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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넘어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한 ‘감정 조절’

[special feature] 트라우마 전문 정신분석가 권혜경 박사

“우리 머릿속에는 생존에 몸부림치는 동물의 뇌와 삶을 누릴 줄 아는 인간의 뇌가 있다.
안전에 위협을 느낄 때, 즉 감정에 휘둘리고 압도될 때 동물의 뇌가 깨어난다.
그렇기에 우리가 생존을 넘어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감정 조절 능력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안팎으로 불안하며 생존과 안전이 최대 화두가 되는 이 시대에, 어떻게 감정을 조절하며 나 자신과 이 사회를 인간답게 지킬 수 있을까?”

- 《감정 조절 : 안전하지 않은 사회에서 나를 지켜내는 방법》(을유문화사) 중

사진제공 : 권혜경
《감정 조절》의 저자인 권혜경(46) 박사는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음악치료학으로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뉴욕 맨해튼과 뉴저지에서 심리치료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매년 국내 정신건강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통합적 트라우마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도 8월 초에 귀국해 서울 성모병원에서 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그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그것을 온전히 누리는 능력은 개인의 의지 이전에 그가 속한 사회의 안전문제”라고 진단하고 감정 조절을 할 수 있는 실천적인 방법들을 제시해왔다. 권 박사와 이메일로 이야기를 나눴다.


‘안전하지 않은 사회’가 감정 조절 방해

권혜경 박사는 이화여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치료사 석사학위 과정을 마쳤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음악치료센터를 설립해 교육, 치료, 출판 활동을 했다. 2003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치료 박사과정을 하면서 동시에 정신분석가 훈련을 받았다. 트라우마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심리치료법들을 공부하면서 트라우마 전문 정신분석가가 되었다. 트라우마는 어떤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대하는 개인의 주관적인 반응을 뜻한다. 재난이 발생한 후에 시간이 흘러도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지 못하고 극심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사람을 트라우마 환자라고 이야기한다.

“3년 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직접적인 피해자뿐 아니라 전 국민이 트라우마를 겪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효과적인 트라우마 치료법을 알리기 위해 그해 처음 정신건강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한 언론사가 주최한 프로그램에서 ‘나의 감정 다스리기’를 제목으로 강연했는데, 12만 명이 넘는 분들이 강연 동영상을 보고 연락을 주셨어요. 제가 아는 지식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감정 조절》이란 책도 냈습니다.”


책이 나온 후 많은 심리치료사가 책을 통해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새로운 시각을 접했고 치료에 도움을 받았다고 권 박사에게 연락했다. 이메일을 보낸 이들 중에는 책을 읽고 자신을 이해하고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낀다는 일반인도 있었다.

“많은 연구를 통해 트라우마는 대뇌가 아닌 변연계, 뇌간, 몸에 저장된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대뇌 전두엽의 기능인 언어, 의지, 해석 등의 인지적 사고에 중심을 두는 심리치료는 트라우마 치료에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반면 음악치료, 예술치료는 감정, 비언어적 표현 과정에 초점을 두고 치료 과정에서 반드시 몸을 움직이기 때문에 언어 위주의 심리치료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그는 트라우마를 겪을 때 도움이 되는 요소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주변 사람들의 감정적 지지와 이해이고, 둘째는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처럼 나의 아픔을 누군가 같이 아파해주고 위로해 주면 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반면 내가 아픈데 아무도 나에게 공감해주지 않고 툴툴 털고 일어나라고 강요하면 자신이 아프다는 진실이 왜곡되었다고 느낍니다. 아무도 몰라주는 그 진실을 내가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상처에서 헤어 나오는 게 더 힘들어지죠.”

그는 “주변에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감정적으로 지지해주고, 그 사람이 이해받고 싶은 형태로 이해를 해주고, 그 사람이 말하고 싶어 하는 만큼 이야기하게 하고,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허락해주자”고 조언했다.

“제가 최근 관심을 두는 주제는 개인과 사회의 연결 고리입니다.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은 우리 사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의 정치 상황이 혼란스럽고 많은 국민이 분노와 무력감을 호소하고 있는데, 이런 정치적·사회적·개인적 이슈들을 심리학적인 틀로 풀어내서 혼란스러운 사회현상과 개인의 반응들을 이해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이 있다면 덜 혼란스럽고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음악치료사에서 트라우마 치유 전문가로


음악치료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야다. 음악치료사들은 병원, 학교, 요양원, 교도소, 복지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한다. 음악치료사가 되려면 음악치료학과에서 석사학위 이상을 받고 인턴십을 거쳐야 한다. 음악을 매개로 하므로 음악에 대한 이해와 악기 연주 능력은 필수다.

“음악치료는 치료 받으려는 이유를 진단하고 치료의 목표를 정한 뒤 진행합니다. 대화, 즉흥 연주, 음악과 이미지, 노래 부르기 등을 통해 심리 상태를 탐색하고 해결 방법을 찾습니다. 음악치료는 수동적으로 음악을 듣기만 해도 많은 감정, 기억, 생각들을 촉발시킬 수 있으므로 광범위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권 박사는 음악과 친숙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피아노 외에도 여러 악기를 배웠고 연주도 잘했지만 전공으로 택하지는 않았다.

“대학생 때 참가한 집회에서 누군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시위 학생, 경찰, 시민 모두 함께 부른 기억이 있습니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음악의 힘을 경험하고 음악에 대해 좀 더 공부해보고 싶었습니다. 우연히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것이 나의 운명이구나 직감했지요.”

권 박사는 음악치료사로 심리치료 분야에 발을 디뎠지만 정신분석가 과정을 훈련받으면서 현재는 음악치료가 아닌 심리치료와 정신분석을 주로 하고 있다.

그는 9년째 뉴욕의 사무실에서 일주일에 5일은 내담자를 만나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외국인과 상담하면서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쌓이기도 한다.

“일하면서 느끼는 감동의 순간이 정말 많아요. 모국어로 상담을 받고 싶다면서 멀리서 저를 찾아오는 재미 동포도 있고요. 영어 때문에 재미있는 일이 생기기도 해요. 한번은 내담자가 pawn shop(전당포)이라고 한 것을 저는 porn shop(포르노 숍)으로 잘못 알아듣고 오해해서 얘기한 적이 있어요. 서로 뭐가 잘못됐는지 알고 한참 웃었어요. 내담자는 작가였는데, 이 경험을 미국 허핑턴포스트에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권 박사는 ‘공부벌레’다. 틈날 때마다 효과적인 심리치료 방법에 대한 훈련과 강의를 찾아다닌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어 단어는 ‘affliction’이다. 사전적 의미는 고통이지만, 이 단어는 고통을 경험하고 극복한 결과로 얻어지는 ‘혜안(지혜로운 눈)’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트라우마를 잘 이겨낸 사람들에게 마치 포상처럼 주어지는 것이 ‘혜안’이 아닐까 생각했다.

권혜경 박사가 제안하는 감정 조절 방법



심호흡은 가장 쉽게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이다.

날숨을 더 길게 내쉬는 심호흡법은 부교감신경을 작동시키기 때문에 모든 것을 천천히 가라앉게 해준다.


상상하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편안한 장소 떠올리기, 나를 다 받아줄 것 같은 포근한 대상 상상하기,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강한 존재 상상하기, 나에게 조언을 줄 수 있는 현명한 존재 상상하기가 그 예이다.

우리 뇌는 상상하는 것과 실제 일어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상상으로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그것이 실제 경험이 된다.


내 몸속에 있는 행복 호르몬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행복 호르몬으로 옥시토신, 도파민, 세로토닌, 엔도르핀이 있다.

옥시토신은 포옹하거나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분비된다. 도파민은 뭔가를 성취했을 때 나온다. 어떤 일을 할 때 큰 목표를 세우기보다 세부 목표를 여러 단계로 나눠서 매번 작은 목표를 달성하고 이를 성취하면 도파민이 더 많이 분비된다.

세로토닌은 ‘내가 중요하고 특별하다’고 느낄 때, 자신을 존중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때 나온다. 엔도르핀은 우리가 울고 웃을 때 분비된다. 코미디, 연극, 영화, 독서 등을 통해 감정을 해소하는 경험을 할 때 나온다.
  • 2017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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