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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원점을 찾아 떠나다

[special feature]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횡단한 손현

글 : 시정민 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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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세의 한 청년이 성취감 없이 반복되던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6개월 동안 모터사이클 여행을 떠났다. ‘어쩌면 인생의 방향이 바뀔지도 모를 여행’이라며 야심 차게 시작했다. 동해에서 출발해 러시아 대륙의 끝없는 지평선을 달려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등 16개국 52개 도시 2만 6000km를 유랑했다. 그는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면서 현실에서 복잡하게 느꼈던 고민을 이전과는 다른 형식으로 바라보게 됐다. 여행 틈틈이 여정을 기록한 것을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라는 에세이로 엮었다.

사진제공 : 손현
대기업에서 플랜트 엔지니어였던 손현씨는 어릴 때부터 가구, 디자인,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 건축가를 꿈꾸었다. 그러나 건축 설계사무소의 인턴을 거쳐 대기업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일하면서 관련 업무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직을 고려하고 있던 때 2012년 한국 국제교류재단에서 주최한 ‘노르웨이 국립관광도로’라는 전시를 보게 됐다.

“노르웨이에 18개 코스의 전망대를 건축 모형으로 만든 것을 사진과 영상으로 볼 수 있었어요. 트루슈트겐 전망대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엄청 근사했어요. 그 길을 따라 모터사이클을 타고 바람을 맞으며 달리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죠.”

그는 모터사이클 여행이 고되고 험난할지 모르지만 ‘넓은 대륙을 달리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을 좀 더 넓고 길게 보게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최종 목적지를 노르웨이로 정한 후 2개월간 무비자로 여행이 가능한 러시아를 횡단하는 경로를 짰다. 그리고 2013년 가을 2종 소형면허를 취득했다. 1년간 전문 교관에게 바이크 레슨을 받으며 연습했다. 모터사이클 여행과 관련된 책을 모두 찾아보기도 하고, 모터사이클로 세계 일주를 하고 돌아온 정두용씨를 만나 여행 경험을 듣기도 했다. 여행 경비는 회사 퇴직금으로 마련했다. 모터사이클 박스에는 정비용품을, 옷가지는 최소화해 60리터 배낭에 넣었다. 2년여 준비 기간 끝에 그는 2015년 6월 동해항을 출발해 20시간 항해 끝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입항한 뒤 본격적인 모터사이클 여행을 시작했다.


흩어진 마음을 챙기다


“자동차는 주변 풍경을 보고 달리기엔 너무 빨라 작은 것을 놓치기 쉽고, 걷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바이크는 속도 조절이 가능할 뿐 아니라 지붕이 없고, 시야가 탁 트여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에 제격이었습니다. 바이크를 타며 맞는 바람은 엄청났어요. 세찬 바람 때문에 헬멧과 몸에 벌레가 부딪쳐 톡톡 터지는 일도 빈번했죠. 그러나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릴 때 슈트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온몸을 환기시켜줘 모든 잡념이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습니다.”

여행 중 유일하게 비포장 도로였던 러시아 바이칼 호수의 올혼 섬에서 그는 생각지 못한 사고를 당했다. 빨래판처럼 심하게 울퉁불퉁한 도로의 노면에 솟아 있는 바윗돌에 걸려 순간적으로 날아 구른 것이다. 바이크를 일으켜 세워 다시 달렸지만 몇 개의 구릉을 넘다 급경사 내리막에서 또 넘어지고 말았다.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땐 옷을 겹겹이 껴입은 후 바이크 슈트를 입었지만 추웠다. 바이크 주행 중에는 짐이 떨어져나가 잃어버리기도 했다. 크고 작은 사고와 모터사이클에 홀로 앉아 장시간을 달리며 느끼는 외로움보다 추위를 이기는 일이 가장 큰 괴로움이었다.

여행 중 길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이 그에겐 큰 힘이 됐다. 러시아에서 우연히 마주친 라이더의 소개로 바이크 클럽을 가거나 그들의 집에서 지내는가 하면, 여행 중 만난 유럽인들이 자신의 도시로 초대해 호의를 베풀기도 했다.

“여행하면서 현지인 대부분이 친절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모터사이클 여행이 고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폴란드인 유렉 부부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열흘 정도 머물며 그들의 가족과 2박 3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어요. 러시아에서는 노트북과 짐이 들어 있던 박스를 잃어버렸는데 제 노트북에 있는 이메일로 연락을 줘서 다시 찾기도 했고요. 자전거나 모터사이클은 얼굴을 직접 마주할 수 있어 사람들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핀란드 노르카프, 스페인 팜플로나 가는 길.
그는 모터사이클로 달리는 시간엔 늘 명상에 잠겼다.

“처음엔 주행거리, 소모한 휘발유량, 어디서 누굴 만나고 뭘 먹었는지 등 일상만 기록하다가 점점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각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2~3일씩 쉬면서 글을 쓰고, 잘 써지지 않을 땐 모터사이클을 타고 바람을 맞으며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썼지요. 마감에 쫓겨 쓰는 게 아니라 여유로이 글을 쓰며 여행하는 것이 좋았어요.”

여행을 떠나기 1년 전 그는 “1년 후 나는 더 이상 회사에 다니는 신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조금 더 하고 싶은 일을 차근차근 준비하며 내 일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될지도 모를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면 좋겠다”는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회사원일 때 그는 늘 일과 삶의 균형을 고민했다. 엔지니어가 그에게 맞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퇴근 후 자신의 생활을 즐기면 된다고 믿었다.

“러시아에서 한 정비소에서 일하던 4명의 엔지니어를 만난 적이 있어요. 기본적인 모터사이클 정비법을 배우고 1주일 정도 함께 지냈어요. 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얼굴과 몸에 기름때를 묻히고 힘들게 일했지만 표정이 밝았어요. 퇴근 후에는 늦은 저녁이라도 모터사이클을 타고 이곳저곳을 돌며 하루를 마감했죠. 그들은 그런 반복된 일상이 피곤하지만 재미있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저는 일과 삶은 퇴근 시점을 기해 나뉜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일과 삶의 구분이 없는 그들의 모습에 놀랐어요. 프로젝트가 바쁠 때를 제외하고 거의 정시 퇴근을 했던 직장이었음에도 저는 그리 만족하지 못했거든요.”


엔지니어에서 에디터로

러시아 치타로 가는 길에서 만난 도로 정비요원과 함께.
그는 여행의 동기부여가 됐던 노르웨이 트루슈트겐의 전망대에 올라 여행하며 있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회상하고 귀국 후 진로를 고민했다. 모터사이클 여행은 ‘유라시아 횡단이라는 거창한 단어보다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고 인생의 원점을 찾는 여행’이었음을 깨달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지난 2년간 틈틈이 매거진 《B》에서 에디터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자신이 좋아하는 글쓰기로 직업을 선택했다. 지난 6월부터 퍼블리라는 스타트업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정시 퇴근이 없을 정도로 바쁜 일상이지만 좋아하는 글을 쓰며 전 직장보다 훨씬 만족스럽다고 한다.

그는 평소 수영과 조깅을 즐긴다. 여행 중에도 체력 관리를 위해 여건이 되는 한 수영과 조깅을 했다. 그는 조깅하는 다른 사람들을 뒤따라 달렸다. 같은 장소라도 제법 괜찮은 경로를 찾거나 현지인들의 사는 모습을 자세히 접할 수 있어 또 다른 여행의 묘미가 있었다. 그래서 유라시아 횡단은 그에게 ‘또 다른 일상’을 만끽한 여행이었다. 일상에서 즐기던 조깅, 수영, 글쓰기를 여행 중에도 꾸준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 후 그는 마음이 조금 더 여유로워졌다.

“서울에 있을 땐 모든 게 빡빡하고 경쟁도 치열하고 빨리빨리 해야 했다면 여행을 통해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죠. 여행 중 불의의 사고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항상 있었는데 무사히 돌아오고 나니 감정 표현도 더 할 수 있게 됐죠. 여행하는 동안 늘 저를 걱정해준 가족, 친구들에게 이제 고맙다는 말을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하게 됐어요. 무엇보다 여행 중 생각을 정리하며 썼던 ‘글쓰기’가 제겐 가장 큰 힘이 됐어요. 이제 좋아하는 글을 쓰고, 다른 이들의 글을 다듬는 에디터로 일하며 또 다른 계획을 세워보려고 합니다.”
  • 201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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