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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지배자들이 반드시 차지해야 할 병가필쟁(兵家必爭)의 요충지이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공교통의 허브

동서문명의 십자로, 중앙아시아를 가다 ③ 중앙아시아의 중심 도시 타슈켄트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타슈켄트의 야경.
비행기가 고도를 유지한 지 얼마 안 되어 만리장성이 산맥들 사이로 나타난다. 진시황이 완결한 중국 최대의 문화유산이라고 자랑하는 만리장성. 그 웅장한 토목의 역사는 지구 밖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만리장성은 문명교류사적 측면에서 보면 텃밭과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한 배타적 경계로만 보인다. 인류의 역사가 사방에 길을 만들고 그 길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라면 만리장성은 ‘문명’이라는 대하(大河)를 불통시키는 장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는 만리장성의 몇 천배 높은 톈산산맥과 파미르고원도 넘었는데 만리장성인들 어찌 거역할 수 있으리오. 장성이 흉노와 한족의 전쟁사에 끼친 점들을 생각하는 사이, 비행기는 어느덧 고도를 낮춘다. 창밖으로는 평원의 타슈켄트 야경이 보이고 기내 방송은 착륙을 알린다.

“중앙아시아는 국명에 모두 ‘스탄’이라는 말이 있는데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가이드가 반갑게 맞이하며 묻는다.

“스탄은 ‘땅’이라는 뜻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베크 민족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카자흐스탄은 ‘카자흐 민족의 땅’인가요?”

“네, 맞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고대 무역로인 실크로드의 중심지이자 중앙아시아 5개국의 심장부에 위치한다. 흔히 ‘스탄 형제들’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이 모두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 나라는 중앙아시아 국가가 대부분 그렇지만 우즈베크인 외에도 러시아인, 타지키스탄인, 카자흐스탄인, 타타르인, 카라칼팍인을 비롯하여 스탈린 시대에 강제로 이주되어 살고 있는 고려인까지 120여 개의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는 타슈켄트이다.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이기 전에 중앙아시아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도시이다. 그만큼 중앙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적인 도시다. 아울러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로 이어지는 오아시스를 낀 낭만적인 실크로드 도시들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인류 문명의 토대가 강에서 이루어졌듯이 중앙아시아의 주요 오아시스 도시들도 강이나 하천과 연결되어 있다. 톈산산맥에서 발원하여 중앙아시아를 가로질러 아랄해로 흘러가는 강인 시르다리야와 아무다리야는 이들 오아시스 도시들의 어머니와도 같다.

타슈켄트도 치르치크와 시르다리야 두 강을 원천으로 대상무역의 교역로 역할을 하면서 발전해 왔다. 이는 중앙아시아 대부분의 도시들이 오아시스 지역을 거점으로 작은 왕국이나 도시국가로 성장해 온 것과 마찬가지이다. 투르크어로 ‘돌(타슈)의 나라(켄트)’란 의미를 갖고 있는 타슈켄트는 중국 문헌에도 석국(石國)을 비롯하여 자설국(者舌國), 자시(赭時) 등으로 알려져 있다.


분수의 도시

분수대에서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타슈켄트의 특징은 분수다. 시내의 어느 곳이든지 가는 곳마다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 분수를 볼 수 있다. 그래서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도시 전체가 시원한 초록이다. 평균고도 해발 480m, 연 강수량이 300mm밖에 되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길마다 분수를 뿜어대고 있을까.

“이곳은 비도 많이 오지 않는데 분수가 많네요?”

“강에서 끌어온 물을 사용하여 도시를 시원하게 합니다. 보기에도 좋고요.”

커다란 분수대에서는 벌거벗은 꼬마들이 물장구를 치고 있다.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아이들에겐 놀이터가 되기도 하네요.”

“네, 길가의 나무와 꽃들도 하루 두 번 시원한 샤워를 합니다.”

평야를 가득 메운 면화 밭.
비가 적은 도시에 물이 풍부한 이유는 잘 발달된 관개수로 덕분이다. 관개수로는 두 개의 강인 시르다리야와 아무다리야를 이용하여 건설하였다. 구소련 시절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덕택에 비가 적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초록빛 생기 넘치는 낙원을 만들어 놓았다. 또한 관개수로의 발달은 우즈베키스탄을 세계적인 면화 생산국으로 변모시켰다. 그래서인가. 길마다 뿜어내는 물줄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타슈켄트는 예나 지금이나 열사(熱沙)의 사막을 건너 온 모든 사람의 오아시스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모습은 비단 타슈켄트만이 아니다. 시 외곽을 벗어난 마을에도 도랑마다 물이 감돌고 마을 어귀 저수지마다에는 벌거숭이 아이들이 있다. 끝없이 펼쳐진 평야 위엔 면화가 촘촘하고 대지를 적셔주는 물길로 인해 초록은 하얀 목화를 한 아름씩 물고 있다. 초원은 양치기 목동들과 삽살개가 한 몸으로 어울리고 말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 그곳이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도시다.

타슈켄트는 번영과 좌절을 함께해 왔다. 그것은 시대의 지배자들이 반드시 차지해야 할 병가필쟁(兵家必爭)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몽골의 침입, 티무르 제국, 코칸트칸국의 지배를 거쳐 1865년 소련군의 점령까지 타슈켄트는 실로 중앙아시아의 노른자였다. 타슈켄트 지역의 고고학적 발굴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지층이 10세기를 전후하여 최근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하게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는 곧 타슈켄트가 중앙아시아의 역사를 응축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타슈켄트의 찬란한 문화유산은 역사의 악순환 속에서 많이 파괴되었다. 특히 1966년의 대지진은 전쟁보다 무섭게 도시를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타슈켄트는 현대적 도시로 부상하게 된다. 당시 소련의 각 공화국 기술자와 3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투입되어 동부지역에 새로운 타슈켄트를 재건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타슈켄트는 크게 동서지역으로 구분된다. 동부지역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및 교통의 중심지라면, 구시가지인 서부지역은 우즈베크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체리와 함께 시작하는 우즈베키스탄의 봄

각종 물건이 즐비한 브로드웨이의 벼룩시장.
타슈켄트는 1991년 독립과 함께 ‘신실크로드 건설’을 기치로 내세우며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중심지이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공교통의 허브로서의 이점을 최대한 발전시키려고 한다. 그 첫 번째가 도로의 건설이다. 방사형으로 뻗은 도로는 이러한 국가적인 프로젝트와 맞물려 있다. 동서남북의 국가들과 도로를 연결함으로써 실크로드의 재건을 통한 국가 발전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장기 프로젝트는 국민들의 호응과 일체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즈베키스탄은 이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타슈켄트 지도를 살펴보면 방사형 도로의 중심에 공원이 있다. 그곳은 아미르 티무르 공원이다.

오늘날 이 공원의 주인공은 아미르 티무르이지만 시대마다 그 주인공이 달랐다. 구소련 시절에는 카를 마르크스가 있었고 레닌이 있었다. 스탈린과 카우흐만 장군도 위풍당당했었다. 아미르 티무르가 주인공이 된 것은 1991년 소련연방에서 독립한 후 국가적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구심점으로서 선정된 것이다.

아미르 티무르는 칭기즈칸의 몽골제국 이후 최대의 제국을 건설한 영웅이다. 신생 독립국인 우즈베키스탄은 이 같은 국민적 영웅이 필요했다. 즉, 국민적으로 추앙받는 이미지를 통해 국가 발전의 모티브로 삼고 나아가 고대 실크로드의 영화를 되찾자는 정책과도 통한다.

타슈켄트의 명물인 노면전차 트람바이.
타슈켄트 시내를 다니다 보면 두 개의 명물을 만날 수 있다. 대중교통인 ‘트람바이’와 ‘트랄레이부스’다. 트람바이는 도로 중앙의 철길 위를 달리는 노면전차다. 트랄레이부스는 전깃줄로 연결된 길을 달리는 버스다. 트람바이를 타고 흔들흔들 여유 있게 달리는 운치도 오아시스 도시 타슈켄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길 거리다.

우즈베키스탄의 봄은 체리와 함께 시작된다. 5월이 되면 체리를 시작으로 각종 과일이 쏟아진다. 우리의 전통시장과 같은 바자르에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과일은 물론, 열대지방의 과일까지 다양하다. 특히 모든 과일은 일사량이 많아 당도가 매우 높다. 게다가 가격까지 저렴하니 그야말로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5~6월은 체리가 한창이다. 거봉 알만 한 검붉은 체리가 1kg에 우리 돈 2000원 정도다. 맛도 꿀맛이다. 달콤하고 향기로운 맛에 빠져 여행 내내 체리만 먹었다.

우즈베키스탄 부활의 구심점인 아미르 티무르 공원은 브로드웨이 거리와 연결된다. 이곳은 원래 소공원이라는 뜻의 ‘스크베르’로 불렸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브로드웨이’로 부른다. 이는 공원 주변에 대학교가 있고 이곳의 대학생들이 젊음과 자유, 낭만을 구가하는 장소로 부른 데서 연유된 것이다. 브로드웨이는 벼룩시장으로 유명하다. 옛날 동전과 우표부터 구소련 시절의 각종 물건들, 우즈베크 전통 인형과 악기, 실크로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림, 중고 책들과 생필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물건들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벼룩시장 건너편에는 노천카페가 줄지어 있고 경쾌한 음악으로 오가는 연인들을 유혹한다.

오세요, 봄의 열기 속으로 와서 잔을 채워요
회한의 겨울옷 훌훌 벗어던지고
그대의 웃음꽃 만발한 카페 브로드웨이로
오세요. 장미넝쿨 아름다운 사랑이 있는 곳

그러나 연인들은 쉽게 유혹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원한 분수대 옆 그늘 벤치에서 체리향 맴도는 둘만의 오붓한 공간이 최고의 명당자리다. 우즈베키스탄이 아미르 티무르와 함께 중시하는 또 하나의 인물은 알리셰르 나보이다. 나보이는 우즈베크 문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실크로드의 요충지인 우즈베키스탄은 전쟁으로 점철된 험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랜 전쟁은 물질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까지도 황폐화시켰다. 나보이의 서정시는 우즈베크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고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새로운 삶의 가치와 의미, 민족의 사랑도 깨우쳐주었다. 그의 시는 우즈베크의 언어로 우즈베크의 강산을 노래했기에 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있었다. 마치 우리의 국민시인 김소월처럼.


우즈베크 문학의 아버지 나보이

이 나라의 국민은 모두가 나보이를 칭송한다. 그 칭송은 건물과 도로에 ‘나보이’란 이름으로 새겨져 있다.

또한 사랑하는 남녀가 나보이 동상 앞에 꽃을 바치며 결혼을 맹세한다. 시인 나보이는 이미 ‘우즈베크 민족의 아버지’임을 알 수 있다.

나보이의 이름을 딴 건물이 여러 곳 있지만 그중에서도 손꼽는 건물은 ‘나보이 극장’이다. 타슈켄트의 대표적 명소의 하나인 이곳은 2차대전 때 잡힌 일본군 포로들이 완공하였다. 건물에는 6개의 휴게실이 있는데 각각 타슈켄트,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 테르메스, 페르가나를 상징한다. 1400석의 오페라홀은 한여름인 7, 8월을 제외하고는 매년 세계 정상급의 오페라와 발레단의 공연이 있다고 한다. 입장료가 우리 돈 3000원이다. 세계적인 문화를 접하는 비용이 이렇게 저렴한 것은 구소련 시절의 사회주의 영향일 것이다. 타슈켄트를 찾는 또 하나의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중앙아시아의 허브역인 타슈켄트 역은 그다지 크지 않다. 독립한 지 이제 소년 나이다. 그래서인가. 아직도 곳곳에 사회주의 체제가 배어 있다. 민주적인 국가와 사회가 되기에는 여러모로 미흡하다. 하지만 거리는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이 활기차게 오간다.

돈, 사랑, 명예 그리고 건강 등 각자 그들만의 행복을 찾아간다. 그만큼 희망이 있는 곳이다. 실크로드의 역사도 그렇게 이어져 왔다. 또한 앞으로도 그렇게 발전을 이어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타슈켄트는 과거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국민이 일치단결하여 매진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을 것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국민이 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글쓴이 허우범 님은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직장도 인천이었고 지금도 인천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여행과 책을 좋아하여 틈만 나면 책 한 권 들고 훌쩍 떠난다. 평생 실크로드를 화두로 삼고 있다. 올해 초, 여행과 글 쓰는 일을 하고파 30년 몸담았던 직장을 떠났다. 요즘은 10년 만에 삼국지 여행기를 다시 정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3권의 책을 냈다.
  • 2017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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