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로 메시지 전하는 가죽 제품 브랜드 ‘도트윈’ 박재형·박재성 공동대표

닮은 듯 다른 형제의 인생 탐험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다음에서 설명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1. 네모 한 칸에 가로로 두 개, 세로로 세 개, 모두 여섯 개의 점으로 이뤄짐.
2. 각 점에는 1부터 6까지 번호를 붙여 사용함.
3. 여섯 개 점의 요철, 즉 올록볼록한 점의 조합이 의미를 가짐.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점자’이다. 박재형(22)·박재성(22)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죽에 새긴 점자 디자인으로 소셜 벤처 전국 대회에서 청소년 아이디어 부문 대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4년 후, 대학생이 된 두 형제는 점자를 디자인에 적용한 가죽 제품 브랜드 ‘도트윈(Dotween)’을 런칭한다.

사진제공 : 도트윈
밤에 출근하는 남자

서울숲이 있는 성수동 갈비골목에 어둠이 깔리고 사람들이 귀갓길을 서두를 때 작업실 문을 여는 박재형, 박재성 형제. 아직 대학생인 두 사람에게는 학교 수업이 끝난 밤이 본격적인 근무시간이다. 저녁 무렵부터 일을 시작하면 자정 지나 새벽까지 이어지기 일쑤다. 사는 곳은 도보 3분 거리에 있는 커뮤니티 하우스 디웰(D-well). 전국 각지에서 모인 열여섯 명의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이다. 디웰의 거주자는 심사에 의해 선발되는데 운영 주체인 루트 임팩트는 입주 예정자가 사회의 긍정적 변화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도트윈’을 운영하는 두 사람이 이곳에 입주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단지 청년 창업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

가죽에 점자를 새기는 작업 장면.
도트윈은 시각장애인의 글자인 점자를 가죽에 새긴 디자인을 콘셉트로 내세운 가죽 제품 브랜드이다. 나무껍질과 나뭇잎 등에서 뽑아낸 타닌 성분으로 가공한 베지터블 가죽을 소재로 가방, 지갑, 이어폰 홀더 등의 가죽 제품을 만든다. 제품에 들어가는 가죽에 주문하는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점자로 새겨준다. 점자를 모르는 사람을 위해 메시지가 적힌 종이를 작은 유리병에 넣어 동봉한다. 초창기에는 자체적으로 점자 해독 프로그램을 개발해 제공하기도 했다.

가죽에 점자를 새겨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이디어는 형인 재형 씨에게서 나왔다.

“동그란 점이 디자인 요소로서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일반적으로 점자를 활용한 디자인이라고 하면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도트윈의 접근 방식은 오히려 반대예요. 일반인에게 점자 디자인을 접하게 함으로써 시각장애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 제품은 볼 수 있는 사람과 보지 못하는 사람 모두를 위한 디자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재형 씨는 시각 디자이너를 꿈꿨다. ‘누구 하나 배제되는 사람 없이 나의 디자인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재형 씨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아무리 좋은 디자인이라도 의미가 없었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이 도트윈의 출발점이었다.


‘점자=비밀 암호’로 전하는 진심

포장이 완료된 이어폰 홀더.
작년 초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와디즈에서 펀딩을 진행하면서 사람들의 점자 디자인에 대한 호감이 높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글을 읽는 수단이 되는 점자가, 누군가에게는 메시지를 전하는 암호가 된다는 점을 어필했다. 펀딩을 통해 모은 400만 원을 종잣돈으로 도트윈을 창업했다.

“주 고객층은 20대에서 30대까지의 젊은 사람들이에요. 상대방만 알 수 있는 메시지라는 콘셉트 때문인지 평소 잘 하지 못했던 말, 진심을 담은 문장을 보내주세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이런 평범한 문장은 전혀 없고, 1년 동안 들어온 주문 중에 중복된 메시지도 전혀 없었어요.”

‘시간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Dare tempo al tempo’부터 ‘그대의 꽃이 될래요’처럼 달달한 문구까지 점자 메시지를 새길 때마다 사람들의 재치와 진심에 감탄하고 감동받는다.


창업 자산은 손기술, 그리고 부모님

주문이 들어오면 작업에 들어가는 핸드메이드의 특성상 도트윈을 시작할 때 큰 자본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디웰 입주로 성수동에 작업실을 얻으면서 운 좋게 보증금 없이 월세만 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작업 도구는 어릴 때부터 쓰던 것을 쓰고 가죽은 부모님의 공방에서 받아 쓴다. 부모님은 부산 해운대 앞에서 오랫동안 가죽 공방을 운영해오고 있다. 부모님의 가죽 공방은 어릴 적 형제의 놀이터였다. 따로 배우진 않았지만 형제는 자연스럽게 아버지로부터는 가죽을 다루는 법과 같은 가죽에 대한 철학과 태도를, 어머니에게는 재단과 재봉 등의 제작 기술을 배웠다. 펀딩으로 모은 400만 원이 후원자들에게 다시 리워드로 되돌아간 것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창업 자산은 가죽을 다루는 손기술과 부모님인 셈이다.


닮은 듯 다른 두 사람


두 사람은 쌍둥이다. 외모가 닮았듯이 관심 분야도 같았다. 두 사람은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지는 데 역할을 하는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았다. 또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것보다 학교 밖에서 경험하고 배우길 좋아했다. 형은 테드엑스에서 유일한 고등학생 디자이너로 일했고 이과 학생이었던 동생은 대학에서 진행하는 연구 프로젝트에 참가해 논문을 썼다.

쌍둥이인 두 사람은 닮았지만 또 서로 다르다. 부산의 한 예술 중학교에서 형 재형 씨는 피아노를 쳤고, 동생 재성 씨는 발레를 했다. 피아노를 치던 형이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동생은 계속해서 춤을 추고 싶어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다. 부모님은 남들처럼 공부해서 대학 가길 바라셨다. 형 재형 씨는, 잠깐의 자퇴 소동을 벌였지만, 외국어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연세대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갔다. 과학을 좋아했던 재성 씨는 서울대 건축학과에 입학했다.

형과 동생은 일에 임하는 태도도 다르다. 재형 씨는 짧은 시간에 결과물을 내놓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스타일인 반면 동생은 오랜 시간 숙고한 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타입이다. 동생 재성 씨가 보기에 형의 작업 방식은 너무 헐렁하고, 형 재형 씨가 보기에 동생의 스타일은 너무 답답하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의 차이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 긍정의 시너지를 발휘한다. 형이 주로 담당하는 디자인 업무는 고객의 피드백으로 다듬어지고 발전한다. 신중한 동생은 브랜드 전반과 고객 관리 업무를 맡는다.


지금 이 나이가 아니면 못 할 일


명문대 재학생으로 착실히 공부해서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될 것을, 왜 밤을 새워가며 고생을 하는지 물었다.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디자인을 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고, 미대 진학을 포기하고 사회복지학과를 간 것도 제가 하려는 디자인에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어요.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요. 지금 이 나이가 아니면 해볼 수 없을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건축을 전공하는 재성 씨의 대답이 궁금했다.

“건축은 거시적인 학문이에요. 제 관심사는 ‘사람’인데 이는 매우 미시적이죠. 공간 안을 채우고 있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삶이잖아요. 언젠가는 건축 사무소 같은 곳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건 서른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잖아요. 도트윈의 작업에서는 사람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

올해 도트윈의 출발은 좋다. 작업실 근처에 있는 서울숲 진입로에 위치한 창조적 공익 문화 공간 ‘언더스탠드 에비뉴’에 매장을 얻었다. 3개월 동안 무료로 공간을 지원받게 된다.

디웰에서 알게 된 김애나 씨와 함께 해외 진출도 시도할 생각이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쪽 온라인 쇼핑몰 입점을 계획 중이다.

새로운 크라우드 펀딩도 시작했다. 도트윈을 시작하면서 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시각장애 아동 미술 교육 지원 단체 ‘우리들의 눈’과 함께 시각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룬 출판물을 출간할 예정이다. ‘땡스북스’ ‘유어마인드’ ‘Innovator’s Library’ 등 동네 서점 일곱 곳도 동참한다.

재형・재성 씨 형제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집으로 오는 길에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떠올랐다. 이 시는 ‘선택의 필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자신들의 꿈과 믿음에 따라 선택한 길. 편한 길은 아니지만 두 사람이 선택한 길은 틀리지 않았다.
  • 2016년 02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