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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 요트로 ‘지구 한 바퀴’

[special feature] 해양모험가 김승진 선장

글 : 임현선 기자  / 사진 :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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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요트를 타고 원조 없이 7개월간 홀로 무(無)기항 요트 세계 일주에 성공한 김승진(55) 선장. 2014년 10월 그는 당진 왜목항을 출발해 209일 만에 지구 한 바퀴를 돌아 출발지로 오는 데 성공했다. 요트로 움직인 거리는 총 4만 1900km. ‘선원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위험천만한 남아메리카 최남단 케이프혼을 통과한 첫 한국인이다. 육지에 올라온 지 1년 5개월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다. 전국 각계각층에서 폭주하는 강연 요청에 부응하느라 그동안 자동차로 움직인 거리만 9만km에 이른다고 했다.

사진제공 : 김승진
요트 세계 일주 성공과 인생 2막의 시작

몸에 딱 붙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김승진 선장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몸은 바쁘지만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내 인생의 주제인 물문화 운동의 무대가 만들어져 굉장한 행운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7월 설립한 사단법인 한국요트세계일주협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물문화 운동을 펼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남과 북이 분단되어 육로로 다른 나라에 갈 수 없고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사실상 섬나라예요. 해양 대국을 꿈꾸지만 바다에서 놀지 않은 사람들은 바다에서 비전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물문화 운동은 바다에서 놀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지구의 70%는 물인데 죽기 전에 바다를 즐기지 못한다면 너무 안타깝죠.”

한국요트세계일주협회를 만든 계기도 물문화 운동의 활동 근거가 필요해서다. 김 선장 외에 10명이 협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협회는 8월 요트 학교를 열어 요트의 이해를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11월에는 시민 10명을 선발해 그들과 7개월간 요트로 3만 1700km를 항해할 ‘신대항해 시대’ 프로젝트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후 김 선장은 2018년과 2020년 각각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열리는 요트 세계 일주 대회에 참가할 계획이다. 이 대회는 무동력으로 항구에 정박하지 않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오는 노선으로, 기록에 의해 승부가 결정된다. 세계 최정상급 요트 선수들이 대회에 참가한다. 총 항해 길이는 4만km가 넘고 출전하면 밤낮 구분 없이 몇 개월 동안 거친 파도와 싸워야 한다.

“집채만 한 파도를 만나면 아찔해요. 그런데 그런 경험을 즐기니까 시도합니다. 요트는 인내심과 상황 판단 능력이 중요해요. 바람의 방향과 날씨의 변화를 읽고 내 배의 컨디션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런 게 다 경험에서 나옵니다. 실제로 지난해 무동력 요트 세계 챔피언이 56세였어요.”

2020년 김 선장은 59세가 된다. 예순을 앞둔 나이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김 선장에게 요트는 어떤 의미일까.

“저에게 요트는 자유이고 인생입니다. 요트는 의식주가 해결되는 생활공간, 교통수단, 레스토랑이 될 수 있어요. 가능성이 무궁한 물건입니다. 스포츠, 레저라는 개념 안에 가두기엔 너무 넓은 의미를 지녀요. 삶이 녹아 있고 생활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요트 클럽에 가입해 배를 공유하는 방법도 있고 시간당 빌려서 이용할 수 있어요. 배를 사지 않는다면 적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어요.”

아프리카 최남단에서 북서쪽으로 160km 지점에 있는 희망봉 인근 바다.
김 선장의 고향은 충청북도 청주다. 산과 개울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을 간 강릉에서 바다를 처음 보고 한눈에 반했다고 했다.

“푸른색 수평선을 봤을 때 눈이 번쩍 뜨였어요. 버스에서 계속 바다를 보려고 고개를 돌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성인이 된 이후 그 광경을 확인하려고 갔었는데, 세상에 제가 본 수평선이 너무 작은 거예요. 느낌이란 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깨달았죠.”

대학 때는 전국대학연합잠수회에 가입해 스킨스쿠버를 배웠고 잠수회 임원이 된 후에는 전국 대학을 돌며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가르쳤다.

“어릴 적부터 한 조직의 일원으로서 매일 출퇴근하는 직업을 갖고 싶진 않았어요.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원했죠. 그림을 전공했지만 방송 쪽에 관심이 있어서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는 일본 도쿄비주얼아트 방송예술과를 졸업한 뒤 다큐멘터리 프리랜스 프로듀서(PD)로 일하며 약 200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일본 후지TV에서 방영한 〈머나먼 여정〉이다. 1960년대 일본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북한으로 갔지만, 북한을 탈출해 일본에 있는 친척들을 찾아가는 재일 동포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일본뿐 아니라 유럽, 미국에서도 방영돼 화제가 됐다.


여행은 호기심을 충족해가는 과정

요트에서 본 뉴질랜드 동부 바다.
2001년 김 선장은 취재를 위해 들른 일본의 한 서점에서 무동력, 무정박으로 세계 요트 일주에 성공한 일본인의 여행기를 접한 뒤 요트 세계 일주의 꿈을 꿨다. 요트와 항해에 관련한 자료를 찾아 혼자 공부했다. 2010년 집을 판 돈으로 크로아티아에서 중고 요트를 구매해 본격적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유럽에서 요트를 사서 한국까지 오는 데 7개월이 걸렸어요. 14곳의 항구에 들렀는데, 지금 생각해도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마음 내키는 대로 쉬다가 이동하며 항해를 즐겼죠. 요트 세계 일주에 대한 확신도 얻었어요.”

수개월 동안 홀로 거친 파도와 싸우며 며칠 동안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내는 경험은 어떤 느낌으로 기억될까? 김 선장이 절대 고독과 죽음의 공포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궁금했다.

“가끔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으세요? 배에서 구름과 바람의 변화를 느끼면서 하루를 보내면 이야기 상대가 없어도 심심하지 않습니다. 돌고래 촬영을 위해 물속에 들어갔다가 상어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 상황에서 저는 카메라를 무기 삼아 상어에게 대항했고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섬뜩한 공포감을 느낍니다. 돌아보면 저를 둘러싼 상황은 언제나 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어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나가는가가 저의 과제였어요. 여행은 제게 어떤 상황에서도 맞설 힘을 주는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 감독이란 직업상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할 기회가 많았다고 한다. 중국 양쯔강 탐험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사막에도 가봤고 히말라야도 6400m까지 올랐다. 북극과 남극만 빼고 북미, 남미,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대륙을 모두 다녔다. 바닷길로는 북극해만 빼고 안 가본 곳이 없다.

“어릴 때는 잠깐이라도 살아보고 싶은 나라가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느 나라가 특별히 좋다 그런 생각은 없어요. 바다 여행을 하면서 지구가 정원이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무기항 요트 세계 일주 성공 뒤 김 선장은 새로운 도전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40~50대는 그에게서 “중년도 새로운 도전을 멋지게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봤고, 20~30대는 경험에서 나온 지혜를 배우고 싶어 한다. 해외 여행 중인 수많은 청년이 자신의 여행 소식을 김 선장의 SNS에 올리며 조언을 구한다. 김 선장은 그들에게 매일 느끼는 감정을 기록하고 사진을 찍을 때는 자신을 포함해 사람을 카메라에 담으라고 당부한다. 그 뒤에 꼭 덧붙이는 말은 “여행 그 자체를 즐겨라”이다.

“청년들이 여행을 준비하면서 어떤 목표를 정하기 전에 여행 그 자체를 즐겼으면 좋겠어요. 그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정말 많아요. 저에게 여행은 호기심을 충족해나가는 과정이에요. 새로운 환경에서 경험한 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애쓰지 말고 혼자 온전히 느끼고 돌아오길 바랍니다.”
  • 201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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