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볼러 신수지

스트라이크가 나올 때 느끼는 쾌감에 중독됐어요

글 : 시정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국가대표 체조선수에서 프로 볼링선수로, 새 삶을 살고 있는 신수지. 그는 각종 TV 예능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해 스포츠 스타와 엔터테이너의 합성어인 ‘스포테이너’로 각광받으며 춤, 노래 등 예능감을 발산하고 있다. 지난해 한 야구경기에서는 체조 동작 중 하나인 한쪽 발을 땅에 디딘 채 몸을 360도 회전하는 백일루전 기술을 접목한 시구를 선보여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다. 체조선수로는 크게 조명받지 못하던 그가 이제 ‘떴다’ 하면 화제가 되고 있다.
MBC 〈복면가왕〉, KBS 〈출발 드림팀〉, Mnet 〈댄싱9〉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가 큰 가방을 둘러멘 채 편안한 운동복 차림으로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하루 7~8시간 운동은 절대 빼먹지 않는다는 그는 인터뷰 후 볼링 연습을 갈 거라며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바쁜 일정과 장시간 운동의 병행은 무리일 법도 한데 “볼링의 매력에 빠지면 매일매일 안 치고는 못 배길 것”이라며 볼링 얘기를 꺼냈다.

그는 체조선수 은퇴 후 친구와 볼링장에 갔다 승부욕에 불타 본격적으로 볼링을 시작하게 되었다.

“체조는 몸을 많이 움직이는데 볼링은 머릴 쓰는 게임이에요. 예를 들어 레인의 오일 상태가 변할 땐 재빨리 다른 라인을 찾아 볼을 바꿔 치는 계산이 필요해요. 볼링 라인을 읽고 그대로 공을 던져 스트라이크가 나올 때 느끼는 쾌감에 중독되는 것 같아요.”

그 쾌감에 중독돼 그는 한 달 동안 매일 볼링장의 오픈시간과 마감시간을 함께했다. 처음 친구들과 갔을 때 “구멍에 빠졌다”며 타박을 받던 그가 한 달 만에 애버리지 180점으로 끌어올리며 볼링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이다. 그 무렵 우연히 박경신 프로의 볼링 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제가 치는 건 볼링이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멋있었어요. 수소문해 지도를 부탁드렸어요. 곧바로 지난 11월 열린 프로테스트 합격을 목표로 한다는 조건으로 스파르타식 훈련에 돌입했어요.”

프로볼러로 전향한 후 그는 약 10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에 몰두했다. 체조를할 때 400g의 공을 들던 그가 볼링을 하면서는 15파운드의 공의 무게를 견디며 손가락 두께도 달라졌다.

“무거운 볼을 들고 싶었어요. 공이 무거울수록 볼링핀이 회전할 때 튕겨내는 힘이 더 강하거든요. 핀 하나가 쓰러지면서 주변 핀까지 쓰러뜨릴 확률이 높아져요.”

손가락 마디마디에 관절염이 생겨 데뷔전 직전까지 관절에 주사를 맞았다. 그러나 정작 그를 힘들게 한 건 애버리지가 180점이어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다. 체조선수로서 유연한 몸동작이 도움이 될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체조선수 시절에도 연습벌레로 유명했던 그는 방송 스케줄이 끝나면 24시간 볼링장으로 달려가 밤새도록 연습했다.

“연습하면 향상되는 게 느껴졌어요. 제 자신이 이 정도면 됐다 느껴져도 선생님이 계속 채찍질을 하셨어요. 이를 악물고 연습했죠.”

그는 프로테스트 합격 후 지난 3월 데뷔전까지 치렀다. 첫날 경기엔 부진했지만 둘째 날 애버리지 260점을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요즘 그는 볼링장에서 유독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볼링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다 사진 찍는 경우가 많아요. 평소엔 덜렁대다가도 볼링공만 잡으면 눈빛이 변한다고 하더라고요.”

은퇴 후 PT 자격증을 따고 각종 운동도 하며 많은 것에 도전했지만 가슴 한켠엔 풀리지 않는 공허감이 있었다.

“그 공허감을 날려버린 게 볼링이에요. 볼링을 하면서 의욕적으로 변했어요. 공을 치고, 공이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 것조차 안달이 날 만큼 볼링이 좋았어요. 연예인이 될 거냐는 질문도 받지만 저는 볼링선수입니다. 이제 프로의 길에 들어선 만큼 실력도 더 많이 쌓아야 해요.”

그는 5월에 있는 프로볼링대회를 위해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연습벌레였던 원조 체조요정


어릴 적 아버지와 암벽등반, 등산 등을 했고, 남달리 힘이 세고 잠시도 가만있지 않아 주위에선 그 에너지를 발산하도록 운동할 것을 적극 추천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리듬체조 경기를 보고 한눈에 반해 부모님을 조르기 시작했다.

“리본 들고 점프하는 동작이 너무 예쁜 거예요. 기계체조를 하셨던 아버지가 반대를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나무젓가락에 리본을 달고 리듬체조 동작을 따라 하며 3년 동안 조르고 졸라 체조를 시작하게 됐어요(웃음).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했는데 워낙 늦은 데다 유연성도 부족하고, 키도 작고 안짱다리에 신체적으로 악조건이었죠. 하루 13시간씩 연습했고 1년 만에 전국대회에서 1등을 했어요. 그 이후 상위권을 놓친 적이 없었죠.”

그는 체조선수로 한국 최초 본선 진출과 함께 16년 만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자력으로 진출했다. 국제 규정에 따라 소속국가 선수들이 본선에 자동으로 출전할 수 있는 시트권을 획득하는 초석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어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국가대표 체조요정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고질적인 발목부상이 회복되기도 전에 대회에 계속 출전하면서 결국 인대가 끊어져 큰 수술을 받았고, 입원해 있는 동안 은퇴를 결심했다.

“저 때문에 가세가 많이 기울었어요. 한 달 훈련비만 3000만~4000만원 들었으니까요. 부모님은 투잡까지 하며 저를 뒷바라지해주셨어요. 매번 가슴 졸이며 운동하는 게 부모님께 늘 죄송했죠.”

뛰어난 성적을 거둬도 비인기 종목의 한계로 큰 조명을 받지 못해 서럽기도 했다.

“잦은 부상, 또 후회 없을 만큼 연습하고 체조에 쏟았던 열정을 생각하니 더 이상 미련이 없더라고요.”

그는 은퇴 후 골프・야구・수영・스쿼시 등의 운동과 PT 자격증, 체조 심판 자격증을 취득하는가 하면, 체조방송 해설도 했다. 체조 기술의 난도를 중점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선수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현역 선수 시절 경험을 살린 해설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 그는 어려운 환경에 있는 리듬체조 박예은 선수를 후원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힘들게 운동하는 선수에게 하루 동안 가르쳐주고 홍보영상을 찍으며 기부 받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어요. 체조에 대한 간절한 바람과 열정 가득한 눈빛이 잊히지 않더라고요. 환경 때문에 그만둬야 한다는 게 안타까웠고, 단발성으로 끝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어릴 때 저를 보는 것 같았고요. 제 힘으로는 안 되니 힘을 빌려서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매달 후원해줄 분을 찾았어요. 집, 체육관, 코치를 알아보고 서울로 올라오게 했죠.”

그의 최종 목표는 체조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현역 때 터득했던 경험과 가술을 후배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꿈이 있어요.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공부를 차근차근 해나가고 싶어요. 지금은 그동안 체조에 전념하며 누리지 못하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어요. 볼링을 하면서 방송을 하는 이유는 비인기 종목의 인지도를 높이고 싶기 때문이에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요즘이 무척 행복합니다.”

그에게 운동 외에 하고 싶은 게 있는지 묻자 그는 “여행”이라고 답했다. 볼백을 메고 다른 나라에서 볼링을 쳐보고 싶다는 것이다. 체조선수 시절부터 쉼 없이 운동을 해와서인지 하루라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몸이 먼저 운동을 찾는다”는 스포츠인이다.

“언젠가는 리듬체조 전용 체육관시설을 만들고 싶어요. 아직 체조 전용 체육관이 없거든요. PT, 골프 연습장도 설치해 체조 지도자로서 체계적으로 선수들을 양성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내내 유쾌한 웃음을 보이다가도 운동 얘기를 할 때는 한없이 진지해지는 그를 보며 ‘도전’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 2015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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