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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을 신명나게 하는 리더는 ‘경청하는 사람’

[special feature] 한국형 리더십 연구자 박현모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글 : 임현선 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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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글을 창제해 반포한 세종대왕의 탄생 620주년이 되는 해이다. 1392년 개국해 519년간 역사를 이은 조선왕조의 임금은 모두 27명이었다. 조선의 제4대 임금으로 즉위해 32년간 통치한 세종대왕은 현재도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왕으로 꼽힌다. 박현모(52)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은 “세종대왕은 후대 왕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왕 중의 왕’이었다”며 “지금도 누군가 ‘정치를, 경영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세종처럼 하십시오’라고 말한다”고 했다.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박현모 소장의 20대 시절 관심은 독일 학자 막스 베버의 정치사상이었다. 그는 석사 과정까지 막스 베버의 이론을 연구했으나 박사 과정부터 한국 정치사상으로 연구 분야를 옮겨 성왕론(聖王論)을 주창한 정조의 리더십을 연구했다. 연구 과정에서 조선 왕들의 롤모델이 세종대왕임을 알게 되었고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목표를 성취하는 정치가’로서 세종의 면모를 새롭게 발견했다. 그는 2005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세종실록을 강의하고 있으며, 단행본 《세종처럼》 《세종의 수성 리더십》 《세종의 적솔력》 등을 냈다. 현재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과 (사)한국형리더십개발원 대표를 맡고 있다.


‘정치가로서 세종’은 어떤 사람이었나?

“지적 능력(intelligence)과 기술(skill)이 뛰어난 지도자였다.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과 그들의 능력을 활용하는 기술이 탁월했다. 늘 경청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소통하려고 애썼고 왕은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존재라고 믿고 실천에 옮겼다. 세종은 즉위하자마자 신하들에게 ‘함께 의논하자’고 제안하고 재위 기간에는 ‘국정대토론’의 장을 열어 신하들이 말과 아이디어를 쏟아내게 했다. 그는 설정한 목표에 왜 도달해야 하는지,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조만간 어떤 파국을 맞게 되는지를 상세하고 명확하게 일깨우면서 신하들을 독려했다. 많은 이들이 학교에서 세종의 업적을 배우지만 그가 어떻게 반대자들을 제압하고 목표를 성취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세종의 리더십 프로세스에 관심을 둔 계기였다.”


세종대왕이 남긴 최대 업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백성들을 대하는 세종의 태도는 ‘여민(with the people)’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백성 위에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백성 옆에서 배려하고 방향을 알려주면서 이끌어가는 지도자였다. 글을 읽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는 백성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글을 만들어 배포했고 해시계, 측우기 등 과학기기의 발명과 보급을 통해 생활의 편리를 도왔다. 삶의 질을 높인 것이다. 해시계는 백성들이 스스로 시간을 계획하고 주도적으로 살 수 있게 하는 수단이 되었다.”


정조가 주창한 성왕론은 어떤 내용인가?

“성왕론에 따르면 왕은 내성외왕(內聖外王), 즉 내적으로는 현명한 지식인이고 외적으로는 결정권자로서 집행 성과를 내야 하는 존재다. 정조는 배움을 넘어서 성과를 내는 지도자가 되길 원했다. 그는 세종대왕을 성왕의 롤모델로 삼고 매일 세종어록을 되씹었다. 강력한 왕권이 있어야 백성들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간다고 믿었던 정조는 문(文) 분야에서는 세종을, 무(武) 분야에서는 세조를 닮으려고 했다. 정조의 관심을 따라가면서 영조, 태종, 세종, 세조의 리더십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내 이름 앞에 한국형 리더십 연구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나는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지도자의 리더십에 관심이 많다. 김구, 박정희 등 현대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도 내 연구 주제다.”


역사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

“전남 함평이 고향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마을에서 서당을 운영했다. 훈장 선생님이셨다. 어릴 때부터 한학을 공부해 고서와 친숙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배우는 게 역사 속 인물 이야기였으니까. 대학에서 서양 학자와 이론들을 연구할 때는 어린 시절 배운 내용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서른 살 무렵에 한국 정치사상으로 연구 주제를 바꾸면서 비로소 나에게 맞는 옷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한국형 리더십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한국형 리더십은 한국인을 신명나게 하는 리더십이다. 예로부터 한국인은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지도자를 싫어했다. 사랑받는 지도자의 첫째 조건은 경청하는 태도다. 세종은 지적으로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신하와 백성 앞에서 늘 ‘나는 잘 모른다’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인내심을 갖고 상대의 말을 들었지만 내용의 진위를 분별하려고 애썼다. 일단 누군가에게 일을 맡겼으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의심하지 않았다. 둘째 조건은 친밀감이다. 사람들은 이익보다는 친밀감에 마음의 문을 연다. 셋째 조건은 솔선수범이다. 세종은 자주 민생 현장을 찾아 애로 사항을 듣고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세종실록》에는 ‘극심한 가뭄 현장에서 농민들을 만났을 때, 마음이 너무 아파 점심을 거르고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넷째는 지식과 정보에 밝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주변 강대국의 상황에 민감했다. 지도자는 수시로 변화하는 외교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늘 정보를 수집하고 종합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선장 역할을 잘해야 한다. 세종은 재임 당시 전쟁을 막기 위해 외교에 공을 많이 들였다.”


서구의 리더십과 한국형 리더십에 차이가 있다면?

“막스 베버의 연구 모델은 오랫동안 분열된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라는 철혈 재상이었다. 베버의 연구 주제는 직업으로서 정치가의 책임 문제였다. 베버는 정치인들은 의도가 선한가 악한가와 관계없이 무조건 좋은 결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형 리더십과는 큰 차이가 있는 부분이다. 조선의 정치는 공론정치, 숙의정치를 내걸고 결과 자체보다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는 것을 중시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세종실록》 강의를 꾸준히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이 수강생으로 참여하나?

“수강생들의 직업과 연령이 매우 다양하다. 교사, 건축가 등 전문직 종사자나 은퇴한 분들도 있지만 어린 학생과 주부들도 많다. 해마다 12~20주 과정으로 진행하며 2500명씩 강의에 참여해왔다. 올해도 5월에 서울 중구 광화문 근처에서 ‘세종의 인재 쓰기’를 주제로 강연할 계획이다.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나는 수강생들이 그들의 관점으로 실록을 읽고 그 안에서 지혜를 찾길 바란다. 정치, 사회가 혼란할수록 실록 읽기를 더 권하게 된다. 그 안에 성공 사례, 실패 사례가 다 들어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박 소장의 이야기를 들으면 세종대왕은 인간적인 흠이 없는 완벽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세종대왕이 인간적으로 완벽했다기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지도자의 기준을 잘 맞춘 것으로 생각한다. 머리가 좋은 분이었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세종이라면’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요즘 20대 청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까?

“20대 학생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은데, 많은 이들이 불확실성을 가장 힘들어한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낳고 자기 확신을 흔들고 좌절감에 빠지게 한다. 자기 리더십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밖에서 찾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면 답도 자신에게 있다. 20대에게 《세종실록》을 함께 읽자고 제안하고 싶다. 세종도 38세가 될 때까지 위기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지혜가 실록 안에 들어 있다. 읽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지혜다.”

한국형 리더십의 조건

①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하기 위한 첫걸음은 잘 들어주는 것이다.
②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감성적인 접근에 능해야 한다.
③ 민생 현장을 늘 가까이하면서 백성 옆에서 솔선수범한다.
④ 주변국들의 정세를 파악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지식과 정보에 밝아야 한다.


세종대왕의 리더십 프로세스

광문(廣問) : 널리 물어보기
서사(徐思) : 신중하게 생각하기
정구(精究) : 정밀하게 실행 가능한 대안 만들기
전치(專治) : 전념을 다해 다스리기, 온갖 반대에도 목표 달성
  • 201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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