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석의 산 이야기 1

히말라야 구르자히말–다울라기리 트레킹 (上)

하늘에 별은 반짝이고 간혹 외딴집 강아지가 짖어대고…

글 : 한필석 등산가·전 월간 산 편집장  / 사진 : 김창호

세계 7위 고봉인 다울라기리(Dhaulagiri·8167m)는 네팔 히말라야의 8개 8000m 고봉 가운데 가장 서쪽에 있다. ‘빛나고 아름다운 설산’이란 의미의 이름이지만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접근성이 좋지 않고 숙박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트레킹하기 쉽지 않은 산군이다. 프렌치 패스(French Pass·5360m)와 타파 반장(Thapa Bhanjyang·5244m·담푸스 패스) 같은 5000m대 고개를 두 개 넘어야 한다는 것 또한 큰 부담이다. 다울라기리 서쪽 구르자히말(Gurja Himal·7193m)은 더하다. 트레커는 물론 어지간한 클라이머도 잘 모르는 산군이다. 골짜기 깊숙이 자리한 소수민족 찬탈족(Chantyal족)이 모여 사는 구르자카니(Gurjakhani·2620m)는 ‘히든 빌리지(Hidden Village)’라 불린다.

협찬 : 유라시아트렉
히말라야 설산을 마주한다는 것은 감동이다. 루가차우르 패스에 올라서는 순간 추렌히말(맨 왼쪽)에서 구르자히말(중앙)을 거쳐 다울라기리 1봉(맨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설산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감동은 우리 트레커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한 시간 넘게 풍광을 즐기다가 구르자카니로 향하고 있다.
1월 7일부터 열흘간 이어진 구르자히말과 다울라기리 트레킹은 오랜 선후배 사이인 김창호 대장(히말라야 8000m급 14좌 무산소 완등자)이 기획한 ‘필자의 퇴직 기념 힐링 트레킹’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퇴직 후 머리가 어수선한 필자에게 정신이 번쩍 들게 한 ‘하드 트레이닝 코스’였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를 출발, 포카라와 바그룽(Baglung)을 거쳐 해발 2870m 고원에 자리한 티베트 난민촌 도르파탄(Dhorpatan)에 도착하는 순간 문제가 생겼다. 친구 석상명, 후배 서기석 등 일행 4명과 쿡, 키친보이, 포터 등 트레킹단 17명을 태우고 하루 12시간씩 이틀간 험악한 비포장도로를 달려온 버스가 퍼지고 말았다. 시간당 10km를 못 달릴 만큼 끔찍한 도로를 달리다 보니 구동축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버스에서 내려선 고원 평원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찬바람이 매섭게 불어댔다. 운전사와 조수 2명은 고장 수리를 위해 버스에 남고 트레킹 팀은 동서 4km 남북 12km 넓이의 거대한 고원에서 불빛 반짝이는 곳으로 이동, 썰렁한 로지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이튿날 루가차우르 패스(Rugachaur Pass·3850m) 아래 해발 3600m 높이 카르카(Kharka: 고원에서 야크나 양, 염소와 같은 가축 키우는 곳)까지 갈 계획이었으나 적게는 30kg, 많게는 50kg이 넘는 무거운 짐에 버거워하는 포터들의 느린 발걸음에 구르자갓(Gurjaghat·3015m) 민가에서 점심을 먹고 원시림 우거진 골짜기(Simudar Khola 시무다르콜라)를 두어 시간 오른 뒤 하루 트레킹을 마쳤다.

포터들은 무거운 짐을 멨을 때는 힘든 표정이었지만 개울가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모닥불을 피워놓자 표정이 밝아졌고 밤늦도록 깔깔대며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다. 이런 그들의 쾌활한 모습은 마르파(Marpha)에서 트레킹을 마치는 날까지 이어지며 편안한 삶에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아온 도시인을 반성케 했다.

구르자카니에서 아르체로 이어지는 트레일상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사촌팔촌이 함께 사는 마을이다. 중고생으로 보이는 소녀들은 방학을 맞아 고향 집에 머물고 있었다.
이튿날, 전날에 비해 포터들 발걸음이 빠르고 표정도 밝다. 디디(Didi 아가씨)들 역시 남자 못지않게 빠른 속도다. 20~30대 남자 포터들은 우리에게 장난기 어린 눈빛을 보내지만 디디들은 눈이 마주칠라 치면 수줍음에 고개를 푹 숙인다. 디디들은 25세에서 30세 초반. 필자 딸과 비슷한 나이인데 30kg 안팎의 무거운 짐을 지고 히말라야 고지대를 오르내리는 힘든 삶을 살아간다. 네팔 고산지대의 삶은 집을 나서는 순간 오르지 않으면 내려가야 한다. 집 밖은 온통 급경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발고도가 높은 데다 가파른 자연환경 탓에 DNA가 고산에 적합해지지 않았나 싶다.

“형들, 저기 보세요, 추렌히말이 반짝이네요.”

원시림 울창한 계곡은 높이를 더할수록 점차 넓어지고 해발 3500m를 넘어서자 거대한 분지형 개활지로 바뀐다. 트레킹 시작 2시간쯤 지나 개활지에 들어섰을 때 김창호 대장 말에 눈이 번쩍 뜨인다. 이틀 전 버스 이동 중 점심을 먹은 뷰타워(View Tower)에서 바라본 다울라기리-안나푸르나(8091m)-마나슬루(8163m) 산줄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8000m대 고봉 3개 산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가슴 벅찬 순간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 능선 위에 봉긋 솟구친 설봉 역시 즐겁게 했다. 추렌히말(Churen Himal·7372m)은 1970년 봄 김정섭 원정대가 등정을 발표하면서 한국 히말라야 등반사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하지만 그해 가을 등반에 나선 일본 원정대에 의해 등정 의문이 제기되면서 세계 초등 기록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동충하초 & 석청 트레일’

구르자카니의 아침. 해발 2600m대 플라토에 자리한 ‘히든빌리지’라 불리는 오지마을이다.
“와~” “멋져~” “대단해~”

오전 10시경, 석상명, 서기석, 필자 세 명 모두 루가차우르 패스에 올라서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쩍 벌어졌다. 왼쪽(서쪽) 추렌히말에서 구르자히말-캄본히말(Kambon Himal·6570m)-미아그디히말(Myagdi Himal·6373m)-차우라봉(Tsaurabong·6395m) 그리고 다울라기리 1봉(Dhaulagiri·8167m)으로 이어지는 대장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뒤이어 오른 현지인들 역시 즐거워하며 품에 넣어둔 스마트폰을 꺼내 기념 촬영을 한다. 스태프 13명 가운데 이 고개를 올라본 이는 2명에 불과하다. 2001년 여름 파키스탄 카라코룸히말라야의 곤도고로패스(약 6000m)에 올라섰을 때 머리카락 희끗한 포터 한 사람이 눈물을 글썽이며 일행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포터가 “내 평생 이런 곳에 올랐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격스럽다”며 고마워한다는 것이다. 고지에서 설산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렇게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는 일인 것이다.

김창호 대장은 고갯마루에서 구르자히말 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히말라야 8000m 14좌 무산소 완등을 끝마친 뒤 히말라야 거벽 신루트 등반에 도전 중인 김창호 대장의 목표 중 하나가 구르자히말 남벽이다. 수직고 3000m가 넘는 구르자히말 남벽은 아직 인간의 접근을 허락지 않은 난벽(難壁)이다.

이날 일행이 하룻밤 묵기로 한 구르자카니(Gurjakhani·2620m)로 가는 길은 멀었다. 낭떠러지 벼랑길 따라 700~800m 높이를 내려서고 또 후친콜라(Huchin Khola) 협곡 허리길 따라 고도 500~600m를 낮춰 해발 약 2400m 높이 다울라콜라(Dhaula Khola) 물줄기를 건너선 다음 다시 고도 200여m를 높여야 했다.

우리가 이틀 동안 걸은 길은 ‘겨울엔 곤충, 여름엔 풀로 자란다’는 동충하초(冬蟲夏草)가 많이 자라고, 또 협곡 절벽에 석청이 많아 ‘동충하초 & 석청 트레일’이라 일컫는다는 김창호 대장의 말대로 골짜기 중간 협곡 절벽에 매달린 석청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지만, 협곡을 빠져나오기까지 2시간 반은 모든 이에게 진을 짜내게 했다.

포터 전원을 이끌고 오후 4시가 넘어 마을에 도착한 치링 보테는 김창호 대장에게 화를 발끈 내고, 김 대장은 아무 소리 못 한 채 미안한 표정만 지었다. 두 사람은 10년 가까이 등반가와 쿡 관계로 히말라야 고봉 등반을 함께해 왔기에 허물없는 사이다. 2007년 K2-브로드피크 등반 때는 베이스캠프로 전해진 맏딸의 감전 사망 소식에 아버지인 치링은 물론 김창호 대장 일행의 가슴을 아프게 하기도 했다.

티베트 난민촌인 도르파탄의 어린 소녀가 해맑은 미소를 띠고 있다.
해발 2600m대 산중턱 널찍한 테라스 지형에 자리한 구르자카니는 워낙 오지마을인지라 네팔 히말라야에서도 ‘히든 빌리지(Hidden Village)’로 불린다. 이 마을에 사는 찬탈족은 1만 명에 불과한 티베트-몽골리안 계열의 소수민족으로, 보리, 옥수수, 감자 농사로 자급자족하고 고유 언어를 사용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네팔에서도 제일 씻지 않고 사는 사람들 같네요.”

겨울철인 네팔 히말라야 전역에 두 달 동안 눈이 내리지 않은 탓에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먼지가 풀풀 날렸다. 마을은 더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래도 집마다 벽돌을 반듯하게 쌓아 벽을 쌓고 널찍한 판석을 얹어 지붕을 만들어놓았다. 툇마루엔 맷돌이 놓여 있는 등 겉모습이 반듯하다.

동네 동쪽 끄트머리 수돗가에는 아낙네들이 해 넘어가기 전에 머리 감고 빨래하느라 바쁘다. 아이들은 왜 이리 많은지 두세 집 걸러 마당에 10여 명씩 모여 있다. 아이들은 낯선 이방인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몇몇 아이들은 쫓아온다. 아이들 대부분은 ‘코흘리개’요, 몇몇 어른은 한낮에 툇마루에 제멋대로 드러누운 채 잠을 자는 주정뱅이였다. 딱 한 사람, 마을을 들어서서 첫 번째 집에 있는 젊은 여자는 도시 옷차림에 깨끗한 얼굴이었다. 아이들 학교 선생님인 듯했다.

한데 옷차림이 허름하고 흙먼지에 새카매도 주민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들고 있다. 집집마다 전기가 들어오고 어떤 집에는 스카이안테나까지 달려 있다. 우리가 타고 내려온 계곡 하단부의 수력발전시설은 구르자카니를 위한 시설이었고, 히든 빌리지라 하지만 주민들은 산 밖 사람은 물론 바깥 문명과 접촉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도르파탄의 개구쟁이 어린아이들.
마을을 벗어나 방문객을 위해 지어놓았다는 건물로 다가섰다가 폐허 상태인 것을 확인하고 다시 마을로 들어섰다. 여행객 상대 로지는 없더라도 민박집이 몇 집 있다는 사전 정보에 이 집 저 집 기웃대다가 동네에서 마당이 가장 넓은 이층집으로 들어섰다. 무표정한 눈빛으로 지켜보던 노인이 흔쾌히 마당과 부엌에 안방까지 내준다. 이에 가이드 치링의 지시에 따라 쿡 락파 차우다리와 키친팀은 일사불란하게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포터들 또한 이날 밤 누울 자리를 찾아 나선다.

노인이 문을 가로막고 서 있던 안방이라야 널찍하기는 하지만 바닥에 시멘트 바르고 한쪽에 모닥불용 웅덩이가 파 있는 정도. 한쪽 벽에 침대가 붙어 있지만 때에 찌든 담요를 보면 빈대, 벼룩이 득실거릴 것 같아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춥다는 일행 얘기에 할아버지가 나무를 가져와 불을 피워주었지만 굴뚝 없는 화덕에서 나오는 연기는 온 방을 휘젓고 돌아다니다가 종내에는 이방인의 눈물샘을 쿡쿡 찔러댄다.

“……”

어둠침침한 안방에서 LED 등불을 밝혀놓고 반주 한잔해가며 저녁을 먹는데 주인 할아버지의 눈빛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 술 한잔 드시겠느냐 묻자 고개를 끄떡인 다음 부엌에서 커다란 컵을 들고 나온다. 꽉 채워줄 수야. 우리 마실 술도 넉넉지 못한데.

이렇게 저녁을 마치고 매트리스 깔고 침낭 안에 들어갔는데 잠들만 하면 시끌시끌하다. 침대 위에 누운 여든 살 할아버지 옆에 여든여섯 살 할머니가 눕고 또 그 옆엔 불량한 눈빛의 손자가 모로 누웠는데 손자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성인식 직후라 영 불편한 기색이다. 여기다 할아버지가 뭐라고 한마디 하면 앙칼진 목소리로 대꾸해대 신경이 곤두서게 한다. 게다가 동네 아이들까지 쳐들어와 떠들어대고, 또 한 패거리가 2층으로 올라서더니 쿵쾅거린다.

할아버지 아들 둘은 30kg 무게의 배낭을 메고 30km 산길 달리기를 비롯한 엄청난 강도의 체력 테스트에 합격해야 입대할 수 있다는 영국 외인부대 대원이었고, 그 아들 둘이 보내준 돈으로 동네 유지 격으로 넉넉하게 살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넉넉하고 품위도 엿보이는 노인이지만 손자에 대한 사랑과 술에 대한 유혹은 어찌할 수 없는가 보다. 저녁 밥 먹는 자리에서 소주 한 병으론 뭔가 부족하다 싶어 카고백 깊숙이 넣어놓았던 캔맥주 하나를 꺼내 놓았을 때 또 컵을 내밀었다.


“이거 원숭이들이나 다니는 길 아니야?”

일행의 트레킹을 도와준 디디들이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출렁다리를 건너고 있다. 아르체–무리 구간.
“형도, 창호도 정말 대단하네요. 잠이 와요? 난 도저히 못 참겠어서 상명이 형 텐트로 도망쳤는데. 상명이 형도 방에선 도저히 못 자겠다 싶어 마당에 매트리스 펴고 누웠더니 치링이 텐트를 쳐준 거예요.”

“체질인가봐, 처음에 신경 쓰이더니 곧 자장가 같았으니까. 창호는 더해. 키친보이가 아침에 모닝티 가져올 때까지 코를 드르렁댔으니까.”

어둠이 벗겨질 즈음 다시 안방에 들어온 서기석 씨는 신기한 듯 김창호 대장과 필자를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찬다. 사실 아이의 앙칼진 목소리에 깊이 잠들 수 없었다. 자다 깨다 반복하다보니 날이 밝았을 뿐.

“오늘 묵을 마을은 8시간 거리예요. 오후 4시 정도면 도착할 거예요. 구글맵으로 잰 거니까 이번엔 맞을 거예요….”

“……” “……” “……”

세 사람 모두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김창호 대장을 쳐다본다. 카트만두에서 바그룽까지 10시간이라더니 12시간 걸렸고, 6시간 거리라던 바그룽에서 도르파탄까지 또 12시간 걸렸다. 어제는 서너 시간 거리라더니 7시간 이상 걸렸다. 이젠 아무리 ‘히말라야의 사나이 김창호 대장’이라 해도 믿을 수 없다. 결국 이날도 ‘불신의 기대’가 그대로 들어맞았다.

구르자카니 출발 이후 마을길이 골바닥으로 내달아 다울콜라로 내려서는가 했더니 아니었다. 곤두박질치듯 가파른 길 따라 고도를 500m쯤 낮추고 물줄기를 건너서자 또다시 500m를 올라서고 또 비슷한 고도를 낮추면 또다시 엇비슷한 높이로 올라서야 했다.

“이 바위가 이렇게 까진 것은 산양들이 수시로 핥기 때문이에요. 소금을 섭취하려고요. 이게 히말라야가 옛날 바닷속에 있었다는 증거지요.”

김창호 대장은 암염(巖鹽)을 손가락으로 찍어 혀에 대면서 “히말라야는 오천만 년 전부터 북상을 거듭한 인도판이 유라시아판과 부딪치면서 솟구쳐 올라 형성된 산줄기”라며 “그 때문에 대체로 남쪽은 가파르고 북쪽은 상대적으로 완경사를 이루고 있다”고 알려준다.

협곡 절벽을 깎아 만든 허리길. 네팔 히말라야에선 흔한 길로 사람도 소도 말도 다닌다.
벼랑길 한쪽 암염을 지나자마자 장총을 대바구니에 얹은 사냥꾼이 다가온다. 바구니에 짐승의 사체는 보이지 않았다.

“참, 산양 어떻게 잡는지 아세요.”

김 대장은 “총으로 잡기도 하지만 암염지대처럼 산양이 나타날 만한 곳에서 바람 반대 방향에 숨어서 기다리다가 산양이 나타나면 절벽 아래로 밀어 떨어뜨려 잡기도 한다”고 귀띔해 준다.

구르자카니와 고도가 엇비슷한 히말리아(Himalia)에서 점심을 먹고, 오전에 했던 오르내림을 세 번 더 반복하자 오늘 묵을 산마을 아르체(Low Arche·1820m)가 빤히 바라보이는 능선 마루에 섰다.

“오후 4시니까 5시 30분이면 도착하지 않을까?”

서기석 씨 질문에 김창호 대장은 대답하지 않는다. 김 대장은 이제 가늠한 트레킹 시간에 대해 자신감을 잃은 듯하다. 그래도 랄리그라스(네팔 국화) 거목 우거진 능선을 따를 때는 여유로웠다. 겹을 이룬 능선이 자아내는 산 그리메, 그 위에 슬쩍 정수리를 내민 채 반짝이는 설봉 또한 눈을 즐겁게 하고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아니! 절벽 아니야! 저길 내려선단 말이야? 원숭이들이나 다니는 길 아니야? 미끄러지는 날이면 협곡으로 곧장 추락할 텐데 어두워지면 더욱 위험해질 테고….”

“염려 마세요, 포터들이 스마트폰으로 불 밝히며 내려올 거예요.”

버스 캐러밴에서 보낸 둘째 날 점심 때 닿은 뷰포인트. 안나푸르나 산군과 마나슬루 산군(맨 오른쪽)의 설봉 설릉이 아름답게 솟아 있다. 왼쪽부터 서기석, 김창호, 석상명 씨.
치링은 여전히 태연하다. 마른 풀 우거진 절벽 길은 700~800m 아래 협곡을 흘러내리는 급류가 수직으로 내려다보일 만큼 벼랑을 이루고 있다. “나도 나지만 무거운 짐 짊어진 포터들에게 너무도 위험한 길”이라는 우려에 치링은 염려 말고 우리들이나 조심히 내려가라 얘기한다.

절벽 길은 지그재그로 이어졌다. 길 폭이 30~40cm로 일정하게 이어지기는 해도 풀이 바싹 말라붙어 있어 미끄럽기 그지없다. 긴장 상태로 조심스럽게 내려서다 보니 시간이 뜻밖에 많이 걸리고, 서기석 씨와 함께 절벽 길을 다 내려선 다음 협곡에 걸쳐진 현수교를 건너자마자 어둠이 몰려든다. 이어 사탕으로 허기를 달래가며 협곡 사면 허리길 따라 30분쯤 걸어가자 오늘 묵을 아르체 마을 외딴집 불빛이 반짝인다.

“창호야, 이게 무슨 힐링 트레킹이냐. 해병대 출신이라고 엉아들한테 ‘지옥 훈련’ 시키는 거냐? 그나저나 이렇게 어두운데 포터들이 괜찮을까….”

김창호 대장은 중년 부부가 사는 민박집에 배낭을 풀어놓자마자 물병 몇 개에 식수를 채워 다시 포터들을 마중나가고, 일찍 도착한 포터들 역시 짐을 내려놓자마자 왔던 길을 되돌아가 디디들 짐과 또 오전부터 힘겨워하던 구르자카니 포터들 짐을 짊어지고 온다.

우리 잠자리는 콘크리트 툇마루. 한쪽 끝 화덕에 모닥불이 피어오르지만 그곳은 주인 내외와 디디들 몫. 차가운 콘크리트 툇마루지만 매트리스 깔고 침낭에 들어가자 세상 이보다 편안한 곳이 어디 있으랴 싶다. 하늘에 별은 반짝이고 간혹 외딴집 강아지가 짖어대고….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12시간 넘게 걸은 산길도, 치링이 ‘원숭이길’이라 일컬은 벼랑길도 아련해지고 내일부터 시작될 다울라기리 서킷(Circuit)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꿈속에 빠져든다.
  • 201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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