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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느끼는 세종의 마음

[special feature] ‘꽃길’ ‘바람’체 디자인한 이용제 한글디자이너

글 : 유슬기 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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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볼수록 ‘참 독특하고 재미있는 문자’라고 이용제 디자이너는 말한다. 알파벳 같은 소리글자이면서 자음과 모음이 분절되는 글자인데 형태로 보면 모아쓰기라서 그렇다. 그는 한 20년은 집중해서 봐야 이 복잡한 퍼즐을 풀고 미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한글디자인은 글자 하나를 천 등분해서 천분의 일을 조율하는 작업이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통하지 않으니 이런 이유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결국 제 뜻을 펼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대왕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해 반포한 이유다. 한글에는 이처럼 백성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서려 있다. ‘널리 이롭게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왕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것 없는 문자 체계이지만 백성의 입장에서 체계를 혁신하려는 역지사지. 한글디자이너 이용제는 한글을 연구할수록 세종의 마음에 더 다가가 앉게 된다.

이용제 디자이너는 홍익대와 동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한글디자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디자이너로도 불린다. 2004년 세로쓰기 전용 폰트인 ‘꽃길’을 디자인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외에도 ‘잉크를 아끼는 폰트’,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 크라우드펀딩으로 진행된 ‘바람’체 등을 디자인했다. 바람체는 2013년 2월부터 80일간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2400만원을 모금해 만들어졌다. 후원자는 412명, 목표 금액의 119%를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폰트 개발 비용을 후원받는 것만큼이나 폰트를 제작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현재는 한글 타이포그래피 학교 ‘히읗’을 운영 중이다. 한글의 생성 과정을 배우고, 새로운 글꼴을 만들어보는 모든 과정을 총괄한다.

“함께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제 작업의 원동력인 것 같아요. 제가 가장 만족하는 순간이 함께 만족하면서 살 수 있는 순간이더라고요. 그런 마음으로 살면 세상에 나쁜 일도 좀 덜 일어나지 않을까 싶고요.”

묵묵함과 진득함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한글디자인’이라는 분야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한글 폰트’를 비용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개념이 미미한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시장이 아직 잘 정리가 안 되어 있어요. 컴퓨터의 보급과 함께 폰트도 같이 보급됐으니까요. 누가 만든 건지, 어디서 공급되는 건지 개념이 생기기 어려웠죠. 제작한 사람에게 수익이 돌아가야 한다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보급이 된 거죠. 과도기가 계속돼 왔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흐르면 여러 노력들이 합쳐져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될 거라고 믿고요.”

그 역시 그 노력의 선봉에 있다. ‘한글디자인’과 관련된 강의나 강연이라면 아무리 작은 모임이라도 사양하지 않는다.

“9월 21일에는 저작권이나 사용권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어요. 국내외 상황을 소개하고 우리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어요. ‘이게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자’라는 흐름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이제 대화가 시작되는 단계예요.”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글자

바람체로 만든 배지.
하나의 글꼴을 개발하려면 한글 1만 1172자, 로마자 94자, 특수문자 986자가 필요하다. 1종의 글꼴을 개발하는 데 1년 이상의 시간을 잡아야 하는 이유다. 한글은 자음과 모음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문자이기 때문에 3000~4000개의 자소를 이용한다. 3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숙달된 인력이 1년 정도의 제작 기간을 거쳐야 글꼴 하나가 완성된다.

“처음에 이 일을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보이는 대로 그렸어요. 조금 나이가 들어서는 ‘쓰임’을 고려해요. ‘이걸 어디다, 누가 쓸까’에 대해서요. 그걸 염두에 두고 스케치를 하죠. 디자이너는 뭔가를 계속 만드는 사람인데, 자기를 위해서나 특정한 누구를 위해서만 만드는 것보다는 좀 더 넓게, 이롭게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런 마음으로 디자인한다면 꽤 괜찮은 디자인이 나올 것 같고요.”

사회에 대한 관심도, 자연에 대한 관심도 더불어 커졌다. 그가 만든 ‘바람’체에는 그런 바람이 담겨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생명을 살리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바람처럼, 좋은 형태의 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한 7~8년 전부터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어요. 내가 그리고 있는 형태는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궁리하게 됐죠. ‘나는 왜 이런 데 끌릴까, 왜 좋아할까’ 하는 생각들이오. 제가 좋아하는 형태들이 어떤 맥락이나 계보 안에서 왔더라고요. 이 글자가 ‘바람 같았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그의 글꼴에는 아주 아날로그적인 느낌과 아주 디지털한 느낌이 함께 있다. 그 특질은 ‘세로쓰기’에서 오기도 한다. 익숙한 가로쓰기가 아니라, 세로쓰기로 쓰인 글을 보면, 새로운 호흡과 시각으로 글을 읽게 된다.

“활자는 계속 변해요. 그런데 그걸 잘 느끼지 못해요. 변하는 호흡이 50~80년 정도 걸리거든요. 한 세대는 한 활자를 계속 보고 살아요. 모든 디자인에는 시대정신이 반영돼요. 현재 쓰이는 글꼴은 대부분이 가로쓰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죠. ‘만약에 세로쓰기로 만든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가로쓰기에 좋은 것이 세로쓰기에도 맞는지, 그 반대도 적용이 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고요.”

세로로 써보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그의 디자인의 돌파구가 되어 주었다. 새로운 시야가 열린 것이다.

“일본은 우리보다 디자인 면에서 조금 더 앞서 있는데, 왜 세로쓰기를 계속하고 있을까 궁금했어요. 세로쓰기는 글자의 형태와 모양에 조금 더 집중해 볼 수 있죠. 감상의 폭이나 감상의 시간을 늘릴 수도 있고, 텍스트를 음미할 시간을 좀 더 가질 수 있죠. 가로쓰기가 빨리 읽는 데 효율적이긴 하지만 시나 수필을 읽을 때는 가독성만큼이나 중요한 게 텍스트를 감상할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한글이라는 한길


컴퓨터를 사서 한글, 워드 프로그램을 쓰다보면 여러 개의 폰트가 주르륵 열린다. 처음부터 깔려 있어서 누가 만들었는지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글꼴들이다.

“한글디자인의 범주가 넓지는 않아요. 그게 디지털화하면서 갑자기 대량 보급되었고요. 거기에 대한 사용료를 내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만들어지기가 쉽지 않은 거죠. 다른 나라도 이런 사용권이 안정되기까지 50~100년 정도 걸렸더라고요.”

한글디자인의 지평 확대와 인식의 전환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한글 타이포그래피 학교 ‘히읗(ㅎ)’을 운영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건 힘의 균형이에요. 한글이 제일 우수하기 때문에 한글로만 해야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영어로 된 이름, 한자로 된 이름이 있다면 한글로 된 이름들도 균형을 맞추길 바라는 거죠. 제가 ‘ㅎ’을 좋아하는 이유는 곡선과 직선이 두루 어우러져 있을 뿐 아니라 소리도 좋아요. 이름을 지을 때는 모양도 중요하고 소리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런 그의 이름에 대한 정성은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도 드러났다.

“제 아이가 셋이에요. 7살, 5살, 1살이죠. 첫째는 이솝, 둘째는 이미음, 셋째는 이소오입니다. 이나 소오는 존댓말이에요. ‘하시옵소서’에서 나온 고어죠. 솝에는 반치음에 아래아에 비읍을 썼어요. 상대와 세상을 존중하고 존대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떠오른다는 뜻도 있고요. 아이가 살면서 ‘나는 이런 사람으로, 이렇게 살아가야겠다’는 의미를 갖는 데 도움이 되길 바라죠.”
  • 201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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