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게임 캐스터(game caster)

입담과 순발력으로 게임에 생명력 불어넣는 스토리텔러

글 : 안희찬 명예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2018년 11월, 3인칭 슈팅 게임(TPS) ‘포트나이트(Fornite)’가 국내 PC방에 도입됐다. 포트나이트의 개발사 ‘에픽게임즈’는 국내 게이머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한 광고를 제작했다. ‘세상에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멘트로 시작하는 포트나이트 광고. 어렵게 잠든 아이, 무서울 게 없는 중2병 인물부터 ‘자존심 센 대한민국 게이머’ 등이 등장한다. 이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로 유명한 크리스 프랫(Chris Pratt)이 나와 국내 게이머들에게 말한다. ‘포린이들!’ 포트나이트와 어린이의 합성어인 포린이는 포트나이트의 초보자를 일컫는 말이다. 게임 강국으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게이머들을 건드리며 포트나이트의 세계로 초대하는 유쾌하고도 도발적인 광고였다.
대한민국이 게임 강국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e-스포츠’의 발전이 있었다. e-스포츠가 등장하면서 게임의 개념은 ‘직접 하는 게임’뿐만 아니라 ‘보고 듣는 게임’으로 확장됐다. 동시에 다양한 게임 관련 직업이 탄생했다. 그중에는 게임 해설자와 팬들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게임 캐스터’가 있다.
© 뉴시스
어떤 일을 하나

게임 캐스터는 일반적으로 스포츠 캐스터와 유사한 업무를 한다. 스포츠 캐스터는 스포츠 경기에서, 게임 캐스터는 게임 경기에서 시청자에게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전달한다. 게임 캐스터는 여기서 한발 더 들어간다. 게임 외적으로 오프닝과 클로징을 진행하며 관람하러 온 팬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한다. 이 과정에서 게임이 진행되는 방식과 프로게이머를 함께 소개하면서 인터뷰도 진행한다. 즉 MC 역할도 겸하는 직업이 게임 캐스터다. 게임 해설자와 호흡을 맞추는 것도 게임 캐스터의 임무다. 게임 해설자와 게임 캐스터 모두 게임에 정통한 사람들이지만 각자의 역할은 다르다. 게임 해설자가 게임에 대해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해석을 전한다면 게임 캐스터는 게임 해설자와 팬들 사이에서 게임 경기의 내용을 정리한다.


게임 캐스터가 되려면

게임 캐스터는 전공과 무관한 편이다. 필수 자격증 같은 객관적인 지표도 필요하지 않다. 게임 캐스터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방송 역량과 목소리’다. 일반 스포츠보다 상대적으로 흐름이 빠른 ‘게임’을 생방송으로 중계한다. 그렇다 보니 기본적인 방송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게임 캐스터는 화면에 나오는 시간보다 목소리가 나오는 시간이 더 길다. 게임 내에서의 긴박한 상황을 전달하기 위해 소리도 많이 지르는 편이다. 이를 위해 정확한 발음과 좋은 발성, 적절한 목소리 톤은 필수다. 게임 중계를 보는 주 시청층이 젊은 편이기에 재미있는 중계를 위한 입담도 중요하다. 이러한 소양을 배양한 후 게임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기르면 게임 캐스터가 될 수 있다.


연봉과 전망

게임 캐스터의 업무 강도는 높은 편이다. 앞서 말했듯 기존 캐스터의 업무와 MC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임 진행 시간도 점차 길어지는 추세여서 이와 비례해 게임 캐스터의 업무 강도도 증가하고 있다. 게임 캐스터의 근무 형태는 다양하다. OGN이나 SPOTV GAMES와 같은 게임 전문 방송국 소속으로 일할 수도 있고, 여러 게임 중계 플랫폼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기도 한다. 연봉은 게임 캐스터마다 천차만별. 전망은 밝은 편이다. 국내에 다양한 게임 중계 플랫폼과 콘텐츠가 있으며, 지난해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e-스포츠가 시범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e-스포츠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확장 중인 시장이어서 게임 캐스터의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소림 게임 캐스터

e-스포츠 20년 역사의 현재 진행형 레전드

1998년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1이 국내에 상륙했다. 스타크래프트1의 등장은 PC방 신드롬을 일으켰다. 이 신드롬은 상금이 걸린 스타크래프트1 대회 개최 및 게임 중계 시스템의 도입으로 이어졌다. 본격적인 e-스포츠 시대가 도래한 시점이다. 스타크래프트1뿐만 아니라 리그 오브 레전드(LoL), 오버워치, 포트나이트 등의 게임이 유행하며 세계적으로 거대한 시장을 이룬 e-스포츠.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e-스포츠의 레전드이자 최고의 여성 게임 캐스터 정소림(46) 캐스터를 만났다.


케이블TV가 한창 붐을 일으키던 1999년. 정소림 게임 캐스터는 케이블TV MC와 리포터로 활동했다. 결혼과 출산 후 공백 기간이 길어져 더 이상 방송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전공인 국어국문학을 살려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그때 스타크래프트1을 만났다.

“스타크래프트1을 처음 접했을 때, ‘뭐 이런 게임이 있나’ 하면서 빠졌습니다. 이때 스타크래프트1 중계를 하던 선배의 권유로 오디션을 보고 게임 캐스터에 입문했죠.”

오버워치 Apex 시즌4 캡처 © OGN
2000년 iTV의 게임 캐스터로 데뷔한 정소림 캐스터. 그는 스타크래프트1은 물론이고 스포츠 게임, 격투 게임 등을 중계하며 게임 캐스터로서의 경력을 쌓아갔다. 정소림 캐스터는 당시를 여러모로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한다. 게임 캐스터라는 직업이 정착되기 전이라 주변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힘들었고, ‘여성’ 게임 캐스터에 대한 선입견도 그를 괴롭혔다.

“당시에는 ‘게임은 남자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했어요.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나 게임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 대부분이 남성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여자가 게임을 알겠느냐는 선입견을 갖고 바라본 경우가 많았어요. 심지어 ‘게임은 설치하고 중계하니?’라는 말도 들어봤어요. 한번은 제가 A라는 말을 하고 남성 캐스터도 똑같이 A라고 했는데, 저한테만 ‘얘는 잘 모르네…’라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고시 준비하듯 게임 공부


‘여성’이라는 선입견에 맞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공부였다. 게임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넓히기 위해 마치 고시 준비하듯 이론적인 접근법으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게임을 공부했다.

“먼저 중계를 맡은 게임을 해봐요. ‘이 게임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구나…’ 하면서 게임이 어떠한 시스템이고 장단점은 무엇인지 직접 플레이하면서 느끼는 거죠. 그다음이 문제입니다. 제가 아무리 게임을 해봐도 프로게이머만큼 실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게임 내용을 따라갈 수가 없더군요.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이론적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각 유닛의 공격력과 수비력이 다 수치화돼 있잖아요. 그런 수치들을 모두 외우고 직접 쓰면서 공부했죠. 해설자와 프로게이머들한테 물어보기도 했어요. 모든 게임을 이런 식으로 공부했죠. 공부를 많이 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그 덕에 지금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소림 캐스터는 특유의 편안하고 친숙한 중계를 통해 여성 캐스터로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져왔다. 스타크래프트1부터 시작해 스페셜포스, 오버워치, 리그 오브 레전드 등 다양한 게임의 중계를 맡으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간 수많은 중계를 해왔지만 특히 2010년 WCG의 워크래프트3 결승전을 가장 기억에 남는 중계로 꼽는다.

“당시 국내에는 워크래프트3를 위한 대회가 부족했어요. 워크래프트3를 하는 게이머들은 오직 WCG를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었죠. 그때 김성식 선수가 대한민국 최초로 WCG 워크래프트3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금메달이 확정된 순간 같이 해설을 하던 오성균 해설자와 함께 크게 감동했던 기억이 나요.”


편안함과 친근함이 장점

정소림 캐스터는 편안하고 친숙한 중계로 입지를 다져온 독보적인 여성 캐스터다.(사진제공 정소림)
올해로 데뷔 20년 차를 맞은 정소림 캐스터. 게임 캐스터의 전설 중 한 명인 그는 롱런 비결을 묻는 질문에 ‘선수와 팬에 대한 사랑’ 그리고 ‘가족’이라고 답했다.

“선수와 팬들을 많이 아끼는 편이에요. 누군가 저한테 e-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물으면 선수와 팬이라고 대답합니다. 어린 친구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걸고 e-스포츠를 하기 때문에 그 선수들이 너무 소중하고, 시간을 내서 e-스포츠 경기장을 찾아주시는 팬들이 있어 리그가 진행되니까요. 선수와 팬이 없는 e-스포츠는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진심이 선수와 팬들에게 잘 묻어난 것 같아요. 그리고 일하는 엄마로서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었던 데는 가족의 배려가 큽니다.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

정소림 캐스터는 게임 캐스터를 그만두는 날이 오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게임 캐스터와는 다른 역할을 통해 e-스포츠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e-스포츠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하고 있고, 미래도 함께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게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정소림 캐스터는 게임 캐스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게임 캐스터는 캐스터뿐 아니라 MC 역할도 겸하기 때문에 쉽지는 않아요. 그래서 한동안은 게임 캐스터 지망생들에게 웬만하면 하지 말라고 했죠. ‘내가 게임 캐스터에 목숨 걸어보겠다!’ ‘게임 캐스터로서 뭐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는 절박함이 있다면, 자신의 장점을 빨리 캐치하라고 말해줍니다. 아나운서적인 소양만 갖춘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자신만의 개성도 중요해요. 이것을 빨리 찾아야 해요. 저는 처음에 저만의 장점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팬들한테 인정받기까지 시간이 걸렸죠. 어느 시점이 지나면서 편안함과 친근함이 나만의 장점이란 걸 깨닫게 됐어요. 팬들에게 ‘저 친구 매력적이다’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내가 갖고 있는 장점이 뭔지 캐치하고,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연구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201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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