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란·김도균의 공동작업실 ‘ㅋㅋㄹㅋㄷ(크크르크득)’

건축가 누나와 사진작가 동생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공간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남매 사이인 건축가 김경란과 사진작가 김도균. 각자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매진해오던 두 사람이 함께 작업실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이 생겼다. 건축가와 사진작가가 만나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까?
그들이 함께 만든 작업실은 어떤 모습일까? 주소 하나 들고 작업실을 찾으려다 작은 공장들이 들어차 있는 서울 성수동 골목에서 길을 잃었다. 한참 헤매다 찾은 작업실은 아파트형 공장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작업실 벽에 김도균 작가의 작품이 걸려 있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공장 맞은편 예술가의 작업실, 의외로 잘 어울렸다. 유리문을 통해 훤히 내부공간이 드러나 카페로 착각하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고 한다.

김도균은 독특한 시각으로 공간을 해석해 새로운 이미지와 미학을 찾아내는 작가로 국내외에 이름나 있다. 작업실에 들어서니 그의 작품은 벽에만 걸려 있지 않았다. 작업대로 쓰이는 탁자도, 걸터앉아 작업을 하는 의자도 모두 그의 작품이었다. 쾰른 대성당을 정면에서 촬영한 흑백작품은 누나인 김경란씨가 작업할 때 쓰는 탁자가 되었고, 건축공간의 모서리를 촬영한 미니멀리즘 작품도 탁자가 되어 놓여 있었다. 항구에 쌓여 있던 대형 컨테이너를 촬영한 작품은 스툴 겸 소형 탁자가 되었다. 색색의 컨테이너를 정면에서 촬영해 각각 35×35cm 작품으로 만들었던 그는 전시 때에는 스마트폰 게임 ‘라인 업(line up)’처럼 보이도록 설치했었다. 그 작품은 다시 35×35cm 정사각형 그대로 가구의 상판이 되었다. 소형 탁자를 몇 개나 어떻게 붙여놓느냐에 따라 탁자의 크기와 디자인을 바꿀 수 있는 가구다.

사진 작품과 사진 작품으로 만든 가구, 오래된 소품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는 사무실 공간.
“누나도 저도 원래 가구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작업실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쓸 가구는 우리가 만들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상판은 제 작품을 활용하고, 전체 디자인은 누나가 하면서 이런 가구가 만들어졌죠. 이렇게 가구를 만들어보면서 저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에 ‘가구제작’도 포함시켰습니다. 대량생산할 가구는 아니고, 각각의 공간에 꼭 들어맞는 가구를 만들어주는 거지요.”

엄격하게 에디션을 제한하는 작품으로서의 사진과 실용적인 가구의 상판이 된 사진. 둘 사이 경계를 어떻게 구분할까가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고 한다. 김도균 작가는 “작품으로만 남길 사진과 실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사진을 구분하려 합니다. 제 작품은 원래 에디션을 3개밖에 만들지 않지만, 가구로 쓸 때는 좀 더 많이 만들 수 있겠죠. 하지만 그때도 대량생산할 생각은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만든 작업실 이름은 ㅋㅋㄹㅋㄷ. 두 사람 이름의 영문 이니셜인 kkr와 kdk를 합한 것으로, 크크르크득이라고 읽는다. 웃는 소리 같기도 하고 장난 같기도 한 이 이름에서 예술과 디자인, 일생활의 경계를 넘나들려는 이들의 열린 사고를 읽을 수 있다.


‘함께 일하자’던 20년 전 약속 이뤄

대형 컨테이너를 촬영한 35×35cm의 사진 작품을 상판으로 활용한 스툴 겸 소형 탁자들.
건축과 사진으로 각자의 영역은 다르지만 공동 작업실을 가지자는 약속은 김도균씨가 군 생활을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경란씨는 오남매 중 맏딸, 김도균씨는 넷째로 다섯 살 차이다. 김경란씨는 “동생들 중에서도 도균이를 특별히 예뻐해 더 챙겼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동생의 군 생활이 염려돼 이것저것 보내주던 경란씨는 어느 날 소설책 《매디슨카운티의 다리》 사이에 끼워 넣은 편지에 “언젠가는 우리가 만든 작업실에서 함께 일하고 싶다”고 썼다. 그때 그 꿈과 약속이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현실이 된 셈이다. 김도균씨가 주로 건축물이나 공간을 피사체 삼아 작품 활동을 한 데는 건축을 전공한 누나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누나가 공부하는 건축 책을 뒤적이며 건축사진을 많이 접했습니다.”

김도균씨가 독일에서 유학할 때 김경란씨가 찾아와 함께 유럽건축기행을 하기도 했다. 그때 누나가 알려준 건축물을 촬영한 작품도 있다. 남매가 시각적으로 예민해진 데는 어린 시절이 남달랐기 때문 아닐까 물으니 두 사람 모두 의상디자이너였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희에게 언제나 독특한 옷을 만들어 입히셨습니다. 그때 입었던 체크무늬 반바지가 아직도 생각나요. 그때는 기성복을 입는 다른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죠. 지금도 뚜렷이 기억나는 것은 어머니 의상실에 걸려 있던 온갖 패턴의 천들이었어요. 정말 독특하고 예뻤어요. 그 패턴들을 사랑했어요. 그게 알게 모르게 지금 작업에 영향을 끼치겠죠.”

김도균씨의 작품은 벽에도 걸려 있고, 탁자와 의자로도 변신했다.
대학 졸업 후 큰 건축사무소들에서 실무경험을 쌓던 누나와 독일유학에서 돌아와 사진작가로서 탄탄한 입지를 만들어가던 동생. 작업실을 함께 마련하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은 도균씨였다. 그동안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후원자가 빌려준 공간에서 작업해온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마련해야 할 형편이었고, 김경란씨도 독립해서 자신의 사무실을 시작하고 싶던 차였다.

“독일이든 미국이든 버려진 공장을 예술가들이 작업실로 개조해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작은 공장들이 모여 있는 이곳을 눈여겨봤지요. 이곳은 지은 지 50년 된 건물로, 철 가공 공장으로 쓰던 곳이에요. 길이 6m가 넘는 재료를 사용하던 곳이라 이렇게 층고가 높아요. 공간이 크진 않지만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게 이 때문이지요. 바닥에 기름이 잔뜩 배어 있고, 철가루가 벽과 바닥에 여기저기 박혀 있어 청소하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기름때를 벗겨내느라 바닥을 갈아내다 보니 콘크리트 안에 들어 있던 골재 알갱이가 그대로 드러났다고 하는데, 그게 외려 더 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흩뿌린 물감자국으로 가득한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 잭슨 폴록 작업실의 바닥이 생각났다. 높은 천장을 받치고 있는 목재 트러스트도 이 공간에 독특한 느낌을 부여한다. 밤샘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때 쓰던 다락은 그대로 두면서 그 아래 공간은 김도균 작가의 작품을 보관하는 수장고로 활용한다.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이들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소품들이 놓여 있다. 한쪽 벽면에는 천장까지 책장을 만들어 넣었다. 그런데 책장 재료가 창고형 매장에서 바나나를 담았던 상자란다. 바나나 상자를 책장으로 쓰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김도균씨. 김경란씨는 여기에 합판과 철재를 보강해 튼튼한 책장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수납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도 비용은 얼마 들지 않았다고 한다. 김도균씨는 “지역특성에 맞게 제주도는 감귤상자로 책장을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특허를 낼까 봐요”라고 말한다.

건축과 사진. 이질적일 수도 있는 작업공간을 이들은 칸막이로 구분하지 않았다. 책상과 탁자가 나란히 놓여 있거나 마주보고 있어 언제든 상대방의 작업내용을 볼 수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두 사람은 작업실을 연 후 서로의 작업에 더욱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도균씨가 올봄에 연 개인전에서 김경란씨는 어떤 작품을 어떻게 배치할지 디스플레이 디자인을 맡았고, 로비에는 두 사람의 합작품인 가구가 놓였다. 김도균씨가 갤러리를 운영하는 회사의 제품(휴대폰의 틀)과 그 제품을 찍어내는 금형을 촬영하고, 김경란씨는 그 사진을 상판으로 활용해 탁자와 의자를 만들었다.

“그 회사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가구라 계속 로비에 두겠다고 합니다.”

올봄 개인전 때 누나와 동생이 함께 만든 탁자와 의자.
김경란씨 역시 건축 작업을 할 때 동생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건축설계의 첫 단계에서 큰 그림을 그리며 아이디어를 내고 콘셉트를 정리하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이때 동생한테 많은 도움을 받죠. 작가로서 사고 폭이 넓다 보니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고, 제가 모르던 작가를 소개하며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기도 합니다. 최근 세운상가 주변 재개발계획에 참여하고 있는데, 콘셉트를 잡을 때 동생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재개발하되 그 땅의 기억을 지우지 않는 게 쉽지 않은 과제였거든요. 오래된 골목의 무질서한 모습과 새롭게 정비되는 모습을 어떻게 겹쳐 보여줄까 고민할 때 도균이가 사진 이미지로 제시해줬습니다. 심의위원들에게 제가 할 작업을 설득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서의 건축과 예술작품으로서의 사진. 두 사람은 갈수록 상대편 영역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제 시작된 두 사람의 합작이 어떻게 발전해나갈지 흥미롭다.
  •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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