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농부

알알이거둠터 송예슬

착한 농부 가족이 만든 착한 주스

글·사진 : 서경리 기자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채소로 건강한 주스를 만들어 파는 농부 송예슬(31).
그는 ‘건강하게 지은 농작물은 보약과도 같다’고 말한다. 잎사귀 밑에 달팽이가 살고, 울퉁불퉁 못난이 당근이 자라는 농장, 충북 청주 흥덕구 정봉동의 ‘알알이거둠터’에서 청년 농부 송예슬 씨를 만났다.
집 한 채, 밭 열 마지기,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 풍족하진 않았지만 부족함 없이 자랐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서도 사랑만은 차고 넘치게 받았다.

1남 1녀로, 시골에서 나고 자란 송예슬 씨는 동물을 좋아하는 아버지와 식물을 좋아하는 어머니 밑에서 정글북의 ‘모글리’처럼 자유분방하게 자랐다고 했다. 배가 고프면 양젖을 짜서 마셨고, 짚더미 위에서 강아지와 뒹굴다 함께 잠들었다. 그는 꽃과 열매, 자연과 가족이 있는 시골이 낙원이라고 말한다.

송씨 가족이 청주에 자리 잡은 건 30여 년 전. 해군 중사로 전역한 아버지 송재혁 씨가 귀농하면서다. 아버지는 매일 1톤 트럭을 끌고 새벽 장에 나가 작물을 팔아 가족을 먹여 살렸다. 어려운 살림에 가정을 꾸리면서 토마토, 오이, 호박 등 돈이 되는 작물은 뭐든 키웠다.

농장에 변화가 찾아온 건 20여 년 전. 신선초와 케일 등 특용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다. 신선초는 생으로 먹는 채소다. 송씨는 “아버지가 잎째 먹는 채소는 무엇보다 건강하게 재배해야 한다며 밭 전체를 갈아엎고 친환경 농법으로 바꿨다”고 했다. 이를 위해 농업기술센터와 유기농 재배 농가를 찾아다니며 배웠다. 유기농 재배를 정착하기까지 수년, 10년 만에 대박을 터뜨렸다.

“녹즙 붐이 일면서 대기업에서 우리 밭을 통째로 계약했어요. 신선초는 여러해살이풀이라 한 번 심으면 1년 동안 18번 수확할 수 있는 데다가, 약재로 먹는 채소라 시장가격도 좋았죠. 잘 벌 때는 한 해 2억까지 받았습니다.”


덕분에 비닐하우스도 70동까지 늘렸다. 농장 일이 바빠지면서 송예슬 씨도 남동생 새결 씨와 주말마다 잡초를 뽑거나 새참을 나르며 일손을 도왔다. 남매가 부모님 농사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중학교 때다. 인터넷 마켓에서 옷을 사 입는 것처럼 농작물도 온라인으로 팔아보면 어떨까 생각했고, 곧바로 온라인 페이지를 개설했다.

“옥션이나 인터파크, 지마켓 등에서 3~4kg씩 소량으로 판매했어요. 택배 포장하고 문의 글에 답변하는 모든 일을 가족이 함께 했죠. 알알이거둠터도 이때 지은 이름입니다. 알 하나하나 거두어들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동생 새결 씨도 블로그를 개설해 적극적으로 농장을 알렸다. 남매는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온라인 판매를 이어갔다. 우송대 철도건설환경공학과에 진학한 예슬 씨는 3학년 때 상하수도 관련 연구실에 들어가 석사 과정을 밟으며 수질과 토양오염을 연구했다. 그 와중에도 낮에는 연구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농장 온라인 판매를 도왔다.

“새로운 작물이 추가되면 사이트를 재단장하고 댓글마다 답을 달아주는 일을 했어요. 연구 중에도 고객 전화가 종종 걸려왔죠. 이런 식으로 일하는 건 곤란하다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이 일에 치여 사시는 게 맘에 걸렸어요. 연구소에 들어간 지 5년 반, 직장을 접고 농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의 권유로 한국농수산대학교를 졸업한 남동생도 농장에 합류했다.


채소소믈리에, 주스마스터

친환경 유기농 재배만을 고집하는 알알이거둠터 농장. 신선초 줄기에 달팽이가 산다.
2016년 슈퍼 푸드 붐이 일었다. 배우 귀네스 팰트로가 케일 주스를 마시고 다이어트 효과를 봤다는 기사가 뜨면서 인기가 더욱 치솟았다. 미용과 다이어트식에 관심이 쏠렸고, 농장에 케일 주문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송예슬 씨는 채소 가공에 관심을 뒀다. 부모님이 정성으로 농사지은 유기농 채소로 건강 주스를 만들어 부가가치를 올리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 농업기술센터와 한국식품정보원에서 운영하는 전 과정을 배웠다. ‘채소소믈리에’ 자격증도 땄다. 채소소믈리에는 채소와 과일에 관한 전문 지식을 갖추고, 소비자에게 적합한 정보를 제공하는 전문가를 말한다. 또 로컬푸드 전문요리 연구가에게 해독 주스 제조법을 배우고, 사단법인 한국로컬푸드협회에서 ‘주스마스터’ 과정도 밟았다.

알알이거둠터의 가족농부. 송재혁·박순님 부부와 예슬·새결 남매.
이를 토대로 지난해 2월, 농장에 주스 바를 차렸다. 농장을 찾은 고객에게 즉시 갈아 만든 채소 주스를 맛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10월부터 유기가공식품 인증을 받아 농장에서 재배한 유기농 당근과 비트, 신선초와 케일로 만든 주스를 본격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덕분에 농장 매출도 2배가량 늘었다.

“홈 메이드로 저온 즙을 내서 주스를 만들고 있어요. 온 가족이 이 일에 뛰어들어도 하루에 판매할 수 있는 양은 150mL 200팩 정도입니다. 더 이상의 욕심은 없어요.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 최우선입니다.”

송예슬 씨는 지난해 농협중앙회 소속 ‘청년 여성 농업인단체’에 가입했다. 8월에는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 청년창업랩 4기로 들어가 영양분석과 먹거리 창업 멘토링도 받았고, 12월에는 농협이 주최하는 ‘농식품 파란 창업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올해 1월에는 농식품부와 농협이 청년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청촌공간’에 입점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마음으로 짓는 농사가 진짜 농사

농장에서 갓 수확한 싱싱한 비트.
곡식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부지런한 농부에게는 식물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식물의 잎사귀나 모양을 보고 수분이 부족한지, 비타민이 부족한지, 병들었는지가 다 보인다는 말이다. 송예슬 씨는 지금도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농장에 갈 때마다 농작물의 상태를 살핀다. 케일을 포장하면서 “사람들을 건강하게 해줘”라는 부탁도 잊지 않는다. 마음으로 짓는 농사가 진짜 농사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알알이거둠터를 찾는 고객 중에는 암 환자가 많다. 병을 치료하느라 돈이 없거나 부족해 보이는 고객에게는 농작물을 반값에 주거나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설사 그들이 병을 속일지라도, ‘어딘가 필요해서 그러겠지’ 하는 마음으로 나눈단다. 실제로 병을 앓던 이들이 이곳의 신선초를 먹고 나았다며 감사 인사를 전해왔다고 한다.

“아버지가 늘 우리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우리의 일은 단순한 농사가 아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건강을 돕는 일이다. 의사나 약사만큼이나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요. 농부로서 어떤 직업보다 자부심이 있습니다. 소비자가 안심할 수 있는 먹거리 농사를 짓는 게 우리 가족의 목표입니다.”
  •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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