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언니 은열의 회사생활 (1)

문화생활이 한낱 ‘옵션’이라는 당신에게

글 : 은열 

근로자의 날이었던 지난 5월 1일 저녁, 동네 극장에서 영화 〈원더스트럭〉을 봤다. ‘참, 나 노동자였지!’ 새삼 깨닫게 해준 모처럼의 휴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상상에 잠시 행복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예매 결제 버튼을 클릭했다. 오후 8시, 탄산수 한 병 사 들고 습관처럼 고르는 모퉁이 좌석으로 향했다. 몇 개의 예고편이 상영되더니 이윽고 암전! (이후 스크린이 다시 밝아지는 몇 초간은 내가 극장 나들이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캐롤〉을 연출했던 토드 헤인즈 감독의 신작이란 점에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영화는 예상대로 좋았다. 1977년과 1927년. 반세기를 뛰어넘어 뉴욕 곳곳을 누비며 호흡하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의 스펙터클은 없었지만 충분히 신비로웠다. 나도 모르게 자꾸 다음 장면이 기다려질 정도로.


쳇바퀴 도는 다람쥐, 더는 싫어!

한동안 발길이 뜸했던 극장과 다시 친해진 건 4년 전쯤이다. 야근과 휴일 근무가 일상다반사였던 옛 회사에 과감히 사직서를 던지고 새 직장으로 출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당시 나는 ‘되도록 빨리 여기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갓 이직한 경력사원 특유의 조바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직장 일이 어디 그런가. 출퇴근 시간은 비교적 일정했지만 ‘어제 같은 오늘과 오늘 같은 내일’이 무한 반복되는 일상에 갇혀 금세 초심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졌다. ‘쳇바퀴 도는 다람쥐’란 말의 어감이 절절하게 와 닿았다.

‘더는 안 되겠어!’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회사와 집을 무력하게 오가는 내 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그날 이후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우선 평소 친분이 있던 후배가 꾸리던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 각자 읽고 싶은 책을 돌아가며 추천해 매달 한 권씩 읽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공연 캘린더를 흘깃거리며 그리 비싸지 않은 클래식 음악회 티켓을 구매하는 습관도 생겼다. 클래식 음악에 딱히 조예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주 난해한 음악(가)이 등장하지 않고 일정이 허락한다면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열었다.

그리고 영화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단,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는 주말 (중에서도 덜 붐비는) 조조 시간을 택한다, 되도록 평단의 반응이 괜찮은 작품을 고른다, 보려고 마음먹은 영화 관련 리뷰는 미리 읽지 않는다, 영화를 본 후엔 반드시 잘 쓰인 리뷰 중심으로 꼼꼼히 챙겨 읽은 후 내 감상과 비교하고 메모한다….


몇 시간의 일탈과 맞바꾼 ‘생각’

자, 이쯤 되면 슬슬 궁금해질 거다.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달라지는 게 있던가?” 대답은 일단 “절반은 아니요”다. 책을 읽고 클래식 공연을 찾아다니며 좋은 영화를 관람하는 것만으로 누군가의 갑갑함이 말끔히 해소된다면 얼마나 신날까. 하지만 현실은 현실. 제아무리 무릎 치게 만드는 문장과 맞닥뜨려도, 귀 호강하는 선율과 조우해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그저 먹먹한 명장면을 만나도 그때뿐이다. 여전히 일은 하품 나게 재미없고, 금토일은 월화수목보다 턱없이 짧으며, 가출한 후배의 싹수는 돌아올 줄 몰랐다.

그런데 참 희한했다. 책으로, 음악으로, 영화로 떠나는 불과 몇 시간의 일탈은 때로 꽤 많은 걸 선사한다. 적어도 그 시간만은 지긋지긋한 일상의 쳇바퀴에서 잠시 내려와 쉴 수 있다. 일종의 ‘거리 두기’를 통해 무탈한 자신의 삶에 새삼 안도하게 되는 효과라고나 할까? ‘나’란 인간의 편협한 사고와 경험을 확장하는 데도 적잖이 도움이 됐다. 회사와 집만 오가는 생활에선 죽었다 깨어나도 건져 올리기 힘든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제일 좋은 건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는 사실. 생각이야 만날 하는 것 아니냐고? 글쎄, 여러분의 일상을 가만히 복기해보시라.

‘10년 후, 30년 후의 난 뭘 하며 살고 있을까?’

‘내 인생은 내가 원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을까?’

‘나는 내가 뭘 원하는지 알기나 할까?’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생각(다운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여러분도 나도 대개는 이런 질문과 마주하는 일이 어쩐지 귀찮고 껄끄러우며 두렵다. 게다가 ‘사색의 최대 적(敵)’인 그놈의 스마트폰! 앞선 질문에 대한 나의 두 번째 대답은 그래서 “절반은 예”다.


‘지금, 여기’만 아니면 좋겠다고요?

지금 하는 일을 은퇴할 때까지 하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설사 일 자체가 너무 좋아 죽도록 하고 싶다 해도 그 속에서의 역할은 조금씩 발전하길 바랄 거다. 인간은, 크든 작든 변화를 추구하는 동물이니까.

그런데 그 변화란 누군가 선심 쓰듯 툭, 던져주는 게 아니다. 바로 거기서 우리의 비극이 시작된다.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가 아닌 뭔가”를 갈구하는 이에겐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얄궂게도 그 변화는, 앞서 말한 ‘생각’에서 잉태된다.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회에 대해 뭐라도 고민해본 사람만이 변화의 구체적인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하루하루 매출을 신경 쓰는 자영업자, 뛰는 만큼 정직하게 연봉이 결정되는 전문직 종사자의 입지는 그래도 좀 낫다. 결국 최악의 케이스에 당첨되는 건 샐러리맨이다.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에 취해 변화나 생각 따위, 잠시 잊고 살아도 되(는 것처럼 보이)기에.

흔히 문화생활은 여유 있는 사람에게나 허락되는 것, 할 일 다 하고도 시간이 남으면 그제야 즐기는 것 정도로 여겨진다. 하지만 내 생각은 정반대다. 문화생활이야말로 여유가 없을수록 기를 쓰고 찾아야 하는 것, 없는 시간도 쪼개가며 누려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단골 영화관 앱을 만지작거린다. ‘이번 주말엔 신박한 영화 한 편 개봉 안 하나?’

글쓴이 은열은 신문사에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기업으로 이직했다.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글쓰기인 데다 오랜 데스크 생활까지 거쳐 남의 글 들여다보고 고치는 데 이골이 났다.
어쩌면 이 땅 어딘가에 존재할, ‘논스톱 20년 차 직장인’의 내공이 궁금할 이름 모를 후배들에게 손톱만 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다시 글 쓸 용기를 냈다.
  • 2018년 06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영이   ( 2018-06-05 ) 찬성 : 11 반대 : 7
은열은 무슨 뜻일까 궁금하네요 은근 열심히?? 가출한 후배의 싹수에서 크게 웃었어용 ㅋㅋ
201812

201812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8.12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