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케이크 만드는 파티셰 문율리아

전통 떡과 서양 디저트의 만남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타르트는 한 조각에 1만원이 넘어도 없어서 못 파는데, 우리 떡은 싸구려로 취급하는 현실이 너무 속상했어요. 우리 떡도 귀하게 대접받을 수 있도록 부가가치를 최대한 높이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젊은 사람들 입맛에 맞게 바꾸고, 예쁘게 꾸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행을 선도하는 디저트카페에서 일하던 파티셰 문율리아씨는 그렇게 떡으로 전향했다. 그는 서양 디저트를 만들면서 익힌 기술과 노하우를 활용해 자신만의 떡 케이크를 만들어냈다.
촉촉한 설기 떡으로 만든 케이크 위에 올린 장식은 형형색색 다채롭다. 장미와 카네이션, 라넌큘러스 등 다양한 꽃과 푸른 잎, 열매 등이 조화를 이룬 장식은 플라워 디자인을 한 듯 정교하다. 풍성한 리본이나 문자도 같이 독창적인 장식으로 올라갈 때도 있다. 설기 떡도 독특하다. 흑임자・단호박・고구마・쑥・콩가루・우유・초코・ 홍차・커피 등 쌀가루에 섞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는데, 떡 안에 든 필링의 맛과 향이 강해 ‘이 맛이야’라고 확실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하얀 바탕을 원할 때는 원하는 설기 떡 위에 백설기를 씌운 후 장식한다. 그는 최근 이종석과 소지섭의 팬들이 주문한 생일 케이크를 만들기도 했다.

서울 와우산로 3길, 상수역 근처에 있는 톨 떡공방에서 문율리아씨를 만났다. 카페 거리에 자리 잡은 데다 아기자기한 장식과 편안한 분위기로 카페를 연상케 하지만, 이곳의 떡 케이크를 맛보려면 미리 주문해야 한다. 주문량에 딱 맞춰 만들기 때문이다. 인터뷰 약속을 잡으면서 8가지 맛의 쪼꼬미 케이크를 주문했다. 쪼꼬미 케이크는 다양하게 맛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컵케이크 크기로 만든 떡 케이크다. 만들기는 번거롭지만, “이것저것 맛보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알기에 주문을 받는다”고 한다. 흑임자 케이크에는 흑임자 필링에 호두와 잣, 단호박 케이크에는 단호박 필링에 호두와 완두콩, 콩가루 케이크에는 콩가루 필링에 땅콩 등 견과류를 넣어 진한 풍미에 고소하게 씹히는 맛을 더했다. 우유와 커피, 홍차, 초콜릿 등 서양 디저트에서 주로 쓰는 재료로 만든 떡 케이크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전통 떡과 현대 디저트의 성공적인 만남 같았다. 커피 케이크 속에 든 필링은 커피전문점에서 마시는 달콤한 캐러멜 마키아토의 맛이었고, 홍차 케이크를 먹으니 입안에서 은은하게 홍차 향이 퍼졌다. 케이크 위에 올린 장식도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맛도 있었다. 손으로 얇게 치댄 절편으로 모양을 만들었다는데, 보통 절편처럼 찐득거리지 않으면서 차지고 졸깃했다. 함께 내주는 팥크림을 발라 먹으니 더 맛있다. 팥크림은 생크림에 하얀 팥앙금을 섞어서 만든다고 한다. 문율리아씨 옆에 있던 어머니는 “이 맛을 내기까지 울기도 많이 울고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고 전한다.


애니메이션 전공하다 파티셰 거쳐 떡 전문가로


문율리아씨는 어릴 때부터 재주가 많은 아이였다. 예체능이라면 뭐든 잘해 선생님들이 “기계체조 해볼래?” “테니스 선수 해볼래?”라며 뭐든 그를 지목했다. 사물놀이도 10년씩 했고, 그림도 잘 그렸다. 만화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애니메이션으로 진로를 정하고, 고등학교 때 강릉에서 상경해 혼자 생활하며 대학 진학을 준비했다. 그러나 원하는 애니메이션학과에 진학해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니면서도 ‘내가 원하는 게 이 길일까?’ 혼란스러웠다. 좋아하긴 하지만 정말 잘하는 친구를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한자리에 오랫동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게 답답할 것 같았다.

일단 휴학을 하고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보고 합격했지만 포기했다.

이때 어머니가 그에게 전기오븐을 가져다주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도와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요리대백과》에 나오는 베이킹이 궁금했다. 베이킹을 해보고 싶어 집에 있는 가스레인지를 가스오븐레인지로 바꾸자고 졸랐지만, 그동안 여의치가 않았다. 어머니는 전기오븐이 생기자 그런 딸 생각이 나서 서울로 가져왔다. 인터넷에서 찾은 방법대로 조금씩 케이크와 과자를 굽다 리치몬드제과점 취미반에 등록했고, 아예 자격증까지 땄다. 몸을 움직이면서 일하니 에너지가 넘치고 너무 좋았다. 복학을 고민하다 ‘등록금을 허비하느니 길을 바꾸자’고 결심했다. 개인 제과점에 들어가 숙소생활까지 하면서 일을 배운 후 SPC그룹의 고급 디저트카페 ‘패션5’로 옮겼다.

퇴근시간도 따로 없이 일에 몰두했던 그는 프랑스 유학을 생각하며 회사를 나왔다. 그런데 프랑스 유학을 포기하면서 불현듯 ‘떡 만드는 걸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빵이나 케이크는 입에 달고 살았지만, 떡은 손에도 대지 않았거든요.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소에서 3개월 과정으로 떡 만들기를 배웠습니다. 젊은 사람의 입맛에 맞춰 새로운 떡을 만들어보고 싶었거든요. 밀가루와 설탕, 버터가 주재료인 서양 디저트는 만드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나 몸에 그리 좋지 않지만 떡은 건강한 디저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을 내기 위해 떡 안에 필링을 집어넣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그러면 떡이 안 된다는 거예요. 떡이 익기 전에 속부터 끓는다고. 오기가 생겨 날마다 실험을 거듭했고, 서너 달 만에 방법을 찾아냈죠.”


탄력 있고 폭신폭신한 쌀 케이크 개발


그가 만드는 떡 케이크는 보통의 설기 떡보다 폭신폭신한 게 식감이 다르다. 이를 위해 그는 각 지역의 쌀을 따로따로 빻아 떡을 만들어보면서 가장 적합한 쌀을 찾아냈다. 원하는 쌀가루를 얻기 위해 방앗간도 이곳저곳 찾아다녔다. 이렇게 저렇게 빻아달라는 그의 말을 무시하는 방앗간 주인들 때문에 울기도 했다. 가장 곱게 빻은 쌀가루를 여러 번 체에 내리면서 그가 원하던 식감을 얻었다. 체에 내리는 과정에서 공기가 많이 들어가게 하는 게 비결. 수분도 충분히 함유해야 탱탱하게 탄력이 있으면서도 폭신폭신한 쌀 케이크가 되었다.

“방앗간에서 아저씨한테 일을 맡기고 가게를 대신 봐줄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손님이 두 팩에 7000원인 떡을 6000원에 달라는 거예요. 갖가지 재료가 듬뿍 든 영양떡인데. ‘이거 얼마 한다고 깎으시냐?’고 했죠. 화가 나더라고요.”

우리 떡을 최고로 만들어 보이겠다는 오기는 더해졌다. 그는 가평 잣, 정선 대추 등 비싸도 국내산 최고 재료를 쓰고, 비트, 치자, 쑥, 보리순, 오징어먹물 등 천연재료로 색을 낸다고 한다. 먼저 집에서 떡 케이크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맛보이기 시작했다. 떡을 사겠다는 주문이 점차 늘고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는 요청도 이어졌다.


‘조그맣게 작업실을 내볼까?’ 하는 생각으로 오피스텔을 얻었다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 자리를 옮겨 ‘톨 떡공방’을 시작했다. 그는 막 쪄낸 상태에서 전달하기 위해 되도록 손님에게 전해지는 시간에 맞춰 떡을 만들기 시작한다. 떡 케이크 하나를 만드는 시간은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절편으로 모양을 만드는 과정이 공예를 하듯 시간과 공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주문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에 나와 일을 시작하고, 어떤 때는 밤을 꼬박 새기도 한다. 그래도 주문받을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다. 누구 손도 빌리지 않고 모든 과정을 혼자 다 하기 때문이다. 새벽에 나와 일할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게 성에 차지 않아서다. 대신 1일 클래스, 정규 클래스 등을 통해 그가 터득한 떡 만드는 법을 개별적으로 가르친다.

“제가 처음 떡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갈망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야 빨리 퍼질 수 있으니까요.”

그림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던 경험, 서양 디저트와 케이크를 만들고 슈거크래프트를 배웠던 경험은 독특한 모양과 맛의 떡 케이크를 만드는 데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젊은 사람도 열광하는 떡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는 요즘도 실험을 멈추지 않고 있다.
  • 2015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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