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스포츠 통역사 - 서울 SK나이츠 한성수 스포츠 통역사

통역에 청춘을 바친 1세대 스포츠 통역사

글 : 안희찬 명예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1996년, 한국 프로농구(KBL)가 출범했다. 동시에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됐다.
한국 프로농구에도 전문 통역사가 필요한 시기가 온 것이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스포츠 통역사로 활약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 서울 SK나이츠 스포츠 통역사 한성수(47) 씨다.
한성수 스포츠 통역사의 아버지는 국내 최초 NBA 해설위원인 고 한창도 씨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한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농구장에 다녔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미국 시애틀로 이민 갔다. 당시 지역 연고 NBA팀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경기를 보며 농구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8년의 이민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한씨는 제대 직후인 1998년, 인천 대우 제우스의 전담 통역사로 입사했다.

“용병제도가 생기고 2년 차에 처음 통역사로 들어왔습니다. 농구 용어를 몰라 처음에는 고생했어요. 보통 ‘엘보(Elbow)’라고 하면 팔꿈치라고 생각하잖아요. 농구에서 엘보는 자유투 라인 양 끝을 뜻합니다. 또 농구에서는 패스하는 걸 ‘히트(Hit·때리다)’라고 하죠. 한국에서 쓰는 농구 용어에는 콩글리시가 많아서 외국인 선수들에게 적합한 용어로 통역해야 할 상황이 꽤 됩니다.”

1세대 스포츠 통역사로서의 어려움이 많았다.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딱히 물어볼 선배도 없었다. 농구 관련 책을 번역해 보는 등 노력했지만 역부족일 때가 많았다. 농구 선수가 아니다 보니 현장 용어를 이해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 대우 제우스 감독이었던 유재학 감독(현 울산 현대모비스피버스 감독)이 구세주가 됐다고 한다.

“유재학 감독님이 종이 몇 장을 주면서 번역해보라고 하셨어요. 농구 전술이 적힌 종이였죠. 그걸 정리하면서 통역에 사용될 단어나 문장 등을 많이 배웠어요. 한국 농구 시스템도 많이 배웠고요.”


NBA와 한국 농구의 다른 점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대우 제우스에서 근무한 그는 이후 2년간 스포츠마케팅 회사에서 일했다. 그러다 2004년에 다시 농구장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서울 SK나이츠의 통역사로 일하고 있다. 20년간 스포츠 통역사의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그는 외국인 선수의 입국 직후, 한 달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입국 후 한 달간 외국인 선수들은 연습경기를 하고 손발을 본격적으로 맞추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적응 여부가 갈립니다. 이때 잘 적응하면 죽 같이 가지만 적응 못 하면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즌 초반에 선수들이 많이 바뀌는 편이죠. 기량이 좋은 NBA 출신 선수들도 많이 교체됩니다. 이 시기에 제 역할이 특히 중요하죠.”

농구의 경우, 주로 미국 출신의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을 찾는다. 그들은 ‘아메리칸 마인드’의 소유자들이라 한국 문화와 융화되기가 쉽지 않다. 문화 차이를 좁혀주는 일도 그의 임무다. 그는 이 과정을 ‘외국인 선수의 한국화’라 표현했다.

“미국은 감독과 코치가 선수한테 지적하면 선수들도 항변을 합니다. 지금은 좀 누그러들긴 했지만 한국에선 이런 대화가 용납이 안 됐어요. ‘이건 이렇게 해!’ 그러면 ‘네. 알겠습니다’ 하는 게 우리 문화였죠. 대부분의 외국인 선수들이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아서 이런 상황을 조율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항상 예스(Yes)로 대답해라. 네가 이해를 못 해도 일단 오케이(Okay) 라고 해라. 그게 한국 문화다. 나중에 다시 물어보면 감독님께서 이야기해줄 거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한국 농구만의 특성을 외국인 선수에게 알려주는 일도 중요하다.

“NBA는 일대일 위주의 개인기 농구를 많이 하는데 한국은 조직적인 팀 농구를 많이 해요. 정해진 전략과 전술을 충실히 이행하는 시스템적인 농구를 추구하는 편이죠. 외국인 선수들이 한국만의 농구 스타일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감독님의 농구 스타일에 맞게 외국인 선수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외국인 선수의 생활까지 감독님이 컨트롤하실 때가 있어서 거기에 맞춰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합니다.”


거쳐 간 외국인 선수만 80여 명


20여 년간 한성수 스포츠 통역사를 거쳐 간 외국인 선수는 80명이 넘는다. 초창기에 만난 조니 맥도웰(Johnny Mcdowell)과는 요즘에도 연락을 주고받는다. 한국 프로농구의 레전드 외국인 선수 중 한 명인 애런 헤인즈(Aaron Haynes)와는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다. 외국인 선수와 추억이 많은 그는 인상적인 에피소드 중 하나로 크리스 랭(Kris Lang)의 이야기를 꼽았다.

“서울 SK나이츠에 처음 왔을 때 크리스 랭이란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의 가족도 한국에 같이 와 있었죠. 시즌 종료 후 한국을 떠나면서 이태원 한 번 가자고 하더니 제게 양복을 맞춰줬습니다. 출국할 때에는 공항까지 배웅했는데, 크리스 랭의 부인이 대성통곡하며 울었어요. 통역사로서 보람이 컸습니다.”

그는 스포츠 통역사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도 공개했다. 먼저 영어로 해설하는 NBA를 시청하라고 추천했다. 현지 용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스카우트 과정에서는 유튜브와 SNS 활용을 강조했다. 유튜브를 통해 후보 선수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그 선수가 자주 쓰는 단어나 슬랭을 확인할 수 있고, 후보 선수의 SNS를 탐색하면 해당 선수의 인성을 대략 파악할 수 있다. 선수의 인성을 중요시하는 한국 문화의 특성에 알맞은 조언이었다.

그에게 직업으로서 스포츠 통역사의 가장 힘든 점을 물었다. 개인 시간이 부족한 점을 꼽았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해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스포츠 통역사를 천직으로 여긴다.

‘어떤 분야든 항상 최고가 되려고 노력한다.’ 한성수 스포츠 통역사의 가치관이다. 이미 스포츠 통역 분야에서는 최고가 아니냐고 묻자 손사래를 쳤다.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는 의미였다. 1세대 스포츠 통역사로서 통역에 청춘을 바치고 한국 농구의 역사와 함께하는 그는 이미 국내 최고의 스포츠 통역사임이 틀림없다.
  •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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