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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세월을 품은 물건들이 숨 쉬는 곳

앤티크 소품 갤러리 카페 ‘걸리버 여행기’ 만든 최창완

글·사진 : 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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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물건에도 사연은 있다. 쓸모를 다해 버려지고 낡은 물건들은 긴 세월을 지나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남한강 변에 자리한 앤티크 소품 갤러리 겸 카페 ‘걸리버 여행기’는 독특한 이름만큼이나 사연 많은 여행객이 머무르고 있다. 100년 넘은 재봉틀과 깃털 달린 펜, 200년 세월의 시계, 130년 된 금전등록기 등이 그들이다. 세계를 떠돌다 여기에 정착한 ‘여행객’에게 특별한 사연을 만들어 주는 이가 카페 주인장 최창완(63)씨다.

사진제공 : 걸리버 여행기
세계 곳곳에서 수집한 골동품 500여 종 전시

동물을 형상화한 *정크아트와 앤티크 소품이 어우러진 공간 ‘걸리버 여행기’에 들어서면 낯선 세계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하다. 천장에는 붉은색 열기구가 떠 있고 그 아래 빅토리아 시대의 고풍스러운 가구가 테이블을 대신한다. 서부 개척시대의 오일 램프가 불을 밝히고 1940년대식 주크박스에서는 옛 유행가가 공간을 휘감으며 흘러 나온다. 모두 최창완씨가 세계 곳곳을 돌며 수집한 골동품으로 종류만 500여 종에 달한다.

“앤티크의 정의는 100여 년 전 영국 빅토리아 여왕 재위 시절에 나온 물건을 기준으로 합니다. 1960, 70년대의 물건은 빈티지라 부르지요. 요즘 사람들은 골동품에 대한 개념 자체를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낡고 오래됐거나 비싸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인들은 코카콜라 병뚜껑조차도 의미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지요.”

카페에 온 손님들은 대부분 ‘무엇이 제일 비싼가’ ‘물건 가격이 얼마인가’를 질문한다. 그는 가격보다 소중한 물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은밀하게 거래되는 비싼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물건은 돈을 주고 사면 그만이지만 누군가 제일 아끼고 소중하게 간직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최창완씨의 꿈은 비행기 조종사였다.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했지만 예기치 않게 운동 중 코뼈를 다쳐 꿈을 접어야 했다. 이후 미대 출신 누나에게 그림을 배웠고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연구원으로 일하며 본격적인 산업디자인의 세계로 들어섰다.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며 틈틈이 외국 출장 중에 앤티크 소품을 수집했다. 그의 인생 모토는 ‘디자인 이즈 라이프, 라이프 이즈 디자인(Design is life, life is design)’이다. 물건 하나도 모두 몇 백 년의 노하우가 쌓여서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그에게 앤티크 수집은 디자인의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으로, 창조의 한 과정이었다.

그는 20대에 경험한 제품 디자이너의 경력을 바탕으로 1984년부터 본격적으로 가구사업에 뛰어들었다. 1987년에는 인테리어 공방 카펜터스를 운영하며 디자인 생활소품을 만들었고, 1994년부터는 청담동과 이태원 등지에서 앤티크 가게를 운영했다. 이태원의 고가구 거리를 만든 초기 멤버이기도 하다.

그가 수집하는 골동품의 범위는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생활용품 전반에 걸쳐 있다. 에디슨이 만든 축음기와 벨의 전화기, 사진 발명 초기의 카메라 등 근대 역사와 디자인의 흐름이 담긴 의미 있는 물건들이다.

“수집하다 보면 나라별 문화의 차이를 알 수 있어요. 대패만 봐도 그래요. 우리나라 것은 잡아당기는 형식이지만 영국 것은 밀어내는 방식에 손잡이가 따로 달려 있습니다. 일종의 터보 기능을 하는 것이지요.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점이 여기서 나온다고 봐요. 개척 정신이지요. 소극적으로 안으로 당기지 않고 바깥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이런 변화가 문화권의 차이로 디자인에 나타나지요.”

물건의 가치는 삶의 흐름 속에서 변화되어온 역사에 있다. 최창완 작가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은 아버지가 썼던 안경과 시계다.
그가 말하는 단순하면서 실용적인 디자인은 미국 개척시대에 생산된 물건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다리가 세 개인 의자가 대표적이다. 최소의 재료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원조다. 이러한 관심은 1990년대 초반 인테리어 공방 카펜터스를 운영할 때 진가를 발휘했다.

“사업차 일본에 갔는데 길을 걷다 맘에 드는 시계를 발견했어요. 숫자가 없고 원형 프레임에 바늘이 움직이고 추가 달려 있었죠. 화려한 장식도 없고 단순한 디자인에 추가 하나 달린 것이 멋져 보이더라고요. 그 디자인에 영감을 얻어 새롭게 사각 프레임에 바늘을 넣고 둥근 나무 추를 달아서 제작해보았습니다.”

이 디자인은 당시 젊은 주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판매 보름 만에 주문이 쇄도해 자고 나면 돈이 불어나 있을 정도였다. 추억에 젖어들 듯 지난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생활 소품에 대한 관심은 자동차에서도 각별하게 나타났다. 그가 타고 다니는 차는 메르세데스벤츠 1996년식으로 20년도 더 됐다. 1945년형 모리스 밴, 1976년형 폴크스바겐 비틀 카브리오, 1976년형 벤츠 200, 1980년형 캐딜락 드빌, 1984년형 캐딜락 플리트우드 리무진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수집 후 되팔고도 현재 남아 있는 차가 10여 종이다. 오래된 물건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에도 종종 쓰였다. 최근에는 1940년대 광복 전후 이승만 대통령이 이화정을 나오는 장면을 촬영하는 데 사용할 자동차를 찾는다는 소식에 그가 가진 1949년식 미국 시보레사의 폰티아 차를 대여해 주기도 했다. 당시 모델과 똑같은 물건이었다.


정크아트 작가로 인생 2막을 열다

카페에 진열된 금전등록기와 옛 카메라.
환갑을 넘기면서 최창완씨는 수집가에서 작가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어느 날 트럭을 몰고 동네 어귀를 도는데 고물상에 버려진 물건들이 보였어요. 폐기된 철들이 마치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쓰임을 다하고 버려져 부러지고 긁혀 색이 바래고 녹슨 모습이 말이에요.”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몰입하며 카페 운영은 디자인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한 막내 아들 최성우(25)씨에게 맡겼다. 아내인 강정희(61)씨의 응원도 한몫했다. 폐철은 그의 손을 거쳐 친근하면서도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강아지나 소, 양 등의 동물로 재창조되었다. 인위적으로 자르거나 색을 입히지 않고 그대로의 모양을 살려 제 짝을 찾아주듯 철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지금까지 110여 점을 만들었다. 지난 2016년에는 한국환경공단에서 주최한 대한민국 환경사랑 공모전 정크아트 부문에서 은상을 받았다.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양평 인근에 있는 세미원에서 그룹전을 갖는 등 전시도 이어가고 있다.

“철은 세상에 나와 많은 일을 합니다. 무언가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사용되다가 쓸모를 다하고 버려지며 햇볕에 색이 바래고 긁히며 고철이 되지요. 녹슨 철은 그때부터 새로운 삶, ‘고물의 삶’을 살아갑니다. 저울의 무게만큼 ‘철든 삶’을 시작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들을 그러모아 조합해줄 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작품은 시간이 만든 작품들이지요.”

‘걸리버 여행기’에는 100년의 세월이 머문다. 물건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카페의 조명 아래 다시 살아 숨 쉬고 있다. 고철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에서 애틋함이 느껴졌다.

* 정크아트(Junk Art) : 일상생활에서 나온 부산물인 잡동사니 같은 폐품을 소재로 제작한 미술 작품.
  • 2017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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