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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최신 병기였던 한혈마, 그 많던 천마(天馬)는 다 어디로 갔는가

동서문명의 십자로, 중앙아시아를 가다 ⑤ 천마의 고향, 고대 대완국을 찾아서

페르가나에서 만난 몇 마리의 말. 천마는 옛 영화로만 남았다.
“대원은 한나라에서 약 만 리쯤 떨어져 있습니다. 포도주가 있고, 좋은 말이 많은데 말은 피와 같은 땀을 흘리고 그 말의 조상은 천마(天馬)의 새끼라고 합니다.”

기원전 126년. 중국 한나라의 제7대 황제인 무제(武帝)는 장건을 특사로 임명해 대월지국에 보낸다. 무제의 숙원인 흉노 정벌을 위해서다. 장건은 대월지국과의 연합전선 구축을 위하여 노력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13년 만에 귀국한다. 하지만 그는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게 된다. 그중에서도 무제가 최고의 관심을 가질 대완(大宛)국의 한혈마 이야기를 보고한다. 무제는 장건의 보고를 듣고 귀가 솔깃해진다. 하루에 천리를 달려 천리마로도 불리는 한혈마는 흉노를 제압할 수 있는 최신 병기가 틀림없기 때문이다.

말은 고대의 최신 병기나 다름없었다. 특히 한혈마는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군수품이었다. 한 무제는 곧바로 대완의 이사성(貳師城)에 있는 한혈마를 천금을 주고라도 사 오도록 한다.

대완이 사신을 죽이고 거부하자 이에 분노한 무제는 이광리를 이사장군에 임명, 대완국을 격파하고 3000여 마리의 말을 가져온다. 무제는 이 명마로 숙원이던 흉노를 제압한다.

이광리가 한혈마인 천마를 가져오자 한 무제는 〈서극천마가(西極天馬歌)〉를 지어 칭송했다.

천마가 오네 서극에서 오네
만 리를 넘어 중국으로 돌아오네
신령한 위엄을 이어받아 외국을 항복시키니
유사(流沙)를 건너 모든 오랑캐가 복종하네

무제가 천마를 얼마나 애지중지하였는지 위의 시 한 편으로 알 수 있다. 당시에 한혈마를 소유하는 것은 마치 하늘의 축복을 받은 증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대완국은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지역에 있었던 고대 왕국이다. 페르가나는 북쪽으로 톈산산맥과 남쪽으로 파미르고원으로 둘러싸인 50㎢의 거대한 분지이다. ‘천사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페르가나를 찾아간다. 우즈베키스탄 수도인 타슈켄트에서 페르가나까지는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가 운항한다. 비행기에 오르니 30명 남짓한 승객들이 저마다의 관심사로 시끌벅적하다.

“이 비행기를 타고 가는 거야?”

“네. 프로펠러 비행기가 더 안전해요.”

“무슨 말이야? 제트기가 빠르고 더 안전하지.”

“제트기는 추락하면 다 죽지만, 프로펠러는 추락해도 살 수 있어요.”

참으로 괴이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비행기가 안전하게 이륙하자 의구심은 사라지고 생각은 비행기를 앞서간다. 페르가나에는 한혈마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 홀로 궁금한 생각에 잠길 즈음, 프로펠러 비행기가 청룡열차를 탄 듯 흔들림이 심하다. 순간, 기내가 조용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비행기가 다시 균형을 잡자 사람들은 참았던 말까지 쏟아낸다. 시장은 육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천사의 도시’ 페르가나

집마다 터널처럼 늘어서 있는 포도나무.
비행기는 청명한 하늘을 도화지 삼아 가로지른다. 이따금 뭉게구름과 마주하며 페르가나 계곡을 굽어본다. 계곡은 태곳적부터 미끄러져 내린 톈산산맥의 빙하와 만년설의 흔적이 역력하게 보인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강줄기를 보는 듯하다. 그 흔적이 끝나는 지점에 잘 다듬어진 밭들이 촘촘하고, 적당한 간격을 두고 마을들이 옹기종기 펼쳐진다. 낮게 나는 프로펠러 비행기에서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문을 나서면 곧 옥토인 페르가나. 페르가나 계곡의 풍요로움은 착륙하기도 전에 이미 하늘에서 다 알아버렸다.

눈 덮인 톈산산맥을 넘어와서인가, 페르가나 공항에 발을 딛자마자 재채기를 연발한다. 그러자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인사를 한다.

“무치 즈다로브이!(Bud'te zdorovi)”

“‘건강하세요!’라는 뜻이에요.”

“아, 우리도 재채기하면 ‘감기 조심하세요!’라고 하는데.”

“네, 같은 뜻이에요. 우리도 재채기하면 건강을 염려하는 풍속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에게는 인사를 건네지 않는데 이곳 사람들은 굉장히 배려심이 많은 것 같다. 이러한 배려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한나라 때 장건이 이곳에 왔을 때도 친절하게 대월지국까지 안내를 해주었으니 말이다. 당시 대월지국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있었다. 한 민족의 공통된 특성이 2000여 년을 넘게 내려오면 그것은 선천적인 체질이 되는 것이리라.

공항을 벗어나 초원으로 향한다. 길옆 평야에는 수확을 앞둔 면화가 가득하다. 우즈베키스탄은 구소련 시절부터 중앙아시아 면화 생산의 중심지다. 면화 농사는 많은 물이 필요하다. 우즈베키스탄은 톈산산맥의 만년설이 만든 두 강물을 이용하여 면화농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였고, 그 결과 세계적인 면화 생산국이 되었다.

들판 가득한 면화를 수확하는 사람들.
하지만 피해도 감수해야 했다. 그것은 풍요롭던 아랄해의 증발이었다. 아랄해를 채우던 강물이 면화농업과 무분별한 낭비로 말라버린 것이다. 아랄해의 증발은 풍요롭던 수산업을 해체하고 중앙아시아의 사막화를 더욱 부채질했다. 그리하여 이웃 나라들과의 물 전쟁으로까지 확대되곤 했다. 물은 인류의 생명수다. 하지만 점점 부족한 실정이다. 인류가 문명을 영유하기 위해서도 수자원의 공동 관리는 절박한 문제다. 중앙아시아에 오면 수자원은 절박함을 넘어 시급함으로 다가온다.

페르가나는 포도주의 명산지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페르가나 시내를 지나다보면 집마다 포도나무를 심어놓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포도밭을 상상하면 오해다. 사람이 오가는 길거리에 담장과 나란히 터널처럼 포도나무를 심어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게 하였다. 시원한 그늘에서 달콤한 포도를 먹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인 셈이다.

페르가나는 포도만이 아니라 사과, 자두, 살구, 복숭아 등 모든 과일이 유명하다.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는 즐거움 중 하나가 갖가지 과일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과일은 물론 열대과일까지 없는 것이 없다. 가격도 저렴하다. 게다가 당도까지 높으니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말들의 품종이 모두 같은 것인가?”

“글쎄요. 이곳의 말들은 대개 저렇습니다.”

말들이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도 고대의 한혈마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말들도 몇 마리 되지 않는다.

“명마의 고향에 왔는데 말들이 별로 보이질 않네.”

“이젠 말보다는 양을 많이 키워요. 양이 수입이 훨씬 좋거든요.”


페르가나에 살아 있는 대우자동차

폐허가 된 대완국의 도성 터인 아크쉬켄트.
그렇다. 천마의 고향 페르가나는 더 이상 명마의 고향이 아니다. 어쩌다 만나는 몇 마리 말이 고작인 채, 그 옛날 페르가나 계곡을 누볐을 한혈마는 찾아볼 수 없다. 천마를 대체한 자동차가 전성시대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곳 페르가나 계곡의 안디잔에는 GM사의 소유가 된 대우자동차 공장이 있다. 대우자동차는 오래전부터 중앙아시아에서 티코, 다마스, 넥시아를 생산하며 이름이 높았다.

특히 다마스는 대중교통을 주도하는 자동차가 되어 오늘도 우즈베키스탄의 전 지역을 누비고 있다. 회사는 GM사의 것이지만 아직도 대다수 우즈베크인은 ‘대우=한국’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좋아한다. 이를 잘 아는 GM사는 ‘대우’라는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천마의 고향에서 이를 대신하고 있는 ‘대우’를 빼앗긴 씁쓸함은 한 무제의 침략으로 천마를 내놓아야만 했던 대완국의 심정과 별반 다름이 없으리라.

한 무제의 공략으로 대완국은 기원전 102년에 멸망한다. 그러나 최신 병기인 천마는 중국과 주변국들의 보호 아래 더욱 품종개량이 이뤄졌다. 그리고 한나라와 다투며 성장한 부여도 한나라가 망한 4세기 초에는 천마를 확보했다. 기병이 강했던 고구려 역시 천마를 구하기 위해 애썼다. 무용총 벽화가 보여주듯 늦어도 5세기에는 천마를 보유하게 된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기인 5세기에 최대의 영토를 개척했다. 이때 최고의 공훈을 세운 것이 바로 천마로 이뤄진 개마기병(鎧馬騎兵)이었다. 개마기병은 사람과 말이 모두 철갑으로 무장한 기마병이다. 신라는 6세기에 천마를 확보한다.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가 이를 잘 보여준다. 고대의 천마는 시대와 국가를 넘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확보해야 할 최선의 경쟁 무기였던 것이다.

대완국의 도성(都城)은 어디에 있었을까. 천마는 볼 수 없어도 고대 도성 터는 남아 있을 법하여 찾아보기로 했다. 도성이 있던 곳은 아크쉬켄트다. 이곳은 페르가나 북쪽으로 흐르는 강인 시르다리야 기슭에 있다. 아크쉬켄트에 도착하니 사방의 드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히 도성 터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적지가 그렇듯 폐허인 채로 버려져 있다.

“와! 도자기와 토기 조각이 지천이네.”

“잘 보면 금화도 찾을 수 있을걸요.”

“글쎄, 이곳을 아무 데나 파도 천마의 흔적이 나오지 않을까?”

아크쉬켄트 옆으로 흐르는 시르다리야강이 40만㎡의 유적지를 침수시켰다.
성터에는 흙으로 만든 성벽이 강을 따라 500여 미터나 놓여 있다. 무너진 도성의 크기가 이 정도이니 옛날엔 얼마나 컸을까. 이 도성이 이렇게 폐허가 된 것은 몽골의 침입 때였다. 칭기즈칸이 교역을 위해 보낸 사신과 상인들을 오트라르의 총독이 살해하고 물자를 빼앗자 중앙아시아 전 지역을 처참하게 짓밟았다. 이 도성도 그때 폐허가 된 것이다.

발에 밟히는 도자기 조각들을 유심히 살피면서 걷노라니 어디선가 천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어디쯤 황궁이 있었을까. 방위와 성문터를 살펴보며 위치를 가늠해 보지만 지금도 시르다리야가 무너뜨리고 있어서 좀체 알 수가 없다. 고대의 유적지가 강물에 휩쓸려가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성터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데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현장학습을 하고 있다. 궁금한 것도 물어볼 겸 찾아가니 인솔 교수가 반갑게 맞이한다.

“먼 나라에서 이곳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실크로드의 중심이자 한혈마의 고향인 고대 대완국을 보려고 찾아왔습니다.”

페르가나 국립대 고고학과의 게다니 이바노프 교수가 제자들을 불러 나를 소개한다. 먼 나라에서 우리 고장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오신 분이라고. 그러면서 학생들에게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분들께 우리의 역사를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바노프 교수는 이곳 발굴 책임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발굴에 대해 이야기하자 동동 가슴뿐이다. 문화재의 중요성에 관해 국민적 이해도가 낮아 추가적인 발굴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처지임에도 교수의 열정은 대단하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그래야 이 학생들이 나중에 더 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청출어람을 향한 노교수의 열정이 진정한 스승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순간, 찾아도 찾을 길 없던 천마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중국 지안 무용총의 수렵도에서,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에서 핏빛 땀을 흘리며 질주하는 한혈마. 그 거룩한 하늘의 말들이 노도처럼 대륙으로 치달리는 것이 보였다.
  •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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