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아의 책갈피 ④

김연숙 《나, 참 쓸모 있는 인간》

《토지》 그리고 청춘의 고민들

글 : 최인아 

올여름은 좀 심했다. 더위를 별로 타지 않는데도 이번 여름은 내내 허덕거렸다. 오매불망 선선해지기만을 기다렸는데 어느새 가을의 초입이라 한숨 돌린다. 책 읽기도 한결 편안해졌는데, 무슨 책을 고를까 고민이 길다가 이 책을 골랐다. 신간 《나, 참 쓸모 있는 인간》이다. 제목만 보면 요즘 많이 나오는 심리 에세이처럼 보인다. 괜찮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다독이고 위로하는….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위로를 건네기엔 너무도 억세고 고된 생을 산 600명 인간 군상의 굴곡진 인생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그렇다고 실존 인물은 아니고 소설 속 등장인물인데 소설은 다름 아닌 《토지》 다. 맞다. 박경리의 그 《토지》!

김연숙 교수는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2012년부터 8학기 동안 《토지》로 고전 읽기 수업을 했다고 한다. 그 대학 학생들이 최고 교양 강의로 이 수업을 꼽았다는데 읽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가히 인간 백화점이라 해도 좋을 《토지》 속 등장인물 600명의 인생을 헤아리는 동안 자연스레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토지》 등장인물 600명이 던지는 질문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한참 고민 많은 이십 대 청춘들은 《토지》를 읽으며 자신의 삶과 세상, 타인과 자신의 관계, 그 밖의 많은 것에 대해 고민했고 그런 후 그들은 자신의 별을 찾아 씩씩하게 나아갔다고 한다. 김연숙 교수는 청년들과 쭉 함께하며 그들의 고민과 질문, 소감, 행보를 지켜봤고 그 시간을 이 책 《나, 참 쓸모 있는 인간》에 담았다.

김연숙 저자는 《토지》를 참 독한 소설이라고 한다. 왜 아닐까. 등장인물만 600명이 넘고 자그마치 원고지 4만여 장 분량이다. 게다가 박경리 선생은 무려 25년 동안이나 《토지》를 썼다. 선생 나이 마흔넷에 펜을 들어 칠순이 다 되어 끝을 맺었으니 말이다.

그 《토지》를 오랜만에 김연숙 교수의 안내로 다시 읽었다. 그리고 혼자 읽었을 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숱한 질문을 새로 만났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600명 등장인물이 죄다 질문이었다.

‘운명 앞에서 너는 어떻게 할 것인가.’
‘네 욕망은 무엇이고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
‘사랑을 통해 네 존재가 확장된 적이 있는가.’

김연숙 교수는 토지의 끝도 없는 이야기와, 얽히고설킨 인물들을 아홉 가지 화두로 재구성해 지금, 여기에 《토지》를 생생하게 되살려 놓는다. 양반과 상놈, 착한 자와 악한 자 가릴 것 없이 모두 자기 앞의 생을 헤쳐 나갔다고. 산다는 건 한두 마디 위로 가지고는 어찌 되지 않는 지독하고 굉장하며 간단치 않은 거라고. 최참판 댁 서희만 주인공이 아니라 모두가 삶의 주인공이라고.

이 책을 읽으며 고전을 읽는 좋은 방법 하나를 새삼 확인한 것 같다. ‘최인아의 책갈피’ 첫 원고에서 밝혔듯이, 저자가 던지는 질문을 찾아내어 생각해 보는 것이 책을 깊이 잘 읽는 방법인데 고전이야말로 그렇다. 《토지》는 그중 으뜸이다.

박경리 작가는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질문들을 갖가지 사연의 수백 명 등장인물에게 심어 놓았고, 지혜로운 안내자인 김연숙 교수는 《나, 참 쓸모 있는 인간》을 통해 그 질문을 도드라지게 한다.

좋은 안내자가 쓴 책을 읽고 나니 다시금 ‘원전’이 읽고 싶어지는데 《토지》 전권은 20권이나 된다. 어휴… 그 엄청난 분량에 지레 겁부터 나지만 그걸 쓴 분도 계신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부끄러워진다. 늘 그렇다. 넘기 어려운 봉우리 앞에서 움츠러들어 그만둘까 어쩔까 구구한 핑계를 찾을라치면 그보다 더한 일을 한 분들 앞에서 경건해진다. 《토지》가 버겁게 느껴진다면, 김연숙 교수의 이 책을 안내자 삼아도 좋을 듯하다.

글쓴이 최인아는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최인아책방’의 대표로, ‘책방마님’으로 불립니다.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제일기획 부사장을 지냈습니다.
최근엔 ‘혼자의 서재’를 열어 ‘혼자력’과 ‘사색력’을 모색하고 전파합니다.
  •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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