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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안《레전드는 슬럼프로 만들어진다》

레전드 박정태를 찬양하는 이유

글 : 최인아 

가을은 야구의 계절이다. 11월 4일 열린 한국시리즈 첫 경기에서 넥센과 5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치른 SK가 예상외로 정규 리그 우승 팀 두산을 누르고 먼저 웃었다. 첫 승리를 잡은 SK는 결국 최종 우승컵을 쥐었다. 스포츠는 승패를 떠나서도 공부할 게 많은 분야다. 리더십이나 용병술, 전략 같은 거 말고도 말이다.

야구 선수를 연구한 심리학자가 있다. 본인 스스로 ‘야구를 사랑하는 심리학자’라 말하는 김수안 박사. 그는 슬럼프를 연구했는데, 특히 야구 레전드들을 깊숙이 연구했다. 그렇게 내놓은 책이 《레전드는 슬럼프로 만들어진다》이다.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있다. 직장인도, 학생도 슬럼프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한다. 하지만 경기마다 승패에 노출되는 프로야구 선수만 할까. 투수의 공 하나, 타자의 스윙 하나가 성적으로, 승패로 연결된다. 스트레스가 엄청날 것이고, 극심한 스트레스는 슬럼프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레전드라고 예외가 아니다. 레전드도 슬럼프를 겪지만 차이가 있다. 이들은 슬럼프를 극복한 후 더 성공적인 커리어를 일구었다.

그렇다면 어떤 이가 레전드일까. 극한의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장기간 최상의 성과를 낸 선수들을 레전드라 부른다. 여기에서 방점은 ‘성과’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이겨내고’에 찍힌다. 저자 김수안은 박정태, 김종모, 송진우, 김용수 4인의 레전드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무엇이 그들을 레전드로 만들었는지, 그들이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적었다.

그중 박정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심 탓일까? 나는 롯데 자이언츠 팬은 아니지만 박정태를 좋아한다. 이상한 타격 폼의 악바리 박정태. 이 책을 읽어 보니 나는 그저 결과에 환호했던 것 같다. 그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그토록 심각한 부상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알았더라면 더 뜨겁게 응원했을 텐데.

박정태는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 속에 자랐다. 먹지 못해서 빈혈이 잦을 정도였다. 어린 박정태는 자신이 왜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야구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죽어라 연습했다. 그것이 그를 단련한 것일까. 그는 프로야구 선수가 된 후에도 내내 연습벌레로 살았다. 그는 이런 말까지 했다. “나보다 연습을 더 하는 선수 있으면 나와보라”고.

롯데에 입단한 후 2년 차 징크스도 없이 승승장구하던 박정태는 3년 차 때 문제가 생겼다. 발목뼈가 산산조각 나는 큰 부상을 입은 것. 나중엔 골수염으로까지 번져 다들 박정태는 끝났다고 했다. 야구는커녕 걷는 것조차 어려울지 모른다는 소견까지 있었다.

그런데 그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2년 2개월 만에 복귀했다. 그해 타율 3할3푼7리. 화려한 부활이었다. 그는 말한다. 어린 시절에 고통을 이겨내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던 경험이 인생의 큰 자산이 되었다고. 노력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보니 야구뿐 아니라 무엇을 해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선수 생명이 끝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 힘이 다시금 그를 붙들어주었고, 그는 지독한 재활 끝에 악바리 박정태로 돌아와 끝내 레전드가 되었다. 그가 겪은 고통과 슬럼프, 그것에 지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이 그를 레전드로 만든 것이다.


‘쓰담쓰담’ ‘토닥토닥’ 이제 그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젊은 친구들은 레전드 같은 거 되고 싶지 않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가늘고 길게 살겠다면서. 하지만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파도가 오면 파도를 넘어 살려고 애쓸 뿐. 누구나 슬럼프나 고통은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실은 고통과 슬럼프야말로 인생을 살게 해주는 항체 같은 것들이다. 필사적으로 이겨내면 그 어떤 어려움과 마주하더라도 지지 않을 자신감을 만들어주는. 굳이 레전드를 원치 않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쓰담쓰담’ ‘토닥토닥’ 이런 거, 이제 그만하고 근성을 기르고 항체를 키우라고 말하면 꼰대라는 소리가 날아올까? 어쨌든 이 책 《레전드는 슬럼프로 만들어진다》는 한번 읽어볼 만하다. 특히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책도 아주 얇다.

글쓴이 최인아는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최인아책방’의 대표로, ‘책방마님’으로 불립니다.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제일기획 부사장을 지냈습니다.
최근엔 ‘혼자의 서재’를 열어 ‘혼자력’과 ‘사색력’을 모색하고 전파합니다.
  •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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