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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한 뒷맛으로 여성과 외국인에게 인기

[special feature] 막걸리 100년 전통 잇는 김동교 신평양조장 대표

글·사진 : 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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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양조장은 늘 잔치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손님이 줄을 이었고 활기찼죠. 특히 평상 위에 몽글몽글하게 펴 놨던 술밥이 기억나요. 양조장 마당에서 뛰놀며 빵처럼 먹었지요. 막걸리를 처음 마신 건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명절 음복주로 마셨는데 달콤해서 한 모금 쭉 들이켜고는 졸려서 그대로 쓰러졌던 기억이 있어요.”

사진제공 : 신평양조장
100년 전통의 신평양조장 김동교(44) 대표에게 양조장은 고향이면서 기억이 머무는 집이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을 다녔던 그는 2009년 막걸리 열풍이 일 때 전통주 산업의 가능성을 보고 과감히 회사를 관뒀다. 신평양조장은 1933년 그의 조부인 고 김순식 선생이 시작해 부친 김용세(74) 2대 장인을 거쳐 김동교 대표가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청와대 만찬주가 된 백련막걸리

신평양조장 초기 모습.
신평양조장은 충청남도 당진군 신평면 금천리에 위치한다. 신평은 말 그대로 ‘새로 생겨난 평야’로 토지가 비옥해 품질 좋은 쌀이 나기로 유명한 곡창지대다. 금천리는 물이 풍부해 햇볕에 금빛처럼 반짝인다는 뜻을 품고 있으니, 이곳은 술 빚기에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100년 넘은 양조장 고택 안에는 창업 당시 할아버지가 썼던 커다란 항아리 40~50기가 남아 있다. 여기저기 깨진 부분을 철심으로 꿰매고 붙인 술항아리는 3대를 지나며 맛과 향으로 오랜 역사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신평양조장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대표 브랜드인 백련막걸리가 2009년 청와대 만찬주로 선정되면서다. 백련막걸리는 김용세 장인이 수년간 연구해 만든 술로, 찻잎 우리듯 담금주에 연꽃잎을 발효시켜 특유의 은은한 향을 입혔다.

“연꽃잎은 해독작용과 이뇨작용, 항산화 효과뿐만 아니라 정화작용이 뛰어나서 숙취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어요. 연잎향이 막걸리의 텁텁함을 잡아줘 뒷맛이 깔끔하니까 여성이나 외국인들이 좋아하죠.”

1933년 신평양조장이 문을 열 때부터 사용했던 술항아리.
오랜 숙련 과정이 필요한 막걸리 제조를 부친 김용세 장인이 주도했다면, 김동교 대표는 막걸리에 젊은 이미지를 입히는 일에 주력했다. 그는 고급화 전략으로 과감하게 막걸리 용기를 플라스틱에서 유리로 바꾸고 로고를 비롯한 패키지 디자인을 새롭게 입혔다. 아저씨들이나 마시는 막걸리 이미지에서 벗어나 젊은 층이 선호하는 주류로 거듭나기 위함이다.

신평양조장이 만드는 막걸리는 총 네 가지다. 페트병에 담은 대중적인 가격의 백련막걸리 ‘스노우’와 유리병에 담긴 ‘미스티’ 생막걸리와 살균 막걸리, 최고급 해나루쌀을 사용해 만든 ‘백련맑은술’이다. 일반적인 양조장이 막걸리를 만들 때 kg당 800원대의 수입 쌀이나 정부미를 쓰는 반면, 신평양조장은 kg당 1400원대인 당진 쌀만 사용한다. 백련맑은술은 해나루쌀만 쓰는데 2000원이 훨씬 넘는다. 게다가 유리병은 페트병에 비해 원가가 3배나 비싸다.

“양조장을 맡아서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현장을 돌아다니며 보니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당시 막걸리 열풍에 힘입어 큰 업체가 한 병을 사면 하나를 더 주는 이벤트를 벌이는데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하면 서비스 자체를 할 수가 없어요. 경쟁에서 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당시 연 매출이 2억~3억원이었는데, 이 정도로는 수익이 날 수 없다 생각했어요. 앞으로 10년 동안 내가 어떻게, 얼마나 키울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전통의 보존과 현대화의 접점을 찾아 시장 개척

신평양조장에서 직원들이 찐밥을 섞어 술을 빚고 있다.
김 대표는 양조장 사업에 뛰어들고 1년 동안 막걸리 납품을 다니며 현장 경험을 쌓았다. 또 전통주 교육기관에 다니며 전통주 제조와 관련한 기본 개념을 착실하게 배워 지금의 기틀을 다졌다.

“제조는 직원들이 합니다. 양조장은 술이 익는 온도가 중요해요. 온도 기록기를 달아서 매일 점검해요. 품질을 관리하고 안정화하기 위해 모든 과정을 시스템화했죠.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못 해요. 대중적으로는 장인이고 명인이고 하면 골방에 앉아 있는 것만 생각하지만 현실에서 그렇게 하면 발전이 없어요. 실행은 직원이 하지만 관리 감독이 매우 중요하지요.”

품질은 안정화시켰지만 막걸리 자체만으로는 승부를 걸기 힘들었다. 그는 백련막걸리가 젊은 층과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점을 공략했다. 1년여의 준비 끝에 소비자 유동 인구가 많은 강남 일대에 양조장 직영 막걸리 전문점 2곳을 열었다.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트렌드를 분석하고 신제품 개발을 위한 콘셉트를 잡았던 일을 했기 때문에 전문성에서는 남달랐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직영점 오픈 이후 양조장 연매출은 처음 2억원대에서 7억원대로 올랐고, 직영점에서의 판매 수익도 연 20억원을 넘겼다.

부친인 김용세 장인에게 술 빚는 법을 배우는 김동교 대표(오른쪽).
“매출 규모로 따지면 중소기업과 비교할 수 없지만, 가업이기 때문에 붙잡아야 하고 살려야 했죠. 회사를 관뒀으니까 비장한 각오로 차근차근 준비해야 했어요. 초기에 엄청나게 많은 일을 했는데 지금 다시 하라 그러면 못 할 것 같아요.”

이러한 일련의 변화로 백련막걸리는 2012년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 ‘살균막걸리’ 부문 대상, 2013년 런던주류품평회 브론즈 메달, 2013년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 ‘약주’ 부문 장려상 등을 수상했다. 또 2014년에는 ‘백련맑은술’이 대기업 사장단 만찬주로 선정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전통주 시장은 해마다 줄고 있습니다. 앞으로 반등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고요.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을 쳐야 하는 입장이죠. 아버지가 만든 제품을 지키고 후대에 전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훨씬 뛰어난 능력이 필요하죠. 앞으로 제가 해야 할 일들이에요”


그는 이제 아버지 이후의 시대를 고민한다. 지난 2015년부터는 양조장 체험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지정되며 미곡 창고를 개조해 체험 장을 꾸몄다. 앞으로 농가와 계약 재배를 해서 쌀로 술도 빚고 카스텔라나 앙금빵 등 다양한 쌀 가공식품도 만들 계획이다. 이미 농가와 관련 컨소시엄도 맺은 상태다. 아직까지 아이디어도 많고 하고 싶은 것이 많다.

올해는 뜻밖의 쾌거도 이뤘다. 신평양조장이 당진에서 5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기지시 줄다리기 축제의 의례주를 맡았다. 기지시 줄다리기는 시장의 번성과 지역 대동을 비는 기원제로, 중요무형문화재이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다. 김 대표는 “마을의 큰일에 상징적인 역할을 하게 된 데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한껏 들뜬 표정을 지었다. 이번 축제를 위해 옛 어머니들이 전통주 담그는 기법을 그대로 살려 술을 빚을 계획이다.

“장인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에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 지금처럼 활발하게 사업을 못 하게 되면 장인처럼 할 수도 있겠죠. 전통을 잇는다고 하면 구식이라 편견을 가질 수 있는데, 전통이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보존’의 대상일 뿐이에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소통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살아 있는 전통이지요.”
  • 201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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