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를 위한 건축 ‘지랩’ 이상묵 실장

경험과 이야기를 간직한 공간

글 : 오주현 기자  / 사진 : 하지영   / 사진 : 김재경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맨도롱또똣〉의 주인공 유연석의 집은 아름다운 제주 조천읍의 앞바다와 돌집이 어우러진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곳은 이효리가 화보촬영을 하고, 김나영이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100년 된 허름한 제주 전통식 돌집이었던 이 공간은 ‘눈먼고래’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이 공간을 만든 회사는 제로에서 시작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를 담은 제로 플레이스 랩, ‘지랩(Z_lab)’이다.
‘지랩’은 개개인의 열망을 담아서 공간 브랜드를 만들어주는 회사다. 특히 ‘stay’, 하룻밤의 잠자리에 집중한다. 단순히 잠자리 공간만이 아닌 새로운 경험과 이야기를 간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성균관대 건축학과 선후배 사이인 지랩의 세 공동창업자는 기획과 마케팅을 담당하는 이상묵, 건축설계를 하는 노경록, 그래픽과 웹디자인을 맡은 박중현이다. 지랩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대표인 이상묵씨를 최근 지랩의 다섯 번째 스테이로 오픈한 ‘이화루애’에서 만났다.


지역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잠자리

최근 문을 연 지랩의 다섯 번째 스테이 ‘이화루애’.
“일본의 료칸은 잠자리지만 그들의 문화를 느끼게 해주죠. 이처럼 잠자리에서 문화와 그 이상의 경험을 만들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지역과의 교감을 이루는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얻어가게끔 하는 것이 지랩이 원하는 ‘스테이’의 방향입니다. 자극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경험이 모여 즐거움이 되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같은 대학 밴드부에서 드럼・기타・베이스를 치던 20대 청춘들은 30대가 되어 건축계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지랩은 건축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하는 조명, 가구, 집기, 소품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 전문가와 협업으로 공간을 구성한다.

이화루애의 외관. 기존에 있던 외벽을 살려 동네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뤘다.
현재 숙박업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인터파크투어가 지난 1~6월 국내 숙박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악재 속에서도 호텔·리조트·펜션 등 국내 숙박판매 객실 수는 전년보다 39% 성장했다. 과거, 여행을 떠나서 하룻밤 머물던 차원에서 벗어나 새롭고 이색적인 공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파티문화가 전파되면서 ‘우리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을 필요로 하는 수요도 한몫하고 있다.

“20~30대 젊은 세대들이 파티를 열기도 하고 휴식을 취하기도 해요. 이들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는 후기나 평을 볼 때 지랩의 가치관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느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지랩의 또 다른 특징은 기존에 있던 건물을 새롭게 재해석한다는 것이다.

“꼭 새롭게 만들어야만 좋은 공간이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옛 건물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살리면서 그 위에 새로운 것을 더할 때 친숙하면서도 독특한 공간이 탄생합니다.”


죽어 있던 동네에 숨을 불어넣다

제주도 조천읍에 있는 ‘눈먼고래’.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맨도롱또똣〉의 배경으로 주목을 받았다.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도시설계를 전공한 이상묵 대표는 지랩을 창업하기 전, 6년간 ‘코레스건축&PMA엔지니어링’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신입사원 시절 처음 경험한 프로젝트가 ‘북촌지구단위계획’이었습니다. 북촌은 조선시대 양반가의 주택지였고 1930~40년대에 도시형 한옥이 지어지면서 현재의 한옥마을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북촌지구단위계획은 기존 골목과 정취를 살리고 보완하는 데 중점을 두었어요.

그 후에도 인사동과 돈화문, 성북동 등 특성 있는 지역에 대한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옛것의 가치와 버려진 공간을 숨 쉬게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13년 창신동에 위치한 한 폐가를 독채형 렌털하우스로 바꾼 ‘창신기지’는 지랩의 계획이 현실화된 모습이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의 의미를 담은 이 공간은 원래 대규모 철거형 개발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이었다.

“도시재생의 관점으로 접근했습니다. 창신동은 땅값이 평당 5000만원에 육박하는데, 수익은 전혀 없다는 게 아이러니했어요. 스무 평(66㎡)도 안 되는 대지에 한옥의 원형을 지켜서 만들어낸 33㎡(10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공감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다 보면 언젠가는 동네가 살아나겠죠.”

2013년 완공한 ‘창신기지’. 창신동에 있는 폐가를 독채형 렌털하우스로 바꿔놓았다.
폐가였던 집이 ‘창신기지’로 바뀐 후 불빛이 새어나오자 동네 주민들도 반겨주었다. 2년이 흐른 지금 이곳은 젊은이들이 찾아와 파티를 즐기고,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쉬어가기도 하는, 생기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얼마 전 완공한 ‘이화루애’ 역시 ‘창신기지’와 같은 맥락의 프로젝트입니다. 이화동에 위치한 ‘이화루애’는 원래 쪽방 8개가 이어져 있던 허름한 집이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 ‘최악’의 상태였죠. 이화동은 한양성곽길을 끼고 서울의 전경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곳인데 카페나 쉴 곳이 마땅치 않아 관광객이 벽화 앞에서 사진만 찍고 가는 것이 아쉬웠어요.”

‘이화루애’는 이화동의 높은 언덕을 오르느라 숨이 차오른 관광객들을 위해 ‘파스텔 뮤직’과 협업하여 1층에 작은 공간을 만들고, 이곳에서 음악을 들으며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이화루애’에서 머물고 싶다면 개방적인 공간에서 작은 문을 열쇠로 따고 안으로 들어가 프라이빗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1층에는 커다란 식탁과 오픈형 키친이, 2층으로 올라가면 널찍한 침대 2개가 놓인 침실이 있다. 기존의 집틀을 그대로 살려 설계했기 때문에 50년이 넘은 적산가옥 지붕이 공간에 아늑함을 더한다.

“성곽 주변 동네들은 작은 시도로도 변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묘처럼 한양도성도 곧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예정인데, 성곽마을과 어우러진 모습으로 공간을 매만지면 문화유산과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건물주의 재산권도 지킬 수 있고 동네도 재생의 모델로 재탄생하는 겁니다.”

지랩이 진행하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스테이폴리오’다. 스테이와 포트폴리오를 합쳐서 만든 이 페이지는 전국의 머무는 공간을 소개한다.

“전국을 다녀보니 저희와 가치관이 비슷한 공간이 많았어요. 다만 소개가 안 되어 있을 뿐이죠. 저희가 하는 일은 개인에 대한 이해와 땅이 지닌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 만든 공간에서 사람들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상위 1%를 위한 건축이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99%를 위한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
  •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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