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층에서 한복 열풍 일으키는 한복놀이단

한복 입고 어디까지 가봤나요?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복이라면 결혼할 때 폐백용으로 맞추거나 나이 지긋한 여성들이 입는 옷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가장 적극적으로 한복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20~30대 젊은 층이다. 명절 때 입거나 궁궐같이 전통적인 장소에 한복을 입고 가는 것은 기본. 한복을 입고 지하철을 타고, 파티를 열고, 외국여행까지 다닌다. 젊은 층이 언제 어디에서든 입을 수 있도록 활동하기 편하고 다양한 디자인의 한복도 많이 나오고 있다. 2011년 결성돼 이런 문화를 선도해온 ‘한복놀이단’의 단원들을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권미루 단장과 운영위원인 하혜정·하봄·정현주씨. 평상시 직장인으로, 대학생으로 바쁘게 생활하는 이들은 일요일 오후, 운영위원회 회의를 위해 잠시 짬을 냈다고 했다.
왼쪽부터 하봄·정현주·하혜정·권미루.
“한복 입고 놀자”

“‘전통적인 우리 옷이니 입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한복을 되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입어야 해서’가 아니라 ‘입고 싶어서’ 한복에 빠져들었습니다. 한복을 입고 놀아본 즐거운 경험은 한복에 더 애착을 갖게 하지요.”

한복놀이단은 2011년 ‘한복 입고 놀자!’라는 모토의 동호회 성격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한복을 입으면 행동거지도 조용조용해야 한다는 선입견을 깬다. 한복을 입고 공공장소에 모여 격렬하게 춤을 추면서 플래시몹을 만들고, 신나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유포한다. 젊은 층이 즐기는 문화와 한복을 접목시키기 위해서다. 한복을 입은 채 사이키 조명 아래 춤추며 즐기는 한복파티를 열기도 한다. 3월 1일이나 8월 15일에는 한복을 입고 거리행진을 하며 만세를 외치는 애국적인 행사도 하지만, 이때도 기본 성격은 ‘즐겁게 놀자’다. 행사는 대부분 페이스북 등을 통해 참가신청을 한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고, 지원자 중 10명의 운영위원들을 선발해 이들을 주축으로 운영한다. 이렇게 구속력이 강하지 않은 단체의 참여인원이 3000~4000명에 이르고, 전국 지부가 결성될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한다. 이들은 한복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캠페인도 한다. 한복을 입고 함께 지하철을 타는 ‘꽃이 타는 지하철’ 행사를 통해 한복이 일상 속으로 스며들게 노력하고, 한복 입어보기 체험과 교육-홍보 행사도 연다.

권미루 단장은 ‘한복여행가’로도 유명하다. 2014년 초 한복을 입고 이탈리아 여행을 했던 그는 2014년 여름 스페인, 2014년 겨울 네팔, 올해 여름에는 몽골에서 한복여행을 했다. 네팔에서는 한복을 입고 해발고도 4130m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올랐고, 몽골에서는 말을 타고 내달렸다.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리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그는 “‘한복은 불편하다’는 선입견을 깼다는 게 무엇보다 뿌듯했다”고 말한다. 그를 뒤좇아 여행 때 한복을 입는 사람들도 늘었다. 한복을 입고 있으면 외국인들이 눈여겨보고, 사진에도 예쁘게 나오기 때문이다. 권미루 단장은 한복을 입고 국내외를 누비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로 올해 6월 뚝섬에서 〈한복여행사진전〉을 열었다. 이 사진전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면서 7월에는 홍대 앞, 8월에는 서울 인사동, 9월 11일에는 부산 벡스코에서 〈한복여행사진전〉이 열렸다. 권미루 단장은 2년여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렇게 한복과 가까워질 줄 몰랐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한복을 좋아하긴 했지만, 일상적으로 입을 생각까지 하진 않았습니다. 2013년 경복궁에서 열린 한복 행사에 참석한 후 인식이 달라졌죠. 무궁무진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으니까요.”


현재 갖고 있는 한복은 50벌 정도. 한복 브랜드에서 산 기성품도 있지만, 직접 디자인해 재래시장 한복집에서 맞춘 옷이 더 많다. 미술과 디자인을 공부하고 현재 진로 컨설턴트로 일하는 그는 “노랑 저고리, 빨강 치마라는 한복의 전형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배색을 시도하고, 디자인을 바꾸고,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면서 한복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고 말한다. 이날 이들이 입고 온 한복은 전형적인 형태와는 달랐다. 저고리는 길고 소매통과 고름은 좁았고, 치마는 발목 혹은 종아리가 보일 정도로 짧아 활동하기 편하게 보였다. 합성섬유로 만든 옷이라 물빨래하기 좋고, 홑겹이라 시원하다고 했다. 비싼 원단이 아니라서 가격대도 높지 않다고 말한다.

“보수적인 분들은 이런 옷은 한복이 아니라고 합니다. 치마허리만 드러나도 ‘기생들이나 입던 옷’이라며 싫어하는 분도 있지요. 한복이 이런 제약 속에 갇혀 있으면 많은 사람이 쉽게 입지 못합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한복 이미지는 조선시대 후기, 궁중이나 사대부집에서 입던 옷 아닌가요? 한복 역시 끊임없이 변천되어온 옷이라 어느 시대, 어느 계층에서 입었느냐에 따라 다 다른 데도 말입니다. 전통만 고집할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입을 수 있는 옷으로 변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남성관복이었던 철릭을 원피스로 바꾼 패션한복이 인기다. 그 위에 한복치마를 간편하게 만든 허리치마를 두르고, 저고리를 재킷처럼 덧입는 등 다양하게 코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티용으로 화려하게 입을 수도, 일상복으로 간편하게 입을 수도 있는 한복이 많아지면서 20~30대뿐 아니라 10대들 사이에서도 한복은 “갖고 싶은 옷, 입고 싶은 옷”이 되고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부모님을 졸라 한복을 사는 10대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복이 불편하다 하지만, 사실 몸에 꽉 끼는 정장이나 미니스커트, 스키니 바지가 더 불편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자주 입지 않았기 때문에 ‘덥고 불편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요?”


한복 입고 히말라야 등반


권미루 단장은 “외국여행에서 한복을 입기 전, 우리나라에서 먼저 한복을 입고 다니면서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부러 섭씨 30도가 넘는 뜨거운 여름날 한복을 입고 북촌마을에 놀러 갔어요. 홑겹 저고리를 입어서인지 다른 옷보다 더 덥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다음 한복을 입고 전주한옥마을에 갔죠. 이후 어디에서나 한복을 입는 게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렇게 경험이 쌓이면서 한복만 입고 외국여행을 할 수 있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전통적인 한복을 입었지만, 스페인 여행부터는 면이나 리넨으로 만든 좀 더 편한 한복을 입었죠. 히말라야 트레킹을 마쳤을 때는 눈물이 났어요. 한복을 입고 히말라야를 등반한다는 게 저 역시 기인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거든요. 이제 한복을 입고 하지 못할 일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는 요즘 한복을 입고 길거리에서 우쿨렐레 연주를 한다. 한복과 다른 문화를 섞으면서 한복의 지평을 넓히고 싶기 때문이다. 한복에 즐거움을 덧씌우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한복은 평범한 제 삶을 매일매일 설레고 가슴 뛰게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하혜정씨도 한복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고 말한다. 한복의 매력에 빠져 한복 대여사업을 시작, 창업가의 대열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수원에는 화성과 행궁이라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 있는데도 젊은 층이 별로 찾지 않아요. 전주한옥마을을 찾았을 때 젊은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다니며 즐기는 모습을 보고 부러웠습니다. 저라도 먼저 한복 입은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한복차림으로 행궁을 산책했고, ‘행궁낭자’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는 행궁 근처에 한복대여점을 열어 사람들이 한복을 빌려 입고 다닐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웹디자이너로 일하는 하봄씨는 “디자이너로서 한복의 색감, 문양에 관심이 많다”고 말한다. 활동하기 편하게 한복을 고쳐 입으면서 이들은 한복에 어울리는 액세서리도 함께 고민한다.

“한복에 단화나 샌들을 신어도 어울려요. 팔찌나 스카프를 매치할 수도 있고요. 한복을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으로 제한하지 않으려면 활용 폭이 넓어야 합니다.”

이들은 “한복을 입고 다니면 관심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관심종자’냐는 부정적인 시선을 받을 때도 있지만, 귀하게 대접받는다고 느낄 때가 더 많다”고 말한다. 한복을 입고 있으면 스스로도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면서 “옷이 가진 힘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한복이 예뻐서, 좋아서 입는 사람이 많아지는 게 한복이 살아남을 수 있는 힘 아니겠느냐”고 이들은 말한다.
  •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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