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련의 일상 철학

소크라테스의 쇠파리

글 : 김수련 

“나이를 먹으니 나랑 다른 성향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피곤해. 그렇다 보니 점점 비슷한 사람들과만 어울리게 돼.”

최근에 자주 들은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잘 통한다는 것은 내 생각과 관심, 그리고 감성이 비슷해서 서로 공감이 잘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이 안 될 때의 부대낌은 늘 불편하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가고자 한다. 성격과 성향, 그리고 사고와 행동방식 등이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아졌다. 그들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한 것을 보면서 마음의 움직임과 행동의 방향을 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옳다고 믿던 것이 사실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마음과 행동은 꼭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지혜를 쌓게 하는 것은 경험의 횟수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해도 자신의 행동이 패턴이 되어 변하지 않으면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아울러 시행착오도 무한 반복하게 된다. 헤어진 연인과 비슷한 이성에게 다시 끌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는 똑같은 연예 패턴을 반복하면서 자신은 인복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럴 때 누군가 옆에서 공감해주면 막연한 그 믿음은 확신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 행동은 더욱 공고한 패턴이 되어간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인복’이 아니라, 마음의 움직임이 방향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냉철한 ‘성찰’일 것이다. 행동의 패턴이 깨지고 태도가 바뀌면 그 ‘복’의 흐름도 방향을 바꾼다. 많은 지식을 쌓고 경험을 했는데도 성찰이 부족하면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기 쉽다. 경험의 좁은 우물 안에 갇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쇠파리’에 비유했다. 쇠파리는 소의 등에 붙어 계속 편히 쉬고 싶어 하는 소를 괴롭힌다. 앵앵 소리를 내며 달려들며 괴롭히는 이 쇠파리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잠을 잘 수도 없다. 소는 긴 꼬리로 자신의 등만 끊임없이 찰싹찰싹 친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질문은 성찰을 유도하고 자신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성찰’은 결국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괴롭다. 질문을 통해 생각과 마음의 방향을 되짚어 보고, 방향을 바꾼다는 것이 그동안의 관성을 깨야 하는 일이기에 보통 귀찮은 게 아니다. 어쩌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느끼는 부대낌은 실상은 자신에게 던져지는 ‘질문’ 때문인지도 모른다.


醒 술깰 성


‘언제나 깨어있자!’는 의지의 발현으로 고등학교 때 독서실 책상 앞에 써놓은 한자다. 의식은 늘 편하고 익숙한 곳으로 가라고 하기 때문에 의지를 갖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도 나를 깨어있게 하는 이들을 언제나 환영한 것만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감사한 일이지만, 내 주변에는 늘 ‘쇠파리’ 역할을 해주는 이들이 있었다. 그 순간은 귀찮아서 *좀머 씨처럼 “제발 나 좀 내버려 둬!(Lass mich doch in Ruhe!)”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나의 행동과 생각을 비난하고 부정하는 것만 같아서 방어기제가 발동하고는 했다. 그 일환으로 기존의 행동과 생각을 더 공고하게 만들어가며 기존의 생각을 더욱 강하게 주장하곤 했다.

질문이라는 것은 100에서 99를 긍정하고 나머지 1에 대한 의문이 있어도 하게 된다. 하지만 질문을 받는 이는 대체로 그 100 전부를 부정당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를 더 이해하고 싶어 “왜 그렇게 했는데?”라고 묻는다면, 그는 그 행동 자체를 비난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질문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여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실 ‘질문’은 상대를 들여다보고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장치인데도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이는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무지하고 불완전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다. 내가 완성된 인간이라고 믿으면 어떤 이의 값진 조언도 비난으로 여기고 성찰할 의지도 잃게 된다. 자신의 그림은 이미 멋지게 완성된 작품이라고 여기는 이는 누군가가 물감을 손에 들고 다가오는 모습만 봐도 자신의 그림을 망친다고 생각하게 되어 방어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하지만 엉성하고 완성되지 않은 그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나의 그림을 더욱 멋지게 그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색상의 물감은 내 그림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더욱 멋진 그림으로 완성해줄 수 있는 고마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물론, 내 그림에 함부로 손을 대고 망치게 내버려 두도록 하지는 말아야 하겠지만.

*소크라테스의 《변론 Apologia》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 씨 이야기》


글쓴이 김수련은 소설 《호텔 캘리포니아》 저자다. 대학에서 철학과 교육학을 전공했고 삶의 다양한 길 위에서 수많은 질문을 만났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해 ‘소설’의 형태로 그 질문을 세상에 다시 던진다.
  • 2018년 1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811

201811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8.11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