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언니 은열의 회사생활 (11)

직장 내 대인관계의 ‘적정 온도’

글 : 은열 

까칠언니의 한마디
“우리가 남이가!” 같은 말은 뜨거워서 마음을 움직인다.
하지만 직장생활이 어디 ‘뜨거운 마음’ 따위로 굴러가던가.
그러니 온도를 살짝, 이를테면 마시기 좋게 데운 우유쯤으로 낮출 것.
기자 시절 제일 힘들었던 것은 낯선 이에게 섭외 전화를 거는 일이었다. ‘몇 시쯤 전화해야 상대가 좀 편안해할까?’ ‘첫인사는 어떻게 건네지?’ ‘질문을 건성으로 듣거나 대뜸 거절하면…?’ 나름의 ‘시나리오’를 짜고 ‘시뮬레이션’까지 거친 후에야 겨우 전화기를 들었다. 승률은 50% 내외였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인터뷰가 성사된 적도 있었지만 “내가 왜 당신을 만나야 하느냐”는, 냉랭하고 무례한 답변에 황망히 전화를 끊은 적도 많았다. 어쨌거나 기자를 그만두게 됐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할 일 좀 줄겠구나!’

기자여서 좋을 때도 많았다. 그중 하나가 ‘동료애’란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대부분의 작업을 혼자 해내는데 일의 강도는 만만찮고 매일 시간과 씨름하다 보면 마감 후엔 으레 녹초가 됐다. 그럴 때마다 선배들은 ‘네 맘 다 안다’는 듯 허름한 선술집으로 후배들을 이끌었다. 우린 노가리나 번데기탕 같은 안주를 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누구 인터뷰이가 더 진상이었는지 같은 주제로 격론을 벌였다. 내키면 2차, 3차도 마다하지 않았고 얼큰하게 취해 택시에 올라타며 내심 흡족해했다. ‘그래, 이런 게 직장생활의 맛이지!’


‘뜨거운 대인관계’의 환상이 낳은 부작용

이직 후 적응하기까지 가장 오래 시간이 걸린 일은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냉기를 견디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서 오라고, 반갑다며 인사를 건네면서도 ‘필요 이상으로 다가오지 말라’는 신호를 분명히 보냈다. 정오 즈음, 정신 차려보면 삼삼오오 점심 먹으러 떠나 텅 빈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 출근했는지 모르게 각자 자리에 앉아 업무를 처리했고, 퇴근 무렵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약간의 시차를 두고 총총 사라졌다. ‘군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거구나, 실감했다.

좀처럼 해소되지 않던 문제의 실마리가 풀린 건 뜻밖의 장소에서였다. “회사 사람들이 너무 차가운 것 같아요. 잘 버틸 수 있을까요?” 오래 알고 지내던 선배와 모처럼 마주한 식사 자리, 조심스레 털어놓은 고민을 한참 듣던 선배가 대꾸했다. “그런데 말이야,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가 뜨거우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닐까?” 복잡했던 머릿속이 돌연 명징해졌다. ‘그러게.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대체 뭘 기대한 거지?’

그제야 내 진짜 문제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큰 패착은 과도한 사람 욕심이었다. 난 누굴 알게 되든, 그 계기가 뭐든 일단 안면을 튼 사람과 잘 지내고 싶었다. ‘(낯선) 사람 만나는 게 일’인 기자로 살면서도 그 기조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 상대에게도 내가 매번 그리 살갑거나 친해지고 싶은 존재일 리 없었다. 요행히 좋은 이를 만나 우정을 쌓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못한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데 그 시절의 내겐 그게 이해하기 힘든, 무엇보다 슬픈 일이었다.


기대치를 낮추되, ‘좀 더 나은 사람’ 되기

그 일이 있고 난 후 회사 동료에 대한 기대치를 확 낮췄다. 아니, ‘애초에 무리하게 지녔던 로망을 내려놓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보낸 메일함 속 ‘수신 확인’ 여부나 메신저 채팅방의 ‘1’ 메시지가 사라지는 시점을 수시로 확인하는 짓도 그만뒀다. 반면, 스스로는 ‘확 낮춘’ 기대치보다 이삼 도쯤 더 따뜻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딱히 일정 없는 날, 예전 같으면 책 한 권 옆구리에 끼고 카페로 직행했겠지만 요즘은 약속 없어 ‘밥 멤버’ 찾는 동료가 보이면 부러 말을 건다. “요 앞에서 간단히 식사할 건데 같이 가실래요?” 떠들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상대를 못 찾아 방황하는 동료에게도 먼저 다가가 묻는다. “무슨 일 있어요?”

실은 별것 아닌 변화인데 여파는 꽤 크다. 제일 좋은 건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는 사실이다. ‘좀 덜 받고 좀 더 해주자’는 자세가 이렇게 많은 걸 바꿔놓을 줄이야! 직장 동료의 정의를 ‘모든 걸 나누며 일도 하는 사람’에서 ‘대개는 함께 일만 하는 사람’으로 좁히자, 잘 모르는 이에게 업무상 필요한 요청을 하는 일도 한결 수월해졌다. 내가 잘났거나 상대가 나랑 친해서가 아니라 진행 중인 일을 더 잘되게 하려 부탁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순간, 잘 모르는 동료에게 먼저 연락하는 일이 예전처럼 어렵지 않았다.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지며 자의 반, 타의 반 멘토 노릇을 종종 한다. 그럴 때마다 가장 많이 듣는 회사생활의 고충은 단연 대인관계에 관한 것이다. “믿었던 후배에게 발등을 찍혔어요” “단짝처럼 지내던 동료가 갑자기 절 투명인간 대하듯 해요” “다들 잘 지내는데 저만 외톨이 같아요”…. 글쎄, 20년을 쉼 없이 내달린 내게도 그 문제는 도무지 요령부득이다. 다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실망의 폭을 줄이려면 처음부터 너무 많은 기대를 품지 말아야 한다. 대신 당신 자신은 지금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고자 애썼으면 좋겠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글쓴이 은열은 신문사에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기업으로 이직했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글쓰기인 데다 오랜 데스크 생활까지 거쳐 남의 글 들여다보고 고치는 데 이골이 났다.
어쩌면 이 땅 어딘가에 존재할, ‘논스톱 20년 차 직장인’의 내공이 궁금할 이름 모를 후배들에게 손톱만 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다시 글 쓸 용기를 냈다.
  • 2019년 04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11

201911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11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