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웹툰 PD(Webtoon Producer)

웹툰 작가들의 전천후 지원군

트렌드 읽는 감각과 소통능력 중요

가히 ‘웹툰(Webtoon) 전성시대’다.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지난해 7240억 원에서 올해는 8805억 원으로 1600억 원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이 매년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웹툰 작가뿐만 아니라 관련 직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중 하나가 웹툰 PD이다. 웹툰 PD는 웹툰 작가와 협업하여 웹툰을 제공하는 플랫폼 관리를 도맡는 일을 한다.
웹툰 PD란

웹툰 PD의 기본적인 업무는 작가의 작품 완성을 위한 모든 지원이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대중화하는 데 노력하고, 이를 위해 작가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교감한다. 웹툰 플랫폼에 작품을 업로드하고 플랫폼을 관리하는 일도 한다. 한 명의 웹툰 PD는 보통 10명에서 많게는 100명의 웹툰 작가와 일한다. 낮에는 회사에 출근하고 밤에는 작가들과 연락해 일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업무 강도가 높은 편이다.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웹툰 PD는 전공과 무관한 편이다. 현직 PD들은 철학, 국어국문학, 문예창작 등 전공이 다양하다. 자격증과 같은 객관적인 지표도 필요하지 않다.


갖춰야 할 역량은

첫째, 문화에 대한 이해다. 대중문화와 트렌드 파악은 물론 모바일에서 주로 소비되는 ‘스낵컬처(Snack-Culture)’에 대해 감각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대중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 연구해야 한다. 스낵컬처란 짧은 시간 안에, 언제 어디서나 간단하게 콘텐츠를 즐기는 라이프 스타일을 의미한다.

둘째, 제3자의 눈으로 보기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 창작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바로 ‘지식의 저주’다. 작품에 관한 배경 지식을 독자도 잘 알 것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웹툰 PD는 작가만큼이나 해당 작품을 잘 알기에 독자들의 관점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작품에서 의도적으로 한 걸음 떨어져 모든 걸 아는 창작자의 눈이 아닌, 아무것도 모르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

셋째, 소통 능력이다. 웹툰 PD는 작가와 소통하며 함께 작품을 완성한다. 작가의 작품을 그대로 받기보다 더 나은 방향을 함께 고민한다. 창작의 주체인 작가를 존중하는 동시에, 작품 개선에 대한 열띤 논의를 이어나갈 수 있는 원활한 소통능력이 필요하다.


만화를 그릴 줄 알아야 할까

아니다. 다만 작가와의 소통을 위해 만화 연출에 관한 이해는 필요하다. 웹툰 연출 정보는 물론, 기본적으로 스토리 설계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웹툰의 리듬을 파악해 작품의 방향을 잡을 줄도 알아야 한다. 작가들에게 구체적인 피드백을 해주기 위해서다. 스스로 연습하고 스토리를 준비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연봉 수준과 전망은

연봉은 일반 기업의 사무직과 유사한 수준이며, 전망은 밝다. 일반적으로 웹툰 플랫폼에 소속된 PD는 100명이 채 되지 않지만, 작품을 유통하는 웹툰 에이전시와 기획사에서 활동하는 PD까지 합하면 훨씬 많다. 또한 웹툰 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웹툰 PD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에서도 우리나라의 웹툰을 주목하고 있다. 현재 대기업에선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 활동할 수 있는 웹툰 PD를 채용하는 등 해외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저스툰 웹툰 PD 허세현

“웹툰 통해 성(性)에 대한 편견 벗겨내고 싶어요”

한 소년이 있다.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소년의 곁에는 항상 만화가 있었다.
《소년 챔프》나 《아이큐 점프》 등 만화 잡지를 끼고 살았다. 만화의 성지라 여겼던 일본 만화도 빠지지 않고 섭렵했다.
1세대 웹툰 PD의 길을 걷고 있는 허세현(32) 씨 이야기다.


“교육 콘텐츠 제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 학원보다 인터넷 강의를 주로 들었어요. 당시 전국구 스타 강사의 강의를 많이 접하면서 인터넷 강의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됐죠.”

허 PD의 첫 직장은 인터넷 강의 제작 업체 ‘이투스’였다. 그곳에서 열린 교육 콘텐츠 공모전에서 1위를 하며 교육 콘텐츠를 활용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며 ‘수능 영어 독해기술’ 관련 책도 기획했다. 책은 5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일은 잘 풀렸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다. 교육 콘텐츠는 학습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어 그의 욕구를 풀어내기에 제한적이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뭘까’ 고민하다가 만화를 떠올렸다.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만화 스토리 작가를 준비하면서 커뮤니티를 만들었어요. ‘뉴타짱 만화뉴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입니다. 아마추어 작가들의 만화를 소개하는 장이죠. 지금의 웹툰 플랫폼과 유사해요. 유명 리뷰어들에게 원고료를 주고 콘텐츠를 받거나 일본의 애니메이션, 만화, 그 외 관련 기사를 번역해서 올리기도 했죠. 이 커뮤니티는 굉장히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당시 만화 리뷰를 표방한 커뮤니티 중에선 가장 유명했죠.”

커뮤니티를 시작으로 만화계에 뛰어든 그는 콘텐츠 제작사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다 2년 전 웹툰 플랫폼 ‘저스툰’의 웹툰 PD로 자리를 옮겼다.


어차피 인간은 다 변태?


저스툰에 입사해 그가 처음 맡은 작품은 장미 작가의 〈어차피 인간은 다 변태야〉다. ‘SM(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 커플의 일상을 사랑스럽고 재치 있게 풀어낸 웹툰이다. 가감 없이 직설적으로 내뱉은 제목에는 허세현 PD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정상’이라 함은 여러 사람의 교집합을 이루는 공통적인 요소를 뜻하는 추상적인 개념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상의 개념에 들어맞는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누구나 ‘저 사람 왜 저래?’라고 할 만한 부분이 분명 있어요. 그것을 ‘변태’라고 표현한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성범죄자와 변태를 혼동해서 쓰는 경향이 있어요. 법을 어기고 상대방한테 피해를 주는 것과 변태적인 성향이 있다는 것을 동일 선상에서 바라보는 거죠. 저는 이런 오해가 너무 싫어요. 그래서 작가에게 원제를 바꾸지 말고 그대로 가자고 권유했죠. 도발적이지만 이런 의미에서 제목 자체가 갖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특별하게 애정을 보인 작품은 〈예민 보스 이리나〉다. 곤 작가의 작품으로 20대 중반 여성 이리나의 성적 트라우마 극복기를 그렸다. 지난 1월, ‘미투 운동’이 활발했을 때 여성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어차피 인간은 다 변태야〉와 〈예민 보스 이리나〉는 ‘성(性)’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다.

“저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간성, 그리고 실존에 관심이 많아요. 인간이 인간다움을 상실하는 순간 대부분이 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BDSM은 ‘왜곡된 성생활’ 이라는 프레임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웹툰 작품을 통해 편견을 벗겨내고 싶었습니다. 나아가 BDSM을 할 때에도 상호 안전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예민 보스 이리나〉도 유사한 맥락이죠. 한국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일상적으로 성적인 폭력에 노출된 삶을 살아갑니다. 이를 고발할 필요가 있어요. 실제로 이 웹툰을 본 여성 독자들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듯하다고 이야기해요. 웹툰의 상황들이 일상과 유사하다는 겁니다. 작품에 묘사된 성폭력을 최소한 한 종류는 겪어봤다는 말이죠.”


곤 작가에게 찾아온 공황장애


성 관련 문제를 다루는 작품을 하면서 그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다수 보여줬다. 사회에 이슈를 던지는 작품을 주로 맡다 보니 힘든 순간도 많았다.

“〈예민 보스 이리나〉의 곤 작가는 공황장애가 크게 왔어요. 작중 ‘이리나’라는 캐릭터는 실제 작가의 삶이 그대로 투영된 캐릭터입니다. 만화를 그리면서 자신의 성적인 트라우마를 의식 위로 끌어올렸죠. 정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겨운 작업입니다. 그러다 보니 공황장애로 쓰러졌어요. 결국 한 달간의 휴재를 결정했고, 작가가 원한다면 이 작품을 종결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의견을 드렸습니다. 작가는 쉬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작품을 끝까지 이어가고 싶다고 하더군요. 걱정은 되지만 작가를 위해서라도 이야기의 끝을 맺기를 응원합니다. 그때가 PD로 활동하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허 PD는 실존적인 문제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나아가 웹툰 작가들이 ‘내가 정말 만화 하기를 잘했고 이 담당 PD를 만나서 좋았고 앞으로도 한국에서 계속 웹툰을 그리고 싶어’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게 웹툰 PD로서의 꿈이라고 했다.

“저는 보라색을 좋아해요. 보라색은 보통 불안하고 위태로운 색이라고 하잖아요. 늘 불안함 속에서 아름다움이 태어난다고 믿어요. 위태로운 상황에서 위대한 한 걸음이 내디뎌지는 느낌이랄까. 얼마 전 만나게 된 소중한 사람도 보랏빛이 감도는 분이에요. 당장은 힘들겠지만 일과 유랑이 합치된 디지털 유목민으로 세계를 떠돌아다니고 싶습니다.”
  •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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