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 이은경

주택 문제의 해결 방안은 ‘함께하는 삶’에 있습니다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사진제공 : EMA건축사사무소·신경섭
서울시 마포구 만리동, 환일고등학교와 만리배수지공원 사이 언덕배기에 예술인들의 보금자리가 들어섰다. SH공사가 공급한 만리동의 예술인협동조합형 공공주택이다. 미술・연극・문학・ 출판・건축・음악・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가정 29가구는 올봄 이곳에 입주한 후 인근 주민들을 초청해 성대한 집들이를 했다. 이들이 사는 공간과 마당은 모두 전시장이자 공연장으로 변신했다. 계단 옆 벽은 이곳에 입주한 작가들의 회화, 영화 포스터 등이 걸린 전시공간으로 바뀌었고, 건물과 건물 사이 쌈지마당은 음악이나 연극을 공연하는 무대가 되었다. 골목길처럼 건물 사이에 나 있는 통로는 관람석이자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3개 동으로 나뉜 건물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도 행위예술가의 공연장소로 아낌없이 활용되었다. 이곳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은 독특했다. 설계를 끝낸 후 입주자를 모집한 게 아니라 먼저 입주자를 모집한 후 그들의 필요와 의견을 감안해 공간을 디자인했다. 수입이 불규칙한 예술인의 주거문제를 해결할 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예술인이 모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게끔 디자인하는 게 핵심이었다.

만리동 예술인협동조합형 공공주택. 건물 사이 골목길에 서면 인왕산까지 보이고, 1층은 다목적 공유공간으로 활용한다.
이 공간을 설계한 건축가 이은경씨(EMA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2015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이 건물 설계안으로 ‘김수근건축상’의 프리뷰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말 입주한 서울 가양동의 육아협동조합형 공공주택 ‘이음채’의 설계자이기도 했다. ‘이음채’는 ‘거주할 사람이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고, 입주 후에는 공동으로 시설관리를 한다’는 SH공사 협동조합형 공공 임대주택의 첫 번째 모델이었다. 고공행진 중인 전세난 가운데 주택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요즘, 건축디자인으로 ‘함께하는 삶’을 제시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의 사무소는 서울 성북구 성북로의 오래된 한옥을 빌려 쓰고 있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고 했더니 “작업실이 필요한 예술가들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사무소 공간부터 ‘공유’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가양동이나 만리동의 건축도면을 보니 결코 설계하기 쉬운 대지가 아니었다. ‘이음채’는 가양 9단지 사거리와 면한 서울시 공영주차장 부지에 만들어졌다. ‘이음채’의 입주조건은 만 3세 이하 자녀를 둔 가정. 그는 도로에 바짝 붙여 기역자로 건물을 배치하면서 안쪽에 잔디블록을 깔아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안마당을 만들었다. 24가구가 입주하는 지상 6층 지하 1층 건물 중 1층을 비워 공유공간을 만들고,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1층 복도는 나무 데크를 깔고 군데군데 벤치를 두어 휴식공간으로 활용했다. 공유공간에는 널찍한 놀이방에 공용주방도 있다. 장난감이나 책을 가져다놓아 함께 사용하고, 아이들 간식도 함께 만들어 먹일 수 있다.

3개 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만리동 공공주택.
“각 층의 복도도 주민들 사이 소통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복도와 면한 아이 방과 주방의 창문을 크게 내고, 방범창은 달지 말자고 했죠. 복도 벽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이나 나무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복도에서 안마당이 내려다보일 수 있도록 복도 난간을 투시형으로 만들었습니다.”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여러 차례 토의 과정을 거쳐 주민 대부분이 그의 제안에 찬성했다고 한다. 시도해보지 않은 일이라 꺼렸을 뿐, 하나하나 따져보니 오히려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나이의 아이를 키운다는 점에서 ‘이음채’의 입주민들은 금방 친해졌다. 입주민 중 절반 정도가 한 자녀 가정이어서 ‘언니 오빠가 생겼다’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주말이면 아빠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대청소에 나선다.


“나누면 더 커집니다”

계단이나 복도의 벽은 전시공간으로, 쌈지마당은 공연무대로 활용할 수 있다.
만리동 공공주택의 1층에도 강당, 전시실, 작업실, 아이들의 놀이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널찍한 공유공간이 있다. 입주민들은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하면서 입주 전부터 관계가 돈독해졌다고 한다. 이은경 대표는 “건물이 3개 동으로 나뉘어 있지만, 구름다리로 연결하고 층마다 널찍한 공용 테라스를 뒀다”고 한다. 복도나 계단의 벽은 처음부터 전시에 활용할 생각이었고, 바닥도 거기에 어울리도록 포슬린 타일을 깔았다. 야외에는 골목길이나 쌈지공원 같은 공간을 만들어 전시와 공연, 벼룩시장 등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그는 “골목길에 서면 인왕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일품”이라고 말한다.

만리배수지공원을 끼고 있는 만리동 공공주택.
이은경 대표는 “원래 대안건축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서울대 건축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5년간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다 네덜란드 유학을 떠났다. 로테르담에 있는 건축전문대학원 베를라헤 인스티튜트에서 도시건축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네덜란드 건축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네덜란드는 일찍이 집합주택이 발달한 나라입니다. 사회적 필요 그리고 획일적 주택 형태에 대한 반성으로 다양한 공동주거 양식이 시도됐지요. 네덜란드에 있는 동안 수많은 집합주택들을 찾아다니며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건축에 대해 사회인문학적인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고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나무, 동물 그림을 그려 넣은 가양동의 육아협동조합형 공공주택의 복도.
공부를 마친 후 그는 벨기에와 일본에서 실무를 익히다 2010년 말 귀국, 건축사무소를 열었다. 일본에서는 집합주택으로 명성이 높은 리켄 야마모토 건축사무소에서 일했다. 그는 “집을 장만할 여력은 없지만 정부의 공공 임대주택에 입주할 조건은 안 되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이들을 위해 새로운 유형의 집합주택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방법을 찾아보면 서울에서도 2억원 안팎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거주할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집합주택을 지으면 개발자의 이익이 빠져 비용을 많이 낮출 수 있습니다. 각자의 필요를 반영해 집을 설계하고, 시공재료와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지요. 지금 제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여덟 가구가 함께 살 서울의 집합주택이 있어요. 공동육아와 모임을 가질 수 있는 공유공간까지 확보하고도 가구당 2억원 안팎이면 될 것 같습니다. 협동조합 형식으로 집합주택을 지으면서 1층을 근린생활시설로 내준다면 임대수익까지 거둘 수 있지요.”

1층 공유공간에 있는 공용주방. 아이들의 간식을 함께 만들어 먹일 수 있다.
제주도에서도 협동조합형 주거단지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한다.

“도시에 살던 열여섯 가구가 제주도 중산간 마을의 땅을 공동매입한 후 주거단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전원생활을 동경하던 분들이 은퇴 후 함께 내려가기로 의기투합한 거지요. 가구당 83㎡(25평)에서 99㎡(30평) 규모의 집으로, 일부러 단순한 형태로 화려하지 않게 짓고 있습니다. 올해 말 완공 예정이지요. 이렇게 한꺼번에 외지인이 유입되는 일은 그 마을에서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그 마을 그리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잔디블록을 깐 안마당.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1층 복도에는 나무 데크를 깔아 휴식공간으로 활용했다.
단지 안에는 공동주방이 있는 커뮤니티하우스, 손자손녀들이 오면 활용할 캠핑장, 작은 도서관과 마을주민들을 위한 셰어하우스가 들어선다.

“하루 한 끼는 함께 해결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각자 가지고 있던 책들을 모아놓은 작은 도서관은 지역주민에게도 개방할 계획이고요. ‘마을에 와서 일하는 청년들이 생활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셰어하우스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내 집 규모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대신 공유공간으로 선뜻 내주시는 분들이죠.”

매번 금쪽같은 전세금을 올려주며 ‘언제나 내 집을 장만할까?’ 한탄하는 사람들. 그들의 내 집 마련 비결은 역설적이게도 ‘공유’에 있었다.
  • 201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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