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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걱정 없이 계속 살 수 있는 동네를 만듭니다

이재준 새동네연구소장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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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네에서 성장해 같은 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직장을 다니는 철수와 영희. 철수는 풍족하게 살면서 돈을 모을 수 있지만, 영희는 근검절약하면서도 불안하게 생활해야 한다. 철수는 물려받은 집이 있지만, 영희는 집이 없기 때문이다. 치솟는 전월세 가격에 불안해하던 영희들이 모여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볼 수는 없을까? 동화와도 같은 이런 희망을 바탕으로 협동조합이 출범한다. 협동조합 ‘새동네’ 창립을 준비하고 있는 이재준 새동네연구소장을 만났다. 그는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새로운 동네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안을 찾아왔다.

사진제공 : 이재준
서울시 400만 가구 중 60%가 세입자

“서울시의 400만 가구 중 60%가 전세 혹은 월세로 사는 세입자라고 합니다. 하늘 모르고 올라가는 전월세 가격 때문에 집을 옮기거나 서울을 떠나야 하는 등 주거 불안정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죠. 공공임대아파트나 행복주택 등 국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구는 이 중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투기 수단이 되어버린 집을 삶의 공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이재준 소장은 2002년부터 건축전시 기획자로 활동해왔다. 건축가 승효상이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을 때 건축전시를 도운 것을 시작으로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의 전시 준비에도 참여해왔다. 2014년 1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서울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즐거운 나의 집’ 전시도 기획했다. 유년 시절을 보냈던 기억의 집, 현재 살고 있는 집, 살아보고 싶은 꿈속의 집을 모두 떠올리며 ‘집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전시였다. 그는 “건축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우리 주거문화와 이를 둘러싼 시스템을 다시 돌아보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가 꿈꾸던 대안은 김범상 글린트(전시기획업체) 대표의 투자로 현실화할 수 있었다.

‘가좌관 330’.
이들이 꿈꾸던 첫 번째 집은 2013년 11월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 330번지에 들어섰다. 홍제천과 안산, 궁동공원과 가깝고, 명지대에서 도보로 10분, 신촌까지는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집이다. ‘가좌 330’이라고 이름 붙인 이 다세대 주택에는 40㎡ 규모 4가구, 60㎡와 80㎡ 규모 1가구씩 총 6가구가 살고 있다. 40㎡는 방 둘, 60㎡는 방 셋, 80㎡는 방이 네 개여서 1인가구, 신혼부부, 아이들을 키우는 집 등 가족구조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건축가가 설계한 이 집은 독특한 디자인과 시공 수준 등 집 장수들이 임대수익만 바라보고 지은 집들과는 달랐다. 무엇보다 세입자들이 주거 불안 없이 살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임대 가격이 주변 시세보다 낮을 뿐 아니라 원하는 만큼 계속 눌러 살 수 있기 때문이다. 2년마다 재계약할 때 기존 입주자에게 우선권을 주며, 임대료는 5% 이상 올리지 않는다는 조건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월세의 10%씩을 적립해 10년 이상 살고 나면 적립금으로 월세를 대신할 수 있다는 점도 독특하다. 2014년에는 ‘가좌 330’ 바로 옆에 ‘가좌관 330’이 들어섰다. 2층과 3층에는 9m의 긴 거실 겸 주방, 4층에는 복층 형식의 다락이 들어서는 등 재미있는 공간이 눈길을 끄는 집이다. 현재는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결성된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에 장기임대하고 있다. ‘가좌 330’과 ‘가좌관 330’ 사이에는 주민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마당이 생겼다.


주거지역을 진정한 삶의 공간으로

서울 남가좌동에 들어선 새동네 1호점인 ‘가좌 330’. 방마다 2개 이상의 창문이 달려 있어 밝은 분위기다.
2016년 5월에는 충북 청주시 사창동에 새동네 3호점인 ‘사창 186’이 들어섰다. 충북대 근처에 자리 잡은 이 집을 개축할 때 충북대 건축과 학생들이 워크숍을 통해 설계의 주체로 참여하고 청년 주거문제에 대안을 제시했다. ‘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 ‘나라면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를 끊임없이 고민했고, 원룸빌라의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해 공유 공간을 적극 활용했다. 17가구가 입주한 이 집에는 공용 주방과 공용 서재가 있다. 다양한 주방기구를 갖춘 주방에서는 함께 요리를 해 먹고, 지인들을 초대해서 파티를 할 수도 있다. 1층 복도 끝에는 입주민들이 함께 책을 읽거나 공부하고,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을 두었다. 1층에 있는 툇마루와 마당은 마을 주민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협동조합이 출범하면 조합원들의 출자금으로 대지를 매입해 좀 더 광범위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1000가구의 아파트 단지를 만들려면 5~6년씩 걸리지만, 작은 필지들에 다세대주택을 지으면 1년 만에 1000가구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는 뉴타운 해제로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자투리 땅이 많아요. 그런 곳은 땅값도 비교적 싸죠. 그 땅들을 활용해 저층 집합 주거지를 만들면 주택 문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좌관 330’의 내부. 민달팽이협동조합이 장기임대하고 있다.
이재준 소장은 일단 서울을 중심으로 사업을 시작한 뒤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새동네 회원들은 인터넷사이트(http://newdongne.kr)를 통해 어느 동네에서 살고 싶다고 의사를 밝히고 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모이는 대로 함께 살 집 만들기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충북대 근처에 들어선 ‘사창 186’의 공동 서재.
“숙명여대가 있는 청파동은 여자들이 살기 좋은 동네예요. 시내 중심이지만 다른 대학가와 달리 시끄럽지 않아요. 효창공원이 있어 운동도 할 수 있고요. 하지만 오래된 동네라 낡은 집들이 많아요. 이곳에 새 집이 생긴다면 입주할 의사 200%입니다.” “기숙사 때문에 성북동이라는 동네에서 살게 되었는데, 너무 아름답고 매력적인 곳이네요. 성균관대, 한성대, 성신여대가 가깝고 대학로가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어요. 번화가에서 멀지 않지만 나무도 많고 공기도 맑아 서울같지 않은 곳입니다. 기숙사에서 나오더라도 이 동네에 머물고 싶어요. 성북동 관심 있는 분들 모여주세요.” 요청이 쌓이면서 아예 집 지을 만한 땅을 찾아 추천하는 회원들도 있다. 이재준 소장은 좋은 동네의 조건으로 ‘주변에 산책할 수 있는 공원이나 산, 대학 같은 문화적인 거점, 오래된 시장이 있는 곳’을 든다. 새동네는 회원들이 추천한 동네를 중심으로 집을 짓거나 개축한 뒤 입주 신청을 받을 예정이다. 연회비(10만원)를 내는 예비 입주민에게 입주 우선권을 준다. 적립된 연회비는 입주 첫 달의 월세로 전환된다. 새동네의 집이 여기저기에 생기면 새동네 주민의 권리를 유지하면서 원하는 곳, 원하는 규모의 집으로 이사 다닐 수도 있다. 이재준 소장은 “땅이나 집이 있는 분들이 우리에게 빌려주시면 신축이나 개축을 통해 좋은 집을 만들어드리고, 10년, 20년 장기임대로 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해드린다”고 말한다.

‘사창 186’의 1층은 외부 마당과 연결돼 주민과 소통하는 공간이 된다.
“노후 대비를 위해 수익형 부동산에 눈을 돌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공급과잉으로 공실률이 높아지면 오히려 노후 불안의 요인이 될 수도 있지요. 집이 있든 없든 모두 불안한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대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새동네의 경우 입주 대기자들이 이미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공실 위험이 적습니다. 임대료를 높이지 않아도 은행 금리의 2배 정도 수익은 거둘 수 있죠.”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임대 수익만을 노리고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다세대・다가구 주택으로 양분되어온 우리나라 주택시장에 ‘새동네’가 새바람을 몰고 올 수 있을까? 여러 사람이 힘을 모으면 우리의 주거문화를 진정한 삶의 공간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본다.
  • 2017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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