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언니 은열의 회사생활 (5)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사이

글 : 은열 

까칠언니의 한마디
관리자가 되면 실무자 때 보이지 않던 것에까지 시선을 확장할 것. 단, ‘나만의 전문성’은 어떤 경우에도 사수해야 한다. 당신을 고만고만한 리더들과 구분 짓는 건 결국 그 ‘한 방’일 테니.
“기자는 스페셜리스트가 맞지. 근데 여긴 아냐. 위로 올라가려면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하는데….” 마주 앉은 임원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1년에 두 번, 의무적으로 하게 돼 있는 직속상관과의 면담 시간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얌전하게 돌아 나오긴 했지만 마음속이 시끄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묻고 싶었다. “제너럴리스트가 되기 위해 스페셜티를 버리란 말씀인가요?”, “말씀하시는 제너럴리스트의 정확한 뜻이 뭐죠?”, “스페셜리스트는 제너럴리스트가 될 수 없나요?” 물론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억지로 삼킨 질문은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채 속을 긁었다. 종일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두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날 저녁 논어 수업이 있었다. 친한 선배의 논어 예찬론에 설득당해 반신반의하며 듣기 시작한 강의는 주 1회. 한자 원문을 해석하고 그 함의까지 읽어내야 해 난도가 꽤 높았다. ‘가뜩이나 머리 복잡한데… 한 주만 건너뛸까?’ 가까스로 유혹을 물리치고 앉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짐작조차 못 했다. 그 수업에서 회사 생활의 ‘인생 구절’을 만나게 되리라곤.


맙소사, 군자가 제너럴리스트라니!

군자불기(君子不器). 논어 ‘위정(爲政)’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거칠게 해석하면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쯤 되는, 이 간단한 표현에 대한 강사의 해석을 들으며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릇은 담을 수 있는 내용물이 빤하죠. 그릇이 아니라는 건, 말하자면 제너럴리스트란 얘깁니다. 군자가 되려면 제너럴리스트여야 한다는 거죠.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불과 몇 시간 새, 스페셜리스트니 제너럴리스트니 하는 (생경하기 짝이 없는) 단어를,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영어와 한자를 넘나들며 들을 확률은 대체 얼마나 될까? 사람이든 사물이든, 심지어 단어(!)든 ‘희소가치 200%’ 상태로 덮치면 인연이라 생각하고 겸허하게 맞아야 하는 법. 그날 이후 꽤 오랫동안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직장 생활의 고수는 스페셜리스트일까, 제너럴리스트일까?’

크든 작든 조직은 위계로 움직인다. 그리고 모든 구성원은 ‘실무자’에서 출발해 (잘하면) ‘관리자’로 나아간다. 또 하나, 몇몇 예외가 있긴 하지만 조직의 규모가 커질수록 실무와 관리 간 교집합은 적어진다. 관리자가 시시콜콜한 실무를 손수 챙길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모르긴 해도 나와의 면담에서 임원이 해주려던 얘기 역시 그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실무자와 관리자의 기로에 선 당신에겐 일종의 ‘선택’이 필요하다. 지난 세월 ‘글쓰기’란 특기(스페셜티)를 살려 역량 있는 실무자로 성장해온 건 인정한다. 하지만 이젠 실무 능력보다 조직 관리 능력을 입증해야 할 때다….

내게 논어를 가르치는 강사는 초지일관 말했다, “논어는 지인(知人)과 리더십에 관한 책”이라고. 논어를 리더십 책으로 분류하면 책 속에 무수히 등장하는 ‘군자’의 정의 역시 ‘임금’에서 ‘리더’, 즉 조직 관리자로 자연스레 바뀐다. 그런데 군자는 ‘담을 게 빤한’ 그릇이 아니라 ‘뭐든 담아낼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단다. 갑자기 등허리가 서늘해졌다. ‘그 임원, 설마 논어가 인생의 책이었던 거야?’


어깨를 겯고 나아갈 줄 아는 능력

‘군자불기의 충격’에서 헤어난 지 1년여가 흘렀다. 그 사이, 직속상관의 진심 어린 충고와 논어의 준엄한 메시지를 받들어 제너럴리스트로 거듭났냐고? 아쉽지만 아니다. 난 여전히 맡은 업무에서 내가 지닌, 알량하지만 그나마 내세울 만하다고 여기는 스페셜티를 최대치로 발휘하며 일과의 대부분을 보낸다. 다양한 분야의 이들과 호흡을 맞추며 일하면서 내 업무적 역량이 가장 빛을 발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부분에선 세세한 것 하나까지 간섭하고 챙긴다.

하지만 그날 이후 변화가 전혀 없었다곤 말 못하겠다. 무엇보다 ‘맡은 일만 완벽히 해내면 다른 건 저절로 따라올 것’이란 믿음이 현실에서 100% 들어맞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사 한두 개 빠진 사람처럼 여기저기 출몰하며 후배들과 실없는 농담을 해대던 부장이, 실은 ‘격의 없이 다가가 뭐든 털어놓을 수 있는 선배’로 자신을 대내외에 각인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란 사실도 알게 됐다. 회사 근처에서 싸구려 커피 한 잔 사 들고 동료들과 나누는 ‘스몰토크(small talk)’의 가공할 위력도 보이기 시작했다. 촘촘하고 빽빽한 게 미덕이었던, ‘나’란 그릇(器)에 빈틈을 허용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세상은 갈수록 개개인에게 남다른 전문성을 요구한다. ‘기계나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이 뉴스 소재가 되는 세상, 스페셜리스트의 길을 제 발로 포기하는 건 자살 행위와 같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하지만 전문성이란 미명에 갇혀 그 밖의 것이라곤 도통 못 챙기는 사람의 효용은 ‘제로(0)’에 수렴할 거란 예측도 하게 됐다.

요즘도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 사이에서 ‘넌 어느 쪽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하지만 예전처럼 불필요하게 발끈하거나 골치 아파하는 대신 빙긋 웃어넘긴다. 지금 이 시각에도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 중일 이 땅의 모든 직장인에게 심심한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모쪼록 건투!

글쓴이 은열은 신문사에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기업으로 이직했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글쓰기인 데다 오랜 데스크 생활까지 거쳐 남의 글 들여다보고 고치는 데 이골이 났다.
어쩌면 이 땅 어딘가에 존재할, ‘논스톱 20년 차 직장인’의 내공이 궁금할 이름 모를 후배들에게 손톱만 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다시 글 쓸 용기를 냈다.
  •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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