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저자 최혁준씨

동물이 동물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위하여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 그림 : 최혁준 

지난 2월 21일 오후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 동물원 정문 앞에 20여 명이 모였다.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의 저자와 함께 동물원 걷기’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2014년 책이 나온 이후 벌써 네 번째다. 지난해 1월 10일 서울대공원에서 첫 번째 걷기 행사를 시작한 이래 약 100명의 사람들이 참가했다. 지금까지 참가 신청을 하고 행사 당일 불참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참가율 100%인 보기 드문 행사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가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함께 걸으니 다르게 보이는 것들

차를 타고 들어가 가까운 거리에서 동물을 볼 수 있는 사파리 체험은 동물원을 찾는 관람객에게 가장 인기다. 사파리 차량을 운전하는 직원의 재치 있는 입담과 그가 던져주는 건빵을 받아먹는 곰의 모습에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탄성을 지른다. 반면, 저자와 함께 동물원 걷기에 참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다. 한 참가자는 “전반적으로 곰들은 무력했고 생기가 없어 보였다”고 했다.

“건빵은 동물의 생태적 먹이가 아니다.
그런데 하루에 드나드는 차량 수를 생각하면 성수기에는 얼마나 먹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다만 사파리 바닥의 설사 흔적을 보면서 짐작할 뿐이다.”
-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중에서



동물원 걷기 행사에 별도의 참가비는 없다. 걷기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최혁준(20)씨에게 돌아가는 보수도 없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일상에서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이렇게 모이는 게 의미 있는 것 같아요. 걷기 행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동물원의 동물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다들 같은 생각을 공유하게 되니까요.”

혁준씨가 말하는 ‘같은 생각’이란 동물의 입장에서 동물원이라는 환경을 고민해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동물복지 차원에서 바라본 동물원이다.

“동물을 소비해야만 한다면 동물원은 가장 인도적인 형태예요. 이렇게라도 자연과 동물을 접해서 애호와 보존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야죠. 식용동물을 취급하는 곳에 가서 동물복지를 이야기해봤자 개선이 어렵죠. 동물원에서는 귀를 기울여요. 야생에서의 모습을 복제한다는 기본적인 성질이 있기 때문이에요. 동물의 입장에서 환경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고요.”


한 권의 책으로 달라진 동물원 풍경


처음 시작은 미미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블로그에 국내 동물원 순위나 매겨보자던 거였다. 동물원을 다니면서 순위 매김 프로젝트는 본격적인 평가 프로젝트로 몸집이 커졌고 혁준씨 혼자서는 벅차 블로그를 통해 제작진 친구들을 모았다.

도서관 관련 일을 하던 어머니는 혁준씨에게 도움이 될 책들을 추천해주었다. 종 보전, 동물복지, 개선과 발전, 교육과 전시 등의 평가 기준은 어머니가 추천한 참고 도서에서 나왔다. 3년에 걸쳐 서울대공원을 비롯한 9개 동물원 평가를 진행했다. 자료가 쌓여갈수록 학교 성적은 떨어졌다. 급기야 고3 학기 초, 아버지의 반대에 부닥쳤다. “대학부터 가고 보자”는 것이었다. 혁준씨가 동물원 평가를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출판사 책공장더불어의 김보경 대표의 전화 한 통 덕분이었다. 국내 동물원 관련 책을 내려고 저자를 알아보던 중 혁준씨를 알게 된 것. 출간 계약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덕에 아버지의 반대는 잠잠해졌다.

2014년 12월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책공장더불어)가 나왔을 당시 저자인 혁준씨는 여러 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제껏 국내 동물원에 대한 변변한 평가서가 없기도 했고 전문가도 아닌 동물을 좋아하는 고등학생이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한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제 전화번호가 더 이상 개인정보가 아니게 됐어요(웃음).”

책이 나온 후 서울대공원 등의 동물원 측에서 혁준씨를 찾았다. 동물 전문가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조만간 이뤄질 전주동물원의 대규모 시설 개선 사업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제가 책에 쓴 내용들 대부분은 동물원 관계자들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동물원 측이 몰라서 안 바꾼 게 아니죠. 동물원을 바꿀 수 있는 힘은 관람객에게서 나와요.”

혁준씨가 책을 쓴 이유도 동물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실제로 책이 나온 이후 내용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

“동물 쇼 폐지는 수십 년이 걸릴 거로 생각했어요. 동물원과 동물보호단체의 법정 싸움에서 동물원이 이겼거든요. 그런데 결국 동물 쇼가 주 수입원임에도 동물원 쪽에서 동물 쇼를 폐지했어요. 사람들이 더 이상 동물 쇼를 보기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동물원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수록 동물원 동물들의 환경이 달라질 수 있어요.”

그는 자신의 책에 많은 오류가 생기길 진심으로 바란다. 오류가 생기는 만큼 동물에게 좋은 환경이 제공됐다는 의미일 테니까.


타고난 ‘동물 덕후’


혁준씨는 10년 넘게 이구아나, 거북이, 앵무새 등을 키우고 있다. 반려동물 하면 흔히 떠오르는 개나 고양이가 아닌 이유는 어머니가 내건 조건 때문이다. “털이 날리지 않는 것, 소리 내지 않는 것.”

또 한 가지의 이유는 개, 고양이 등은 쉽게 의인화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개나 고양이를 기르다 보면 형제 자식처럼 대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동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선은 비주류 동물을 키우면서 길러지는 것 같아요.”

혁준씨는 동물을 싫어했던 적이 한순간도 없다.

“동물을 좋아하는 건 어느 정도 타고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부모님과 누나 모두 동물을 저처럼 좋아하지는 않거든요. 싫어하지 않는 정도죠. 아마도 제가 다른 생물에 관심을 갖기 적합한 뇌를 갖고 태어났나 봐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족과 함께 갔던 네덜란드 동물원은 그동안 그가 다녔던 동물원과는 달랐다. 동물들이 갇혀 있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마치 야생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는 한동안 동물원에 가지 않았다.

혁준씨는 어렸을 때부터 동물 관련 책과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았다. 동물학자 같은 현장 과학자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를 보며 그들을 동경했다. 그런데 자신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학과랑 연결되는 직업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것 같아요. 동물학자는 외국에나 있는 직업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이 바뀌게 된 건 동물원에 다니면서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기 때문이에요. 책을 내고 동물원에서 일하는 분들을 많이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죠.”

그는 현재 대학에서 특수동물학을 전공하고 있다. 야생동물 분야를 공부해서 동물학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우리나라에서 야생동물 분야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요. 관련 분야를 전공한다고 해서 일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외국에서 박사도 하고 경험을 쌓은 분들이 국내로 눈을 돌려 후학 양성에 힘써줬으면 좋겠어요. 저처럼 야생동물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인간인 나와는 다른 생물을 알고 싶어 하는 근원적인 호기심 때문이죠.”
  • 201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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