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련의 일상 철학 (7)

내 인생 첫 무대

글 : 김수련 

초등학교 5학년이던 해에 친구 따라 교회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부활절 연극 무대에 선 적이 있다. 기억하는 나의 첫 연극 무대였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서울에서 누군가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배역을 정하는데, 친구가 갑자기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님, 이 친구 경상도 사투리 잘해요.”

교회학교 선생님의 눈은 반짝였다. 전국 사투리를 지도해야 하는 처지에서 이미 경상도 사투리를 잘하는 애가 있다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경상도 사람 배역은 해결된 셈이었다.

경북 상주에서 서울로 이사 온 지 채 4년이 안 되었을 때였다. 사투리는 잊은 지 오래였고, 내가 완벽하게 서울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사투리인 줄 몰랐다. 이미 다 까먹은 사투리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하기만 했다.

연극 연습을 하면서 보니 친구들은 어찌나 사투리를 잘 구사하는지. 감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연기를 슬쩍슬쩍 흉내 내기 시작했다. 내가 사투리를 쓸 방법은 그거밖에 없다고 여겼다. 한 친구의 전라도 사투리를 흉내 내기도 하고, 또 다른 친구의 충청도 사투리를 흉내 내기도 했다. 내가 하는 말은 완벽한 서울말이라고 여겼으니까 내 귀에는 그들의 사투리만이 사투리로 들렸다. 억센 상주 사투리로 말하던 아이가 말꼬리에는 갑자기 전라도 사투리를 넣거나 충청도 사투리로 길게 뺐다. 선생님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잠깐!”

연극 연습은 그렇게 중단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낙담했다.

‘역시 나는 사투리를 잘 못 해.’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너는 사투리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평소대로 말해. 그러면 돼.”

그의 유일한 요구 사항이었다. 무대에 올라서 사투리 쓰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내가 아는’ 서울말로 연기하기로 했다. 공연은 잘 끝났고, 나는 연기가 뛰어나다며 많은 칭찬을 받았다. 사실 연기가 아니라 실제였던 셈이다. 당시 인기 TV 프로그램 관계자가 내게 출연을 제안했다. 어깨를 으쓱이며 생각했다.

‘사투리를 안 쓰길 정말 잘했어. 나는 친구들처럼 차진 사투리를 쓸 수가 없단 말이지.’


억지로 흉내 내지 않기

수십 년이 지났지만 간혹, 이때가 떠오른다. 다른 사람들은 뭐든 잘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나만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고 엉망이고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스러울 때. 그리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미 나는 사투리를 잘하는 것은 아닐는지. 남들은 내가 사투리를 쓰고 있다는 걸 다 아는데, 정작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교회학교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려본다.

“다른 친구들 흉내 내지 말고, 억지로 사투리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말해. 그러면 돼.”

그리고 이렇게 내게 말한다.

“억지로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돼. 너는 이미 잘하고 있어. 그들은 사투리를 흉내 내고 있지만, 너는 진짜 사투리를 구사하고 있잖아. 완전히 너와 혼연일체가 돼서 네가 인지하지 못할 뿐이야. 그냥 그렇게 하면 돼.”

이제 여기에 덧붙여 말한다.

“그리고 좀 못 하면 또 어때? 무대에서 한바탕 잘 놀면 되는 거지.”

글쓴이 김수련은 소설 《호텔 캘리포니아》 저자다. 대학에서 철학과 교육학을 전공했고 삶의 다양한 길 위에서 수많은 질문을 만났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해 ‘소설’의 형태로 그 질문을 세상에 다시 던진다.
  •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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