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취향 ⑨ 초콜릿

내 맘대로 고른 초콜릿 맛집 best 4

© 셔터스톡
‘덕후’란 원래 한 가지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을 일컫지만 오로지 하나에만 몰입하는 덕후는 드물다. 대개 이것저것 다 건드려보기 마련이라서 빵 덕후라도 냉면 덕후일 수 있고, 빵과 냉면 모두 덕후를 자청하면서도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덕후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언제나 덕후에게 ‘본진(本陣)’은 있는 법. 덕후 용어로 본진이란 덕질의 뿌리와 같은 것이다. 그간 ‘덕후의 취향’에서는 식빵이며 마카롱, 떡볶이에 탄탄면까지 다뤄왔지만 정작 덕후의 본진은 따로 있었다. 일년 중에도 겨울, 그것도 2월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 초콜릿이다.

의외로 초콜릿 덕후 만큼이나 초콜릿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데 초콜릿이 가진 ‘달다’는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초콜릿은 달다. 그러나 단맛만이 초콜릿 맛의 전부는 아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 열매에서 추출하는 재료는 ‘카카오매스’와 ‘카카오버터’다. 카카오매스는 카카오 열매를 발효해 만든다. 단맛이 전혀 없이 그저 씁쓰레한 덩어리다. 카카오버터는 카카오매스에서 나온 지방질을 굳혀 만든다. 가장 간단한 초콜릿은 카카오매스에 카카오버터, 설탕을 넣고 이런저런 공정을 거치면 된다.

소매점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초콜릿은 ‘초콜릿 맛 나는 공산품’이라는 얘기도 들어봤을 것이다. 가X초콜릿이나 X쉬초콜릿 같은 대형 제과업체의 초콜릿 성분에는 ‘식물성 유지’ 혹은 ‘팜유’ 같이 카카오버터가 아닌 다른 유지 성분이 포함돼 있다. 카카오버터의 가격이 만만찮기 때문에 저렴하게 대체할 수 있는 유지를 썼다는 얘기다. 동물성 생크림이 아니라 식물성 생크림으로 생크림 케이크 모양만 낸 케이크를 만드는 것과 같다.

종종 초콜릿 덕후 중에는 이런 초콜릿을 초콜릿이 아니라고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미식가로 유명한 지인 중에는 이탈리아로 여행 가 미쉐린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고급 레스토랑을 탐방하다가 숙소로 돌아와 컵라면을 끓여 먹는 사람도 있다. 말하자면 ‘초콜릿에는 귀천이 없다’.

어릴 적부터 초콜릿 덕후로 살아왔다면 익숙한 초콜릿 맛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마감 때마다 한 봉지씩 꼭 뜯어 먹는 초콜릿이 있는데 ‘엠앤엠즈(m&ms)’다. 비슷한 국산 초콜릿 ‘티피’나 ‘새알’ 같은 초콜릿을 먹고 자라다 미국을 다녀온 친척 어른으로부터 엠앤엠즈 한 봉지를 건네받고 ‘신세계’를 맛봤다. 나이 들어 초콜릿을 어떻게 만드는지 이해하고,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보기도 하면서 초콜릿에 대한 미각을 키워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엠앤엠즈는 마치 김치처럼, 시간을 보내는 날에 가장 필요한 동료다.

반면에 귀한 초콜릿은 한국에서 쉽게 만나기 어렵다. 한국에는 초콜릿 전문가, 쇼콜라티에가 유독 적은 편이다. 초콜릿이 간식 그 이상의 위치를 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콜릿 한 알에 2000~3000원 하는 초콜릿 전문점 진열대 앞에 서서 “이 조그마한 게 왜 이리 비싸!” 불평을 토하는 사람을 하루에도 수십 명 만나는 것이 현실이다. 초콜릿 하나를 매끈하게 만들어내기 위해 온도를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는 템퍼링(Tempering·적온처리) 작업을 수차례 거치고 가장 조화로운 필링 재료를 만들어내기 위해 미각세포가 닳도록 맛을 보는 공정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물론 모든 고객이 초콜릿 공정을 알 필요는 없겠지만 비싼 디저트에는 그만한 공(功)이 든다는 것은 확실하다.



삐아프
고은수 쇼콜라티에의 한정판
02-545-0317,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4길 27-3


국내에서 손꼽히는 고은수 쇼콜라티에가 만들어내는 초콜릿이 진열돼 있다. 삐아프의 초콜릿은 2월과 3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에 더욱 빛을 발한다. 매년 한정 수량만 만들어 판매하는 특별한 날 초콜릿은 포장부터 돋보인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영향을 받아 만들거나 아름다운 일러스트를 새긴 박스를 내기도 한다. 겉모습만큼이나 각각의 초콜릿마다 쇼콜라티에가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초콜릿 겉껍질과 속 재료가 가장 조화롭게 어울릴 만한 지점을 찾아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이 혀끝으로 느껴진다. 몇 년 전 한정 상품으로 나온 ‘벚꽃 초콜릿’은 오묘하게 빛나는 분홍색 반원형 초콜릿 안에 벚꽃 향이 날 듯 말 듯 은은한 필링으로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을 선보였다.



카카오봄
초콜릿의 정석은 이런 맛!
02-733-4662,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62길 45-11


이곳에서 초콜릿 음료만 마시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꼭 초콜릿을 먹어보기를 권한다. 초콜릿 전문점이 거의 없던 시절부터 서울에서 오래 자리를 지켜 온 카카오봄은 쇼콜라티에가 만드는 초콜릿의 정석을 보여준다. 종류가 많지만 하나하나가 다 대표 메뉴라 해도 손색없다.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트뤼플 초콜릿을 권한다. 코팅된 초콜릿 안에 필링이 들어간 점은 프랄린과 같지만 모양이 반듯한 프랄린과 달리 송로버섯을 닮았다고 해서 트뤼플로 불린다. 녹차, 버터 같은 재료가 들어간 각각의 트뤼플 초콜릿은 가득 찬 필링 맛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달다. 초콜릿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무난히 선물하기에 좋다. 매장도 넓고 젤라토도 팔기 때문에 자리 잡고 앉아 다양한 맛을 즐기기에 좋다.



피초코
베네수엘라 교포 형제의 야심작
02-512-0565, 서울 성동구 서울숲길 47


서울숲을 앞에 두고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성수동에 자리 잡은 신생 초콜릿 전문점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온 교포 형제 초콜릿 메이커스가 연 피초코에서는 초콜릿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커피 원두의 맛을 구분하고 즐기는 사람이 늘어난 것처럼 초콜릿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한알 한알 정성이 들어간 프랄린 초콜릿을 기대하고 피초코를 들른다면 당황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커버추어 초콜릿도 판다. 커버추어란 프랄린 같은 초콜릿을 만들 때 필링 재료를 감싸는 겉껍질 초콜릿을 만드는 재료다. 피초코에서는 초콜릿을 만들기 위한 재료도 팔고, 한 가지 카카오빈을 이용한 빈투바(Bean to Bar)초콜릿도 판매한다. 재료가 초콜릿의 맛을 얼마나 좌우하는지 알아볼 수 있다.



끌라시끄
입소문 난 분당의 작은 가게
031-719-1191,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일로 121


문을 연 지 벌써 5년 된 작은 가게인데 초콜릿 케이크 같은 디저트로도 유명하다. 초콜릿 한 종류만 만들어 팔다가 입소문을 타 유명해진 초콜릿 전문점이다. 일본의 ‘생초콜릿’ 전문 브랜드 ‘로이스’로 잘 알려진 프랑스식 파베 초콜릿이 맛있다. 아몬드나 견과류를 적당히 뭉쳐 만드는 로셰 초콜릿도 맛있는데 하나하나가 달지 않으면서도 식감이 좋다. 치즈 풍미 가득한 치즈 모양의 초콜릿 등 다양한 모양의 초콜릿이 있다. 시즌에 따라서는 초콜릿 공예작품도 볼 수 있다. 초콜릿에 관한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찬찬히 읽어보면서 메뉴를 고를 수 있어 좋다.
  • 2019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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