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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인의 생활 속 심리학 이야기

로또와 ‘미투운동’

통제에 대한 욕구

영어에 ‘control’이라는 단어가 있다. 흔히들 통제 혹은 지배(공학에서는 제어)라고 번역한다. 심리학에 등장하는 이 용어의 쓰임은 주로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사건, 혹은 삶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와 관련이 있다.

우리가 통제력을 갖는다는 것은 일이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거나 바꿀 수 있음을 의미하고, 반면에 통제력을 상실한다는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인생에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나에게 누군가가 통제력을 행사한다면 나는 그에 의해 지배당하고 저항하지 못하고 예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통제력 혹은 통제감으로 불리는 이러한 심리적 속성은 다양한 인간행동과 관련이 있다. 복권을 예로 들어보자. 사실 복권은 철저하게 우연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당첨을 바란다면 어떤 복권을 사도 상관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유독 로또를 선호한다.

왜 그럴까? 다른 복권들과 달리 로또는 번호를 선택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이러한 선택은 복권 당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통제력의 착각 때문에 로또를 더 선호하는 것이다.

통제력에 대한 착각도 있지만 통제력 상실도 있다. 우리 사회는 IMF 관리체제를 거치면서 장기불황으로 길거리에서 혹은 역 지하도에서 노숙자들과 종종 마주친다. 지나가면서 보기에 신체적으로 멀쩡한 사람들이 노숙한다는 사실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왜 노숙자의 삶을 사는 것일까? 우리는 겉만 보고 그들이 게을러서 그렇다고 예단해 버린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는 노숙자가 되기 전까지 자신의 상황을 바꿔보려고 애를 썼던 사람들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도가 실패로 끝나면서 반복된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거듭된 좌절은 내가 무엇을 한다 해도 지금 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통제력 상실로 이어져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게 한다. 결국 학습된 무기력으로 이들은 될 대로 되라는 마음에서 노숙자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통제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미투(MeToo)운동’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미투운동’을 통해서 드러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과 같은 성폭력 사건들을 보면서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가해자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그리고 ‘피해자는 왜 그토록 오랫동안 문제제기를 못 한 것일까?’ 하는 점이다. 일단 성폭력과 관련한 오해 중 하나는 성폭력은 주로 낯선 혹은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 저질러진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 국가에서 성폭력은 안면이 있거나 아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직장 상사 혹은 동료, 교수, 선배, 친구, 거래처 담당자 등)에 의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오히려 아는 사람에 의해서 발생한 성폭력이기에 은폐되기 쉽고 피해자도 쉽사리 문제제기를 못 한다. 더구나 가해자가 자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와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성폭력과 권력

성폭력 관련 기사나 뉴스를 보다 보면 발생 원인으로 개인의 성적 욕망을 지목할 것 같은데 그것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권력이다. 도대체 권력과 성폭력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의아할 것이다.

성폭력과 관련된 연구, 주로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연구에서 주요 원인으로 꼽는 세 가지가 있다. 바로 power(권력 혹은 힘), money(돈), control(통제 혹은 지배)이다.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와 권한, 즉 권력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에서 피해자의 저항을 약화하거나 무력화하는 것은 그 배경에 경제적 혹은 직업 경력상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고픈 기대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성폭력은 가해자가 이와 같은 권력과 배경을 기반으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피해자의 몸과 성(性)을 동의 없이(통상 성폭력은 상대방의 동의 없는 모든 성적 접촉으로 정의됨) 통제 혹은 지배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가해자들은 타인의 몸과 성의 지배를 통해 성적인 욕망(혹은 위계 확인)을 채우려고 자신에게 부여된 공적인 권력을 사적으로 악용하거나 남용하는 것이다. 특히 가해자의 영향력이 막강하여 피해자와의 권력 격차가 큰 경우, 또는 피해자가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고 애착이 큰 경우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란 더욱 어렵다.

가해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바그(Bargh) 등(1995)은 흥미로운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들은 평가척도를 통하여 성희롱할 가능성이 높은 남성과 성적으로 공격적인 남성과 이와 대비되는 두 집단 등 4집단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성희롱할 가능성이 높은 집단과 성적으로 공격적인 집단에서 권력(power)과 성(sex) 간의 자동 연합을 확인했다.

이러한 결과는 이들의 경우 타인, 특히 이성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될 경우 그 권력을 성적인 행위와 결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성폭력이 권력의 남용과 관련이 있음을 언급하였는데 이를 확인해주는 연구이기도 하다.

다른 연구도 있다. 주로 외국에서 성범죄자 혹은 강간범들을 대상으로 해서 밝혀진 것들인데, 강간범들은 남성의 강간을 정당화하거나 강간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등의 강간통념(Rape myth: 예전에는 강간신화라고 하였음)을 수용할 가능성이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높았다(Koss & Dinero, 1988).


인식의 왜곡


이 외에도 성범죄자는 일반 사람들보다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남녀 관계에서 상대 행동에 대한 인지적 왜곡이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상황이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데, 성범죄자의 경우 이러한 능력이 많이 부족하여,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피해자가 겪을 고통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성범죄자는 상대방의 동의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하여 성폭력을 저지른다. 특히 이들은 여성의 호의나 친절을 유혹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남자가 여성의 호의를 착각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특히 밤늦은 시간의 호의나 친절은 성적인 제안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강간범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성범죄자들은 피해자의 수동성 혹은 겁먹은 응종(특히 피해 여성들이 가해자의 협박으로 몸이 얼어붙은 듯 시키는 대로 움직이게 되는 상황. 영어로 freezing이라고 함)을 마치 피해자가 강간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의 경우 강간범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피해자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여 피해자에게 전화해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가 경찰에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흥미로운 연구는 블레이더와 마셜(Blader & Marshall, 1989)의 연구인데, 이들은 공격적 행동과 성적 행동의 “반응 양립성”, 즉 폭행(신체적 폭력)과 성적 흥분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강간범들의 심리적 징표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하였다.

전문용어다 보니 무슨 말인가 싶을 것이다. 이들은 흥미로운 실험을 하였다. 강간범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두 집단을 구성하여 협박과 폭행이 수반된 강간 영상물과 친밀한 관계에서의 낭만적인 성관계를 다룬 영상을 보여주고 그들의 생리적 반응(발기)을 확인했다. 그 결과 강간범들은 두 영상 모두에 대해 성적 흥분을 보인 반면, 강간 전력이 없는 일반 사람들은 낭만적 성관계를 다룬 영상에 대해서만 성적 흥분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들 연구자는 일반인의 경우 두 반응은 상호 제지, 즉 잔인한 폭행과 같은 공격적 반응이 표출될 경우 이것이 일반적으로 성적 흥분을 방해하는 형태로 나타나지만, 강간범들의 경우 폭력 행사가 성적 반응을 억제하지 않고 따라서 두 가지 반응이 서로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하였다. 결론은 강간범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피해자를 잔인하게 폭행하면서도 성적 흥분을 느껴 성관계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왜 침묵하는가

지금부터는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성폭력 피해자들은 왜 그렇게 오랫동안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던 것일까.

사실 피해자들이 초기에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는 관계에 의한 성폭력의 경우 그러한 행위가 성폭력인지를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울러 문제를 제기할 경우 자신의 직업 경력에 미칠 영향과 가해자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쉽사리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피해자를 더욱 위축시키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비난이다. 성범죄에서는 다른 범죄와는 달리 피해자들이 유독 행실을 의심받고 비난을 당하며 유발 책임을 추궁당하는 부당한 경험을 한다.

취객이 밤늦은 시간 귀갓길에 퍽치기를 당하면 피해자에게 왜 술을 마셨느냐고 비난하지 않는다. 하굣길에 어린 중학생이 불량 청소년에게 돈을 빼앗겼을 때, 죽기 살기로 덤벼서라도 돈을 빼앗기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범죄의 경우는 피해자에게 왜 술에 취해서, 왜 옷을 그렇게 입고 다녀서 그런 사달이 났느냐 혹은 끝까지 저항했어야지 하며 피해자를 비난한다. 유독 성범죄에서만 볼 수 있는 부조리한 상황이다.

미국의 성폭력 관련 연구 결과를 보면 피해자의 45%는 비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고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미국의 한 성폭력 예방 단체에서는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내걸었다. “얌전하게 옷을 입지 않았다고 강간 피해자를 비난하는 것은 테러 피해자에게 왜 방탄복을 입지 않았느냐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걸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끔찍한 강간사건에 대한 통제력을 갖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통제력을 갖지 못하면 우리는 매우 불안하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운전하다 사고로 사망할 확률과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추락으로 사망할 확률을 비교하면 자동차 사망사고율이 훨씬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비행기를 타다가 죽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 것일까. 통제 가능성 때문이다. 자동차는 본인이 운전하며 사고 방지를 위해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있지만 비행기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음주와 흡연을 하면서 전염병을 더 걱정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도 대부분 통제권 밖에 있다. 통제권 밖에 있는 사건이기에 그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사람들은 피해자들이 평상시 그럴 만한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예단해 버리고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성폭력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사건 발생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려는 것이다.

이러한 성폭력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심리학적으로는 러너(Learner)가 제시한 공정한 세상에 대한 신념(Belief in a just world)의 특수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착하면 복을 받고 악하면 벌을 받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사람들은 통제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를 바라볼 때 그 원인을 피해자의 도덕적 성향(평소의 품행)으로 돌리려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벼락을 맞아 죽은 사람을 두고 평상시 그의 행실과 전혀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그가 평소 나쁜 행동을 많이 해서 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경향과 같다. 평소 행동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통제력을 발휘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피해자를 향한 비난이 사람들에게는 성폭력에 대한 통제력을 가져다줄지 모르겠으나 피해를 본 사람에게는 합당한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문제제기를 포기하게 하며 이들에게 2차 피해라는 또 다른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이다.
  • 201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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