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주・안민영 부부

도시농부 남편과 도시농부의 생활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그린 아내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들판에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고, 과실나무마다 주렁주렁 열매가 열리는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그런데 수확의 기쁨은 직업농부만이 누리는 게 아니다. 최근 주말텃밭, 옥상텃밭에서 소규모로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들이 많아지면서 도시민들도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만끽하고 있다.

결혼 3년차인 이윤주 안민영 부부는 3년차 도시농부이기도 하다. 2012년 4월에 결혼했는데, 한 달 전인 2012년 3월에 이미 땅을 분양받아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들의 수확은 농산물에 그치지 않았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아내 안민영씨가 농사짓는 남편의 모습과 농사 장면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다시 공책과 엽서, 액자, 가방 등 디자인 상품으로 만들어 내놓았다. 2014 핸드메이드코리아페어와 헤이리마을 논밭예술학교 게릴라 전시에 참여하면서 이 디자인 상품들은 각광받기 시작했고, 올가을부터는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 편집 숍과 서울시 문화장터, 온라인(www.playfulahha.com)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농사 장면을 디자인,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다


‘MYC LITTLE FARM’이라 이름 붙인 그의 일러스트레이션들을 보면 기분이 유쾌해진다. 노란색 밀짚모자를 쓰고 초록색 장화를 신은 농부 아저씨가 ‘룰룰루~’ 휘파람을 불며 텃밭으로 향한다. 그가 끄는 손수레에는 분홍색 돼지와 닭이 타고 있다. 분홍색 돼지는 아내인 안민영씨, 닭은 아이를 상징한다고 한다. 농부는 쟁기로 텃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물을 준다. 땅을 뚫고 올라오는 가지각색의 식물들. 비와 햇살이 이들을 쑥쑥 자라게 한다. 그리고 새, 벌, 달팽이 같은 친구들도 텃밭을 찾아온다. 이 장면들을 하나하나 그린 일러스트레이션들은 총천연색으로 마음을 밝게 만든다.

지난 8월 23일 토요일 오후,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 주말농장에서 이 부부를 만났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이윤주씨가 직장인이라 주말밖에 시간을 내기 어려웠다. 이윤주씨를 보자 바로 일러스트레이션 속 농부가 떠올랐다. 부드러운 얼굴선과 선한 인상, 동글동글한 눈, 턱수염까지 꼭 닮았다. 아내인 안민영씨는 임신 중으로 올 10월에 출산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들의 아이는 도시 속에서도 자연의 순리를 배우며 성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텃밭 옆 원두막에서 부부가 키운 방울토마토 등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방울토마토는 싱싱하고 달았다.

“한창 쌈 채소를 따먹는 철이면 이곳에 자리 잡기 어려워요. 갓 따낸 채소로 쌈 싸먹으려고 고기 굽는 사람들로 붐비거든요. 저희도 이곳에서 농사짓는 선배 덕분에 결혼 전부터 종종 초대받아 왔습니다. 보통 한 가정당 33㎡(10평)씩 분양받아 농사를 짓는데, 혼자 농사짓기 너무 넓다고 선배가 반반씩 나눠서 짓자고 했어요.”


막상 농사를 지으려고 보니 17㎡(5평)의 땅도 넓디넓게 느껴졌다.

“처음 농사를 지을 때 상추・쑥갓・청경채 등 쌈 채소 씨앗세트를 사서 뿌렸는데, 솎아줘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아깝다는 생각에 솎아주지 않았더니 공간이 좁아 제대로 자라지 못하더라고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농사의 지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쌈 채소는 두 사람이 먹기에 양이 차고 넘칩니다. 이리저리 나눠줘도 남으니까요. 강된장 만들어놓고 열심히 먹었죠. 열무도 잘됐는데, 데쳐서 냉동실에 넣어놓고 시래기된장국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감자・당근・양배추・브로콜리・ 방울토마토・고추 등을 수확했죠. 작년 여름에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농사를 망쳤는데, 올해는 비가 별로 안 와 방울토마토가 이렇게 단 거예요.”

땅속에서 줄줄이 올라오는 감자를 캘 때는 보물찾기 같았다고 한다. 지금은 땅을 한 번 더 갈아엎어 퇴비를 뿌리고 무와 배추를 심을 예정이다. 농사는 알콩달콩 신혼생활에 활력소이자 낭만이 되었다. 남편은 수확한 농산물들을 자랑스레 아내한테 내밀고, 쑥갓에서 노랗게 피어오른 꽃을 꽃다발로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아내는 그런 모습을 사진 촬영해 인터넷 사이트와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 올리고,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그렸다.

“제가 농사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한다면 아내는 훨씬 더 감성적으로 섬세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씨앗 형태가 각각 다른 것까지 세심하게 살피더라고요. 나중에 보니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씨앗들이 일러스트레이션이 되어 있었고요.”


농사는 도시인들에게 더 필요한 소재


남편 이윤주씨는 충남 서산, 아내 안민영씨는 경남 양산 출신으로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진학하고 또 취업하면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두 사람 모두 농촌생활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었다.

“저희 집이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주변이 밭으로 둘러싸여 있었어요. 당근 밭에서 서리를 하고, 쑥을 뜯으러 다니고, 도랑에서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죠.”

이윤주씨 역시 ‘언젠가 농사를 지어야지’ 생각하던 터였다고 한다. 목공일도 좋아하는 이윤주씨는 자신이 직접 만든 가구로 신혼집을 채우고 싶어 목공작업장과 텃밭에서 주말을 알뜰하게 보냈다. 안민영씨는 결혼하고 텃밭농사를 지으면서 비로소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말한다.

“광고회사에서 2년, 프리랜서로 3년, 주로 광고 관련 일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광고 일이란 게 제가 주체가 되지 못하고 주로 광고주의 요구에 떠밀리게 되잖아요. 그림책도 그리고 싶고, 애니메이션도 만들고 싶고, 디자인 상품도 만들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터였어요. ‘MYC LITTLE FARM’을 만들면서 길을 찾게 되었지요.”


남편은 텃밭과 목공일뿐 아니라 안민영씨가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가방을 만들고, 수제 공책을 만들고, 전시회 준비하는 데도 도움을 줬다. ‘MYC LITTLE FARM’에서 MYC는 민영과 윤주의 영문 약자를 합한 것. 그런데 ‘MY LITTLE FARM’이라 읽는 사람이 많아 C는 달과 별 형태로 만들었다.

“제 작품을 보고 ‘귀농했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요. 사실 자연이나 농사는 초록을 보고 살기 어려운 도시인들에게 더 필요한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농사 과정을 다룬 애니메이션을 도시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MYC LITTLE FARM’을 도시농부를 떠올리게 하는 브랜드로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농사할 때 사용하는 옷과 장화, 수건, 도구까지 도시농부와 관련된 리빙 디자인으로 확장시켜나갈 꿈도 꾸고 있어요.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실제 제품이 되는 거지요. 이를 통해 젊은 사람들도 농사에 대해 호기심과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도시농부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들의 2세가 만들어나갈 생활과 그 생활이 또 어떤 수확들을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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