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취향 ⑥ 가쓰산도

내 맘대로 고른 가쓰산도 맛집 best 4

글 : 김효정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 사진 : 서경리

고백하자면 일본 도쿄로 여행을 다녀온 횟수만 열 손가락이 넘는다. 한국의 많은 덕후가 그렇듯 나 역시 어릴 적부터 일본 대중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드래곤볼〉이며 〈꽃보다 남자〉 같은 만화책은 기본. 1990년대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X-JAPAN이나 GLAY 같은 일본 록그룹 노래에 빠지기도 했고, 일본 아이돌 그룹 기획사인 자니스의 연습생 자니스주니어 파파라치 사진을 사 모은다고 낯선 시내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우리 세대가 느끼는 일본에 대한 익숙함은 기성세대와는 다른 것이었다.

일제강점기를 호되게 겪은 외할머니는 수십 년이 지나서도 일상 대화 사이에 일본어를 섞어 쓰곤 했다. “요지 가져오라”는 말은 이쑤시개를 가져오란 말이고 “다라이 좀 옮기라”는 말은 대야 좀 옮기라는 얘기다. 할머니에게 일본어나 일본 문화란 억지로라도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아니었다. 처음에야 일본에서 비롯된 만화, 애니메이션 말고 접할 게 없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일본 대중문화를 즐기는 일은 오롯이 선택에 의한 거였다.

그래서 처음 도쿄에 발을 디뎠을 때 느낀 감정은 ‘낯섦’보다 ‘익숙함’이었다. 도쿄 시내 낡은 골목길 어딘가는 마치 예전에 왔던 것 같았고 도쿄 사람들이 선 채로 후루룩 그릇에 담긴 음식을 넘기는 작은 식당은 동네 어귀에 있는 식당처럼 친숙했다. 심지어 추억까지 느껴졌다.

여행의 마지막 날, 우에노 지역을 찾았다. 넓게 펼쳐진 우에노 공원 남쪽,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듯 좁은 골목길에 숨어 있는 돈가스집에 들를 예정이었다. 1930년에 문을 연 ‘이센(井泉)’이라는 이름의 가게는 돈가스만을 팔아온 집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배부르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돌아 나오던 길에 눈에 띈 것이 있었다. 식빵을 작게 자른 사이에 손가락 두어 개 정도 두께의 두툼한 돈가스를 끼워 넣은 음식, ‘가쓰산도’였다. 종업원이 설명해줬다.

원래 이 지역은 일본식 유흥업소가 많은 곳이었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게이샤(芸者)들은 언제나 두꺼운 화장을 하고 다녔는데 입술에 바른 립스틱이 지워지지 않도록 손쉽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음식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이센’의 여주인이 만들어낸 음식이 가쓰산도였다. 당시 막 외국에서 들여온 샌드위치는 세련된 먹을거리로 통했는데, 여기에 일본인에게 익숙한 돈가스를 끼워 넣어 팔게 됐다는 얘기였다.

가쓰산도 몇 개를 포장해 공항가는 열차 안에서 한 입 베어 물었다. “배불러서 한 입도 못 넘기겠다”던 말이 거짓말처럼, 정겹지만 중독적인 맛이 느껴졌다. 낯선 이국에서 더듬더듬 남의 나라 말을 주워들어가며 도전의식이 샘솟아 사 본 음식치고는 맥이 빠질 정도로 익숙한 맛이었다. 어디서도 먹어볼 수 없었지만 마치 먹어본 것 같은 음식, 그게 가쓰산도였다.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는 가쓰산도는 나의 추억처럼 평범한 음식은 아니다. 좀 세련된 동네의 세련된 레스토랑에서 사진을 찍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멋스러운 음식이다. 2만 원 가까이 되지만 비싸다거나 먹어보기 두렵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쓰산도 맛집 대다수가 실험적인 음식을 내놓는 곳이라는 점은 그래서 이채롭다. 메뉴판을 펼치면 잠시 침묵하게 만드는 낯선 음식 사이에서 안전한 선택을 부르는, 낯설고도 정겨운 음식이다.



다츠

중독을 부르는 촉촉함


웬만하면 예약을 하고 찾는 것이 좋다. 금색과 검은색, 흰색과 회색이 적절히 섞여 유행의 첨단에 서 있는 다츠를 찾았다가 한없이 기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갖가지 아시아 음식을 파는 이 레스토랑에서 가장 인기 메뉴는 바로 가쓰산도다. 양배추를 소스에 버무린 콜슬로와 함께 서빙되는 가쓰산도를 접한 손님들의 반응은 한결 같다. 하얀 식빵과 두툼한 돈가스가 어우러진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이리저리 손을 뻗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다츠의 가쓰산도에는 국내산 돼지고기 등심이 사용된다고 한다. 오랜 시간 염지를 해 적절하게 간이 밴 고기를 튀기고 머스터드를 섞은 새콤한 소스를 발라 식빵 사이에 끼워 넣는다. 식빵은 쫄깃하고 고기는 부드럽다. 굳이 잘라 먹을 필요 없이 한 입 베어 물면 힘들이지 않아도 뚝 끊기는 고기 맛이 중독적이다. 등심 특유의 푸석한 맛은 없고 촉촉하다는 느낌도 든다. 포장도 할 수 있으므로 가쓰산도를 집에서 가족과 나눠 먹어도 된다.




긴자바이린

가쓰산도의 원조, 일본 긴자에 본점


서울 종로와 강남 두 곳에 매장을 둔 긴자바이린은 일본 도쿄 긴자에 본점이 있는 돈가스 전문점이다. 일본 내에 3개, 미국 하와이, 홍콩, 중국 상하이와 서울 등에 7개의 매장을 두고 있다. 긴자바이린의 가쓰산도는 조금 얇은 돈가스를 품고 있다. 한국에서는 제주산 흑돼지의 안심 부위를 활용해 만든다는데 부드럽고 쫄깃한 맛이 제격이다. 겨자와 우스터소스를 섞어 만들었다는 가쓰산도의 소스는 전통적일 정도로 익숙해 누구나 맛있게 먹을 법하다. 긴자바이린은 일본에서 돈가스 소스를 만들 때 쓰는 ‘주노소스’를 개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의 긴자바이린 메뉴판에는 긴자바이린이 가쓰산도를 최초로 만들었다고 표기돼 있는데 일본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애매하게 설명돼 있다. ‘히레가쓰 샌드 같은 독창적인 음식을 세상에 전파했다’는 게 공식 설명이다. 수십 년이 지나 각자의 맛으로 재탄생한 가쓰산도 중에서 더 쉽고 익숙한 것을 찾는다면 긴자바이린의 가쓰산도를 먹으면 된다.




도산분식

레트로 콘셉트의 핫플레이스


찾는 사람이 드물어진 서울 강남 압구정의 도산공원 인근을 다시 붐비게 만든 ‘핫플레이스’다. 다른 핫플레이스 중 하나인 아우어베이커리를 창업해 유명해진 CNP푸드에서 만든 도산분식은 ‘레트로’ 콘셉트를 차용했다. 보통 메뉴가 1만 원에 가까울 정도지만 인테리어는 옛날 분식집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가쓰산도는 ‘돈가스샌드’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돈가스는 저온숙성해 충분히 부드러워진 국내산 등심을 사용한다. 높은 온도에서 고기를 튀겨 내고 남은 열로 ‘레스팅’ 하며 마저 익힌다고 한다. 돈가스 소스는 전통적인 맛이 강한데 식빵에 충분히 스며들어 식빵이 소스로 적셔져 있다. 이곳의 고기 역시 지방질이 적절히 섞여 촉촉하게 씹는 맛이 남다르다. 따로 고기를 손질하는 법이 있는지 거의 모든 가쓰산도에서 비계와 살코기의 비율이 일정할 정도다. 가쓰산도 맛집마다 식빵의 맛도 다른데 도산분식의 식빵은 고소한 맛이 난다. 개점 초기에는 줄을 서 기다려 먹을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주말을 제외하면 대기 시간이 길지는 않다.




마음과마음

타피오카와 다시마로 숙성, 입에서 살살~


경리단길 입구 부근에 있던 마음과마음은 운영 방식이며 인테리어가 모두 힙스터가 좋아할 법한 것으로 가득 차 있던 곳이었다. 노출 콘크리트에 그다지 편하지 않은 의자와 탁자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마음과마음에서 가쓰산도를 먹으려면 30분, 1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곧 한남동으로 이전해 확장 오픈할 예정이다. 이곳 가쓰산도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등심으로 만든 로스가쓰산도, 안심으로 만든 히레가쓰산도. 등심이든 안심이든 연한 힘줄이 붙어 있는데 일부러 지방질이 붙은 고기를 선택한다고 한다. 특별히 지방질과 살코기의 비율을 조절해 부위를 선택하기 때문에 질겨서 먹기 불편한 경우는 아예 없고 육즙을 느끼면서 씹는 맛을 즐길 수 있다. 거기다 타피오카와 다시마로 숙성했다는 고기는 연하기가 그지없다. 한 접시에 네 조각이 나오는데 고기가 꽤 두꺼워 혼자 먹기에는 배부를 정도다.

© 마음과마음 인스타그램
  •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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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Hyung-YulCho   ( 2018-11-09 ) 찬성 : 0 반대 : 0
돈 가스 (Cutlet) + 산도(Sandwich) = 가스산도. 일본사람들은 영어를 일본어로 만들어서 쓰는 군요. 가라오께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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