰다는 것을, 게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앞으로도 많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괜찮다. 전화를 끊고, “크앙!” 한번 소리 지르고 나면, 다음을 고민할 힘이 생길 거니까. 푹 처져 있는 시간에 다음을 도모해야만 간간이 혀끝에 진한 단맛을 묻힐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다시 책상 앞으로 슬금슬금 걸어간다. 자세를 꼿꼿이 고쳐 앉는다. 손이 펜을 들어 마음을 번역한다. ‘다행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살아도 인생이 씁쓸한 것은 매한가지일 텐데, 그래도 넌 좋아하는 일을 이루는 과정 속에 마주치는 씁쓸함이잖아. 네 앞에 주어진 모든 일들을 할지 말지에 대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이 있잖아. 그리고 넌 이미 알고 있어.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사라진다는 것을 말이야. 힘들게 노력해서 겨우 얻은 사과 한 알을 한 입 베어 물 때만 느낄 수 있는 단맛도 알고 있지.’

인생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맨 것처럼 무거운 날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날도 30분만 고통을 참으면서 걸으면 통증에서 무뎌진다는 것을 물집 잡힌 발로 하루 25km씩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알게 됐다. 그렇게 걷다 보면 멋진 풍경도 만나고,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도 만나고, 때로는 함께 걷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더라.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걷고 싶은 그 길을.

글쓴이 이슬기는 한때 회사원이었다.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일 년에 두세 달쯤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며 사업가, 작가, 여행가, 교육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생을 무대로 평범한 사람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삶의 방법을 연구하고, 공유하는 것을 사랑하며 워라밸 연구소 ‘액션 랩’을 운영 중이다. 《퇴사를 준비하는 나에게》, 《댄싱 위드 파파》를 썼다.
  • 2019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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