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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세요

[special feature] 미술로 트라우마 치료하는 김선희 교수

글·사진 : 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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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몸이 기억하는 상처다. 외상으로 인한 ‘불안’은 머릿속에서 하나의 장면으로 자리 잡는다. 어제 본 화재 현장이나, 어릴 적 부모의 다툼, 혹은 텔레비전 화면에서 본 먼 나라의 전쟁 장면이 충격과 불안으로 몸에 각인된다. 이러한 외상을 다루는 감각적 치료 접근방식 중 하나가 미술치료다. 감정이나 내면의 세계를 미술로 표현함으로써 감정의 스트레스를 이완시키는 방식이다. 대학에서 미술치료를 가르치는 김선희 교수는 “외상치료에 있어 감각치료가 중요하다”며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자기의 감정을 직접 다루는 방식으로는 미술치료가 유리하다”고 말한다. 그는 서울여대 특수치료전문대학원 표현예술치료학과의 학과장을 맡고 있다.
김선희 교수는 “외상 경험이라는 것이 단지 어제 불이 난 일을 가지고 오늘 불편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만난 한 소년의 예를 들었다.

“한 아이가 학교에서 소방훈련 벨이 울렸는데 꼼짝을 안 했어요. 훈련이었지만 교사는 안전한 곳으로 데리고 가야 했죠. 겁이 난 아인 울고만 있었어요. 그래서 아이의 엄마를 불러서 달래 데리고 나갔어요. 엄마도 아이가 왜 그러는지 몰랐어요. 보통 때는 괜찮다가 벨이 울리면 증상이 반복된다는 것밖에는 아는 게 없었죠.”

이야기는 꽤 길게 이어졌다. 상담을 통해 아이가 회복됐다는 뻔한 결과가 예상됐지만 과정은 뜻밖에 흥미로웠다.

“제일 먼저 아이에게 벨이 울리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그림을 그려보도록 했어요. 건물이 불타는 장면을 그리더라고요. 아주 어렸을 때 불이 난 경험이 있는데 소방훈련 벨이 울림과 동시에 그 기억이 떠오르며 두려움으로 나타났던 거예요. 그래서 물었어요. ‘너는 지금 어디 있어?’ 아이는 불타는 건물 옆에 자기를 그렸어요. ‘너는 여기서 안전해?’ 하고 물으니 그렇지 않대요. ‘네가 안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니 엄마가 오면 된다고 해서 엄마를 그림에 그려 넣도록 했어요. ‘이제는 안전해?’라고 물으니 또 아니래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엄마와 아이가 안전할까?’ 아이는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른 종이를 가지고 와 ‘여기에 엄마와 아이를 옮겨오면 어떨까?’ 제안했더니 좋겠다고 하더군요. 새로운 종이에 아이와 엄마를 그리고 두 종이를 떼어 냈어요. ‘이 그림이 얼마나 떨어져야 안전할지 네가 옮겨봐’라고 했더니 종이를 저 멀리 떨어뜨려 놨어요. 마지막으로 물었어요. ‘여기서 엄마와 아이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니까 그제야 아이가 신나게 웃으며 엄마와 놀았던 재밌는 기억을 그려 넣더군요. 이미 아이는 불이 난 그림은 안중에도 없었어요. 심지어 그림을 뒤집어 놨죠.”


그리는 행위로 각인된 이미지를 바꾸는 치유방법

불안한 기억은 멈춰진 한 순간으로 돌아가 현재의 자신을 옭아맨다. 특정한 일로 압도됐던 경험이 몸에 남아 반응하는 것이다. 이때 몸의 균형을 잡아주거나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에 변화를 주면 현실에서 긴장이 풀어지기도 한다.

김 교수는 또 하나의 예를 들었다.

“교통사고로 트라우마를 겪는 내담자에게 사고 장면을 그려보라고 하면 죽은 사람을 그리지 않아요. 살아 있는 자신을 그리죠. 그림 안에 분명 실마리가 있어요. 20년 전의 사건이라고 해도 성인이 된 오늘 그린 그림에는 안정감이 확보된 요소가 있어요. 사고 현장 주변에 있는 구급차와 응급대원들이 바로 그것이죠. 하지만 내담자는 기억을 사실보다 감정으로 재구성해서 현재의 자신을 꼼짝 못 하게 합니다.”

이때 상담사는 내담자와 눈을 맞추고 잠겨 있는 기억을 풀어 현재를 안전하게 느끼도록 이끈다. ‘힘들었지만 구급차가 와서 지금의 내가 살아 있다’라고 설명해 현재를 인식시키고 불안한 기억을 해결된 기억으로 재구성해주는 것이다. 이때 미술치료는 말로 설명하지 않고 이미지로 접근하기에 상처에 다가서기가 더 쉽다.

“내담자가 빨간색 선을 삐죽삐죽 그렸다고 해서 화가 났다고 해석하지 않아요. ‘지금 본인과 어떤 관련이 있어요?’라고 묻죠. 빨간색은 강렬한 선일 뿐이에요. ‘이 선이 어떻게 변형되면 나에게 유리한 색이 될까?’ 유도해보면 ‘하트 안에 빨강이 담기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해요. 그러면 ‘그렇게 바꿔볼까요?’ 하고 제안하죠. 똑같은 에너지와 힘으로 그렸는데 하트를 그리는 동안은 편안하거든요. 그림은 자기가 선택한 색과 형태, 방식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거예요. 자기 반영을 갖는 것이죠. 내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전환할 힘이나 결정력, 통제력도 자신이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음을 바꾸면 될 것 같아요.’ 혹은 ‘화를 조절해야겠어요.’ 이런 백 마디 말보다 뚜렷하게 자기 행동을 통해서 변화의 결과를 눈으로 확인받았을 때 내담자의 감정은 쉽게 바뀐다.


상실감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함께’의 경험을


미국이나 유럽에서 미술치료의 역사는 50여 년이 넘지만,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이후다. 1992년 한국미술치료학회가 세워지며 전문적으로 미술치료를 가르치는 양성과정이 만들어졌다. 김선희 교수는 대학을 졸업한 1994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에서 예술치료 석사학위를, 레슬리 대학에서 표현치료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심리치료 학문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6살 위 오빠의 영향이 컸다. 중학교 시절 대학생이던 오빠의 책장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라는 책을 보고 ‘사람의 마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심리학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서울여대 교육심리학과에 입학했고, 담당 교수의 소개로 미국에서 열리는 미술치료학회를 접하게 되면서 유학길에 올랐다.

뉴욕에 머물며 병원에서 미술치료사로 활동할 당시 김선희 교수는 큰 사건을 경험한다. 9・11사태다. 시 전체가 공황에 빠졌을 때 미술치료는 큰 빛을 발했다. 실제로 몸을 움직이고 표현하는 것이 심리 안정에 효과적임을 현장에서 느꼈다. 한국에는 2010년에 돌아왔다. 이후에도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나 네팔에 지진 피해가 났을 때 국제 NGO 단체와 함께 현장으로 가 2차 심리치료에 전념하는 등 현장과 끈을 놓지 않았다.

김선희 교수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상실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세월호 참사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등을 경험하며 직・간접 외상에 시달리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배는 떠났어도 물살이 항구까지 밀려오는 것처럼 재난이 지나가도 외상의 파도가 남아 있죠. 우리나라는 세계에 유례없는 분단국가예요. 앞으로 통일 이후를 대비한 심리치료도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변에서 외상 경험으로 괴로움을 겪는 친구나 이웃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김 교수는 ‘들어주기’를 권한다. 신체 접촉이 가능한 가까운 사이라면 잠깐 손을 잡아준다거나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도 좋다고 한다. 손이 닿을 때 감정이 감각적으로 전달돼서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외상에 대한 자가 치유도 가능한지 물었다. 그는 자기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이미지를 가지라고 한다. “큰 충격을 받고 나면 눈동자도 놀라 허공에 머문다”며 “시선을 집중해 무언가를 보면 안정감을 되찾는 데 도움을 준다”고 덧붙였다.

“이때 이미지는 엄마나 자식, 애완견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좋아요. 마치 그 장면에 있는 듯이 편안해지며 몸이 이완되는 효과가 있죠.”

문화예술적 접근의 치료는 사람의 상실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을 새롭게 마주하는 데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다. 심리치료사는 누군가의 상실감을 채워주고 행복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옆에서 함께 걸으며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자다. 김선희 교수는 심리치료에서 ‘상실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소통하며 격려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의 말처럼 ‘함께’의 경험과 의미를 알려주고 서로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 201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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