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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계절 머물다 떠난 길고양이 로리

글·사진 : 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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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처럼 잠시 다녀간 길고양이와의 기묘한 동거.
로리는 한여름 잠시 나에게 머물렀다가 계절 하나를 보내고 다시 길 위로 돌아갔다.


너의 눈빛 속에서 나를 본다.
언젠가 우리가 길에서 마주친 적 있듯 너를 볼 때마다 나는 먼 훗날의 나를 느낀다.
너와 나는 그렇게 바라볼 뿐이다.
#길고양이와의_기묘한_동거




일주일의 휴가를 얻은 첫날.
운명처럼 녀석이 나의 품으로 왔다.
오롯이 나를 위한 쉼을 갖기로 하고
책을 여럿 사서 돌아오던 차였다.
마치 오랜 시간 준비된 듯 녀석을 만났다.
나는 너를 만나 ‘영광’이라는 의미를 담아
‘글로리아’를 줄여 ‘로리’라 이름 붙였다.
#로리 #어색한_우리_첫만남




우리 둘은 서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늘어지게 하품을 하거나 발판을 긁으며
한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어느새 침묵을 배려해주는 사이가 됐다.
#서로에게_스며드는_시간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로리는
항상 저 위치에서 나를 기다린다.
내가 문을 열 때마다 경계하는 듯 공격적으로,
때론 무심하게 ‘냥냥’ 거린다.
한때 구석에 숨어서
소리조차 내지 않던 날들과 비교하면 큰 발전이다.
#우리_오늘부터_1일




집안에 생명 하나 더 늘었을 뿐인데
하루하루가 새롭다.
그리고 내 입에 ‘안 돼’라는 말이 붙었다.
#쉽지_않은_고양이와의_동거




로리의 하루는 창문에서 시작된다.
아침 눈뜨자마자 출근길 도로를
가만가만 내려다보거나 창을 향해 냥냥 수다를 떤다.
마치 동네 어귀 슈퍼마켓 할머니가
아침 일찍 거리를 비로 쓸며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세상 이야기하는 것처럼. 기웃기웃. 냥냥.
#너님_그만_일어나서_출근하라고




하늘은 높고 내 꼬리는 구름을 쓰다듬지.
나는 종일 상영되는 볕의 극장을 주인공처럼
앞발로 훑곤 해.
내가 창을 좋아하는 이유.
#로리_생각1




처음 선물한 장난감.
잠자리 모양인데 색 필름으로 만든 반짝이는 날개는
흔들 때마다 ‘파닥파닥’ 소리가 난다.
첫 선물에 로리는 엄청난 반응이다.
파닥 소리만 나도 눈이 번쩍 난리다.
#한번_놀면_멈출_수_없다는 #마성의_장난감




저녁 햇살이 게으른 고양이 등 위로
길게 늘어지던 한여름.
#사냥_본능에_눈뜬_로리




그림자를 아니?
그림자가 길면 길수록 마음도 저물녘이야.
햇살이 바닥을 훑으며 지날 때
기다림의 밀도도 짙어지지.
#이제_곧_너에게_갈_시간 #퇴근




상자가 좋아.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담기 적당한 크기면 좋겠어.
너를 만나기 위해 내가 비워둔 마음의 자리만큼.
살면서 늘 상자를 꿈꾸지.
그 안에 들어가 누군가의 선물이 되고 싶으니까.
#로리_생각2




책을 읽을 때 내 옆에 와서 냥냥 거리거나,
발바닥을 핥거나, 털을 고르거나,
꼬리로 스윽 홀리거나 발라당 누워 기대어 잠드는.
그 모든 행동이 사랑스럽다.
#고양이_예찬론




너는 책을 읽고 나는 너의 분위기와 호흡을 읽지.
네가 행간을 여행하는 동안 나는 너의 발가락이
꼼지락거리는 무의식의 세계를 읽어.
읽는다는 건 나를 낯선 그곳에 보내 한 시절을 겪는 것.
눈빛이든 마음이든. 나나 너나 지금은 열독 중.
#로리_생각3




낮잠은 하루를 꿈속에 넣는 주술 같은 것.
눈을 감고 있지만 실은 꿈속에서 들판을 뛰고
모퉁이를 돌아 생각을 낚아채는 중이지.
그리고 그 너머 너를 보는 거야.
우주의 어느 한 순간을 채집하고 돌아온.
#고양이_눈_안에_우주가_산다




길 떠난 고양이를 마음에 들였을 때,
고양이와 나 사이
수많은 시간이 흐르다 멈추었을 것이다.
각자의 길 위에서 우린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해 왔을 것이다.
그걸 감수하며 서로를 기다렸을 것이다.
#것이다




난 네가 숨어도 다 찾을 수 있지.
여행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게 뭔지 알아?
동행한 너를 느끼며 스윽 꼬리로
종아리를 훑고 툭툭 머리로 밀며.
온기를 나눈 그 순간이야.
네가 진짜구나, 라고 느낀.
#다시_길_떠난_나그네
  • 2018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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