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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영화는 새들의 전설이 되고 내행화문 토기 조각만 스러진 왕궁터를 지키네

동서문명의 십자로, 중앙아시아를 가다 ⑧ ‘캉카[康居]’를 찾아서

타슈켄트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국립역사박물관 전경
한 나라의 역사를 알아보려면 박물관에 가보라는 말이 있다. 그 나라를 포함해 주변국 관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이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특히 처음 여행하는 외국인에게 박물관은 나침반과도 같다. 타슈켄트에는 20여 개의 박물관이 있다. 대부분의 박물관은 아담한 규모로 특화된 것인데,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인 ‘우즈베키스탄 국립역사박물관’은 여행자에게 필수 코스다.

시내 중심가인 라시도바 거리의 무스타킬릭 광장 앞에 위치한 국립역사박물관은 우즈베키스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지역의 역사, 고고 및 인류학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볼거리 많은 박물관이다.

“우와! 전시물이 빼곡하네.”

“이곳에서는 우즈베크 전체의 역사와 유물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러네. 석기시대 암각화부터도 대단하네.”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석기시대의 암각화가 눈길을 끈다. 사슴과 말들, 그리고 사냥하는 모습이 간명하면서도 선명하게 표현되었다. 마치 한자의 초기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러한 암각화를 보고 있노라면 중앙아시아가 지금은 사막기후이지만 고대에는 매우 살기 좋은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박물관은 총 25만 점이 넘는 고고학적·인류학적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명실공히 중앙아시아 최고의 박물관인 것이다. 박물관은 거대하지는 않지만 관람자들의 동선과 시각적 효과까지도 고려한 흔적이 보인다. 수많은 유물이 촘촘하게 전시된 까닭에 비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어서 처음 찾는 이방인조차도 신선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실크로드와 관련된 유물도 많지요?”

“맞아. 유리그릇, 로마시대의 동전, 중국의 청동거울, 각종 불상과 조로아스터교 신상 등 그야말로 동서 문명의 교차로답네.”

“실크로드 주요 도시에도 박물관들이 있어요.”

“여기는 중앙박물관과 같으니까 중요한 유물들만 있겠지?”

“그렇지요. 나머지는 해당 도시의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실크로드의 핵심 길목

5~6세기 석국의 수도였던 캉카(Kanka) 유적지와 왕궁터
우즈베키스탄은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핵심 길목이다. 그래서인지 유물과 유적도 넘쳐난다. 빼곡하게 전시된 유물들을 보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자 박물관 직원이 다가온다. 별도로 촬영 허가증을 예매한 터라 걱정은 없지만 코너를 돌 때마다 보여달라고 하니 신경이 쓰인다. 허가증을 확인한 직원들은 ‘한두 장 찍으면 되지 뭘 그리 많이 찍느냐’는 표정이다. 하지만 수많은 실크로드 유물을 볼 수 있는 나에게는 그러한 눈치조차도 행복함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그만 보시고 출발해야 합니다.”

“아직도 볼 것이 많은데 어쩌지?”

“하하하. 오늘 일정이 있으니 다녀와서 내일 다시 보세요.”

“그래야겠네. 이제 반밖에 보지 못했으니까.”

타슈켄트 지역의 역사유적지로 중요한 곳은 서너 군데가 있다. 고선지 장군이 정벌한 7~8세기 석국의 수도 민우르크 성터와 당시 귀족들의 저택이 운집했던 아크테파 유적지, 그리고 시대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 5~6세기 석국의 수도였던 캉카(kanka) 유적지이다.

캉카는 중국 문헌에 강거(康居)로 소개된 나라다. 중국의 서역 개척은 흉노공략 정책과 맞물려 있다. 흉노는 지금의 몽골고원을 본거지로 삼아 중앙아시아, 만주, 시베리아를 오가며 수렵과 목축을 하였다. 승마와 활쏘기에 능했던 흉노는 항상 무용(武勇)을 자랑하는 전투적인 민족이었기에,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도 그들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을 정도였다. 흉노는 북방 유목민족으로 오랜 옛날부터 중원을 괴롭혀 왔다. 유방이 중원을 통일하고 한나라를 건설하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흉노에게 시달리는 정도가 극심하여 ‘치욕’이 되고 말았다.

유방은 중원을 통일하고 황제가 되자 그동안 속 썩여온 흉노를 무찌르고 제국의 기반을 든든히 다지고 싶었다. 그는 내친김에 군대를 소집하여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다퉁(大同) 부근의 핑청(平城)까지 진군하였다. 흉노의 지도자는 묵돌선우였다. 묵돌선우는 아버지를 죽이고 권좌에 올랐지만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며 흉노의 최전성기를 이끈 지도자다. 이러한 묵돌선우와 유방의 싸움은 유방이 목숨을 구걸하는 치욕으로 끝났다.

유방의 군대가 핑청까지 진군하였지만 묵돌선우의 유인책에 걸려 포위당하였다. 이 포위는 눈 내리는 한겨울 1주일간이나 이어졌는데, 위급함을 느낀 고조는 묵돌의 부인에게 갖은 보화를 뇌물로 바치고 포위가 느슨한 틈을 타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하였다. 역사는 이를 일러 ‘핑청의 치욕’이라 한다.


굴욕으로 유지하던 한나라의 평화

유방이 죽고 여태후(呂太后)가 정사를 돌볼 때도 흉노는 무례한 편지를 보내며 한나라를 협박하였다. 묵돌이 여태후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보인다.

“한족의 황후여, 내가 사는 곳은 매우 쓸쓸하고 외로운 곳이오. 해서 내 한번 그대 나라로 놀러 가고 싶소. 듣자 하니 그대도 과부라 하니 아주 외롭겠구려. 둘 다 불쌍한 처지인데, 서로 가진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이까?”

이에 여태후는 분노와 치욕을 삼키며 이렇게 답한다.

“저는 이제 기력이 쇠하여 이도 머리카락도 모두 빠지고 걸음도 걷기 힘든 늙은이일 뿐입니다. 선우께서는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으나 신분을 낮추면서까지 저를 찾아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아무 잘못도 없으니 선우께서 관용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어가 두 대와 준마 두 필을 바치오니 필요하실 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한나라는 치욕을 참으며 흉노를 달랬다. 이는 제6대 황제인 경제 때까지 100여 년간 계속되었다. 매년 흉노에게 명주옷, 비단 외투, 허리 금속장식, 갖가지 옷감 및 곡물을 바쳤고, 황족의 딸을 시집보냈다. 한나라로서는 굴욕적으로 평화를 유지한 셈이다. 경제의 뒤를 이은 무제는 흉노에게 당한 굴욕을 설욕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하였다. 무제는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든든한 경제력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준비한 흉노와의 전쟁을 시작하였다.

한 무제는 흉노와 적대국인 월지국과 연맹하여 흉노를 앞뒤에서 공략하려고 했다. 그리하여 장건을 월지국에 파견한다. 장건이 가고자 했던 월지국은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남부와 타지키스탄 서부지역에 있었다. 하지만 장건은 흉노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었다. 13년 만에 흉노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장건은 우여곡절 끝에 대원국(지금의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지역)의 안내로 강거국에 도착하고 강거국의 협조로 월지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월지국의 왕은 ‘이곳에서 풍요롭게 살고 있어서 다시 전쟁하고 싶지 않다’며 거절하였다. 장건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귀국했지만 월지국과 중앙아시아 지역 많은 나라의 정보를 수집하여 이후 실크로드 개척에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휴식의 도시는 잡초만 무성

캉카 유적 발굴 현장의 토기 조각들
타슈켄트에서 남서쪽으로 70km 떨어진 곳에 있는 캉카를 찾아간다. 그 옛날 장건이 목숨을 걸고 여행했던 곳. 나는 아침 일찍부터 작열하는 태양포를 노려보며 전의를 다진다. 섭씨 45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지상의 모든 물체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나의 무기는 오직 선크림과 뜨거운 생수 한 병뿐. 그러나 전투는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오늘도 하늘은 태양포를 중지하고 나를 편안한 호텔로 귀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내일 또다시 태양포를 가동하더라도 말이다.

저 성벽을 들어가면 휴식의 도시가 보인다네.
아름다운 여인과 향기로운 음식이 있고
격조 높은 숙소가 눈앞에 선하네.
졸졸졸 속삭이는 우아한 물소리
화려한 거리와 쾌활한 모습들
친절하고 기운 넘친 사람들이 있다네.

수천 년 전, 시인 페르다시가 노래한 캉카는 분명 최고의 오아시스 도시였다. 그러나 물어물어 찾아간 캉카는 구릉마다 잡초만 무성하다. 그 위로는 여기저기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와 말들뿐이다. 화려했던 캉카의 유적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련 듯 스치는 바람 사이로 사라졌다. 왕궁이 있었던 언덕만이 덩그러니 속살을 보일 뿐이다.

당시의 캉카는 2km의 성벽이 에워싸고 사방에는 화려하고 견고한 성루가 있었다. 성은 세 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었는데 왕궁은 최북단에 있었다. 왕궁은 40m 높이의 언덕에 세워졌고 주위에는 골을 깊이 파고 아칸가란강의 물길을 끌어들여 해자를 만들었다. 성안에 성을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철옹성이 아니고 무엇이랴.

캉카 유적지를 가로지른다. 예산 부족으로 발굴하지 못한 곳이 아직도 수두룩하다. 몇몇 발굴 장소는 아직도 지층 사이로 토기 조각들이 그대로 있다. 밖으로 표출된 토기 조각들을 캐보며 수천 년 전 역사의 현장으로 달려간다.

번화한 상가마다 흥정 소리 요란하고, 향기로운 음식과 아름다운 음악이 거리를 가득 메웠으리라. 왕궁에는 갓 들어온 대상(隊商)이 이국의 진귀한 물품으로 왕을 알현하고, 왕은 맛있는 음식과 매혹적인 무희의 춤으로 여정의 노고를 격려하였으리라. 골목마다 잘 익은 포도주가 잔에 넘치고 짧은 밤을 아쉬워하는 연인들은 온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으리라. 그리고 내가 지금 캐고 있는 토기는 그들의 애틋함을 위로하는 포도주를 가득 담은 술 항아리였으리라.

실크로드 교역의 증거물인 내행화문이 그려진 토기 조각
바자르였을까, 아니면 귀족의 저택이었을까. 붉은색 토기 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찬찬히 살펴보니 ‘내행화문(內行花紋)’이 새겨져 있다. 내행화문은 8개의 활모양 무늬를 두른 것으로 중국 후한(後漢) 때의 대표적인 문양이다. 이로 미루어본다면 캉카는 이미 1~3세기에 중국과 교류할 정도로 기반을 갖춘 나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청동거울은 옛날에도 귀한 물건이었다. 뒷면에는 시대별로 독특한 문양을 그려 넣었는데 주변 민족에게는 조공사절의 사여품(賜與品)으로, 대상들에게는 교역상품으로 매우 중시된 물건이었다. 이는 내행화문 자체가 중국 황제가 내린 사치품이자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진 지역일수록 실물 전달이 어려워 조각을 내어 주기도 하였는데, 이곳 캉카 유적지에서 발견된 토기의 밑굽에 그려진 내행화문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캉카의 화려한 모습은 부와 번영의 상징인 장식물뿐 아니라 작은 동물 조각상, 세밀한 주방용구 및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각종 유물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캉카는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있었다. 화려했던 영화(榮華)와 무용담(武勇談)도 새들의 전설이 되어버렸다. 옛 이야기보다는 한 마리의 양과 말에게서 얻는 젖과 고기가 그들의 삶을 이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근 2000년 전에 누렸던 문명의 흔적은 이제 한 마리의 양과 한 통의 젖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무엇도 흥망성쇠의 바람을 피할 수는 없다.

캉카의 구릉을 내려오면서 문득 팔뚝을 부여잡는 바람의 소리를 느낀다. 그렇다. 캉카와 그 시대의 사람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과 숨결은 아직도 조용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당시의 찬란했던 역사를 복원하여 새 역사를 창조할 옹골찬 주인을 말이다. 그 주인이 나타나는 날, 이곳 중앙아시아는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리라.
  • 2018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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