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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마을에 사회적기업 세운 염색장 며느리

[special feature] 5대째 ‘쪽 염색’ 잇는 최경자 명하햇골 대표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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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도체에 근무할 때였어요. 고향을 찾았다 친구가 운영하는 호프집에 놀러갔죠. 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집에서 공부나 하지 이런 데는 왜 왔어?’라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상고머리에 선머슴 같은 제 차림 때문에 남자 고등학생인 줄 알았나 봐요. 그렇게 남편을 만났고, 한 달 만에 이곳으로 왔습니다. ‘살아보고 결혼하자’는 생각으로 이 마을에 들어와 그때부터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지요.”

사진제공 : 명하햇골
전남 나주시 문평면 북동리, 39가구가 사는 작은 산골마을에 사회적기업을 세운 최경자 명하햇골 대표를 만났다. 6남매와 함께 사는 그의 집은 노인들만 있는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 존재다. 그의 시아버지는 중요무형문화재 염색장이었던 고 윤병운 선생. 2010년 시아버지 타계 후 염색장 전수교육조교인 남편 윤대중씨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대대로 쪽 농사를 지어왔고, 쪽 염색을 생업으로 삼는 집이 많았다고 합니다. 영산강 범람으로 땅이 비옥해 쪽 재배에 적당하고, 바다가 가까워 매염제로 쓸 굴 껍데기를 구하기 쉬웠으니까요. 하지만 1950년 이후 그 맥이 끊겼습니다. 쪽 씨앗은 1년만 지나도 발아율이 현저히 떨어지는데, 전쟁 통이라 농사를 짓지 못하는 바람에 쪽이 사라져버린 거지요. 1974년 일본에서 들여온 쪽 씨앗을 발아시켜 다시 재배하면서 쪽 염색을 되살린 게 시아버지입니다.”


‘진한 청색에 보랏빛 섞인 오묘한 색’에 감탄

자유분방하게 생활하다 1998년 파평 윤씨 집안의 며느리가 된 최경자씨는 논농사, 밭농사, 쪽농사 가리지 않고 억척스럽게 일했다. 어릴 때부터 탁구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덤비면 안 될 게 없다’는 정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농사일도 금방 배워 ‘어떻게 기계로 심는 것보다 손이 더 빠르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시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쪽 염색 과정을 지켜보고 작업일지도 썼다. 염색 과정은 하나하나 공이 많이 들어가고 까다로웠다. 안방에 항아리들을 들여놓고 발효시킬 때면 시아버지가 문도 못 열어보게 했다. 흰색 천이 파랗게 물들어가는 게 놀랍고 신기했다. 시아버지는 2001년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자 논농사를 접고 쪽 재배와 염색에 전념했다. 그때부터 집안 살림이 더욱 어려워졌다.

“옛 방식 그대로를 고집하다 보니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질 수밖에 없지만 그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쪽 염색이라고 모두 전통 방식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굴 껍데기를 태워 만든 석회 가루와 콩대를 태운 재로 만든 잿물 대신 화학약품을 염매제로 쓰고, 30~40일 발효 과정을 거치는 대신 가성소다를 넣어 끊이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는 경우도 많죠. 하지만 시아버지나 남편은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옛 방식을 그대로 지켰을 때 나오는 색감은 다르거든요.”

장인이 묵묵히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뒷받침하면서 새 활로를 찾은 게 최경자씨였다. 쪽 염색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2008년에는 농촌진흥청 농촌체험교육농장으로 지정받았다. 2009년에는 농촌관광 테마마을, 2010년에는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되면서 이 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났다. 쪽물로 스카프나 손수건을 물들이는 체험을 해본 사람들은 ‘진한 청색에 보랏빛이 섞인 오묘한 색’이라면서 처음 본 쪽빛에 감탄한다. 유럽, 호주, 일본 등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최경자씨는 2012년 명하햇골을 설립해 2014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나로 인해 100명이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시아버지의 뜻을 잇기 위해서였다. 쪽 재배부터 쪽으로 염색한 천을 활용해 옷과 가방, 열쇠고리, 지갑 등 다양한 제품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 축제 등 모든 과정이 주민들과 함께 이루어지고 수익도 골고루 나눈다.

“시아버지는 ‘쪽은 농사다’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습니다. 농사짓는 방법에 따라 쪽물의 빛깔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제초제를 쓰지 않고 퇴비를 많이 넣어야 제대로 된 색깔이 나옵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이렇게 재배한 쪽만 사용하지요.”


쪽 수확 후 쉬고 있는 땅에 양파, 깻잎, 상추, 돼지감자를 재배해 소득을 늘릴 수 있는 방안도 찾았다. 2012년부터 매년 10월에 열어온 명하마을쪽빛축제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염색 체험뿐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 즐길 거리를 마련했습니다. 쪽 패션쇼와 전통놀이, 공연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인간문화재 분들을 모셔 시연회도 엽니다. ‘이렇게 뜨거운 호응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라면서 ‘이 마을에 이사올랍니다’라는 인간문화재 분도 계세요. 5회째인 2016년 축제 기간에는 2000명이 이 산골마을을 찾았습니다.”

그는 축제가 ‘외부 사람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마음을 썼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거치적거릴까봐’라면서 마을 어르신들이 선뜻 참여하지 못하시더라고요. ‘와서 노시기만 해’라고 설득했죠. 축제 전날 우리끼리 팝콘과 오징어를 먹으면서 영화를 보는 전야제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마을 분들을 특별 초청했습니다. 오랜만에 옛 친구들을 만나니 늦도록 축제장을 떠나지 않으시더라고요.”

염색한 천을 말리는 동안 마을 어르신들의 집을 찾아가 옛 이야기를 듣는 ‘마을투어’도 인기다.

“예전에는 ‘배냇소’라고 소를 대신 길러주고 양육비를 받는 풍속이 있었어요. 얼마나 믿었으면 소 한 마리를 선뜻 맡겼겠어요? 서로 신뢰하고 나눔을 실천했던 옛사람의 정신에서 배우는 게 많습니다. 새마을운동 때는 흙벽돌 위에 시멘트를 바르고, 친환경이 대두되니 다시 돌담으로 바꾼 담벼락의 역사도 재미있죠.”

마을 이장도 맡고 있는 최경자씨는 마을에서 군림하는 위치이기보다는 어르신들을 모시는 입장이라고 말한다.

“강연을 가면 ‘시부모님 모셨던 분들, 손들어 봐요’라고 말해요. 그리고 ‘저분들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달라’고 하죠. 시부모님과 함께 살려 하면 무조건 맞추고 받아들여야 해요. 농사일이나 살림이나 시어머니와 저의 방식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래도 시어머니가 온전히 주도권을 행사하실 수 있게 했죠. 그런 면에서 내가 겁나게 지혜로운 것 같아요. 마을 일도 마찬가지예요. 마을 어르신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실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드는 게 제가 하는 일입니다.”


2016년 나주시 사회적경제 최우수 기업에 선정


촌부로 바쁘게 살았던 그는 방송대와 대학원에서 의상학을 전공하면서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두 시간 쪽잠을 자면서도 새롭게 도전하는 즐거움이 컸다. ‘명하햇골은 2014년 농림축산식품부 6차산업화 우수 사례 경진대회에서 동상을 받고, 2016년 나주시 사회적경제 최우수 기업으로 선정됐다. ‘윤씨 집안의 깊고 짙은 색’이라는 뜻의 ‘윤담’이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쪽물을 활용한 제품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쪽 비누에 이어 쪽 샴푸 개발도 완료했어요. 워낙 귀하게 얻어지는 쪽물이라 고가 상품이지요. 남편이 재료를 대주는 덕분에 사업을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쪽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주거든요. 고가로 팔든가 아니면 아예 거저 주기도 합니다. 다문화 합창단에 우리가 쪽 염색한 옷을 입히고, 요양병원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에코백을 만들어드리기도 했지요.”

전남사회적기업협의회 회장인 그는 사회적기업을 하는 젊은 친구들과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우리 막둥이가 그러더라고요. ‘인생 뭐 있어. 재미있게 살면 되지’라고. 남편이 5대째 쪽 염색의 맥을 잇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더 멋지게 발전시켜 주리라 믿어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재미있게 사는 비결’을 엿보는 듯했다.
  • 201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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